설마 했던 장학사 주관 표집시험 곳곳 현실화
수업은 동영상 만들라는 지시에 외주제작까지

깊고 어두운 학력신장의 그늘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 초 청주교육장이 주관한 교장회의에서 장학협의(과거의 장학지도) 시 장학사가 교실에 들어가서 교육청이 출제한 문제로 시험을 보겠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설마 그럴까 했으나 실제 청주시내 일선 초·중학교에서 장학사가 주관하는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청주에 이어 음성교육청도 ‘같은 형태로 시험을 보겠다’고 밝혔으며, 괴산교육청은 20여 년 전에 사라진 군 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전교조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교조 충북지부 소속 청주지역 교사 등 100여명은 지난 7일 오후 5시 청주교육청 앞에서 권위적 장학지도 중단과 방과 후 학교 파행운영 철회를 요구하는 ‘청주지역 교사 결의대회’를 가졌다.

교사들은 이날 집회에서 “교육청이 아이들을 시험지옥, 경쟁교육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교육주체들의 단결된 힘으로 이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 청주교육청이 장학지도 시 일부 학급을 표집해 진단평가를 실시하자 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개수업은 동영상으로 미리 만들어 제출토록 지시했는데 이 역시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여론이다. 사진은 7일 열린 반대집회 사진제공=전교조

과거 장학협의의 주안점은 공개수업이었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환경미화였다. 교사와 학생은 수업을 앞두고 질문과 답변을 미리 준비해 이른바 ‘각본’을 짰고, 대청소에 이어 학급 내 게시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느라고 학교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2009년 청주시내 초·중학교의 장학협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 초 청주교육청이 공언했던 대로 학년 별로 1개 반씩을 표집해서 장학사가 직접 주관하는 진단평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의 경우 4월24일 세광중학교를 시작으로 29일 청주중학교, 5월7일 대성중학교가 영어와 수학과목 표집시험을 치렀으며, 다른 학교들도 장학협의에 맞춰 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초 협의가 된 데로 교육청이 직접 출제한 시험지로 시험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시험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학교별로 자체 출제한 문제지로 시험을 보고 채점 결과만 교육청에 통보하는 형식적인 시험만 한차례 더 치르고 있을 뿐이다.

잦은 시험, 학교·교사 길들이기?
김명희 전교조 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도대체 왜 이런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르겠다. 진단평가란 학년 초에 새로 만난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한 번 치르는 것으로 족하다. 현장에서는 수업보다도 시험에 대비한 문제풀이로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에서도 장학협의 시 시험이 실시되고 있지만 형식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초등학교의 시험과목은 국어와 수학인데, 일선학교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일부 학교에서는 표집대상을 대폭 간소화해서 그저 ‘시험을 치렀다’는 결과를 남기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박옥주 전교조 초등지회장은 “최근 시험을 본 모 초등학교의 경우 3~6학년에서 각각 한 학급씩 시험을 본다더니 반발을 의식한 듯 3학년 한 학급에서만 시험을 실시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라 점수가 높게 나온다. 이 결과를 갖고 어떤 후속조치가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험만 보고 만다”고 꼬집었다. 초등의 경우에는 중학교와 달리 교육청이 출제한 문제로 시험을 보고 채점만 담임이 하는 방식이다.

박 지회장은 “4월16일 신우인 청주교육장 면담 시 ‘선생님들도 긴장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발언을 들었다”며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영상 제작 위해 별도수업 불가피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개수업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다. 교육청은 시험 때문에 공개수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아예 공개수업 광경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교육청에 미리 제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가르치는 일에만 익숙한 교사들에게 동영상 촬영과 편집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들은 1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실제 수업 외에 촬영용 수업을 별도로 갖고 있으며, 촬영에만 2,3시간, 준비기간과 편집을 위해 열흘 안팎의 시간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권미령 사립지회장은 “수업을 하는 교사도 촬영을 하는 교사도 자기 수업 외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장학협의 열흘 전에 제출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진도가 앞선 내용을 미리 준비하고 촬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렇게 어렵게 준비한 동영상을 과연 장학사들이 미리 검토하고 학교를 방문하는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아예 동영상 제작을 전문 업체에 맡기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자 교육청은 ‘당일 공개수업을 할 수 있는 학교는 직접 수업을 해도 좋다’는 요지의 공문을 다시 내려 보내 다시 혼선을 주고 있다. 이러다보니 세광중의 경우에는 동영상은 동영상대로 찍고 당일 별도의 공개수업을 하기도 했다. 

청주교육청 “동영상은 선택의 기회”
학력신장이나 평가를 위한 진단평가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멋쩍은 표집시험이 결국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직선제로 실시되는 차기 교육감 선거와 관련한 고도의 선거 전략이 아닌가하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와 아이들이 과도한 부담감을 갖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 분야에서 학력신장만큼 유권자인 학부모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도 따로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청주교육청은 일부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김상원 중등교육과장은 “장학협의 시 보는 시험은 영어, 수학 각각 한 반만 시험을 보는 것이고 장학사와 교과부장, 지도교사가 ‘40점 미만은 어떻게 구제하고 80점 이상은 어떻게 향상시킬까’하는 컨설팅에 필요한 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일뿐이다. 작년 일제고사에서 충북이 하위권에 머물렀고 교육감이 직접 사과하지 않았냐. 학부모들은 좋은 제도라며 찬성하는데, 일부 교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솔직히 귀찮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과장은 또 “동영상 제작 때문에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올해부터 장학지도 과목도 11개에서 5개로 줄였고 당일 수업을 하든지 미리 동영상으로 내든지 그것은 교사들의 선택이다. 우리는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지 강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