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 여론주도층 여성 손에 꼽을 정도, DB구축도 안돼
지자체 단체장, 대학총장, 각종 협회장 자리는 '禁女' 구역?

충북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러나 충북의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지위는 형편없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끝도 없이 치닫는 경쟁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점점 축소돼가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칼날에서 스러져 가는 것은 여성과 비정규직이고, 점점 보수화돼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난무하는 것은 反여성정책들이다. 본지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충북지역 여성들의 현주소를 더듬어보았다. 그 중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론주도층에 초점을 맞췄다.

충북도내에서 열리는 웬만한 행사장에 가보면 여성들은 전체 참석자수의 10%가 채 안된다. 여성관련 행사가 아닌 경우 대개 그렇다. 충북도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거의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하는데, 여성단체를 제외하고 여성이 기관·단체장으로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2월 19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는 충북도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간에 ‘충북도정 현안 간담회’가 있었다. 도에서는 정우택 지사, 이종배 부지사,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두 참석하고 연구소에서는 중앙당 연구위원, 도당 당협위원장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도에서 현안을 브리핑한 뒤 건의하고 연구소 측에서는 이를 경청하고 협의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차지한’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한나라당충북도당 관계자로 참석한 여성은 있었으나 뒷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지 발언권은 없었다. 왜 그럴까. 국장급 이상 도 간부 여성이 한 명도 없고, 한나라당 중앙당과 충북도당 간부 중 여성위원장 이외에는 여성간부가 없기 때문이다.

도내 여성계는 지난 6일 제 101주년 '세계여성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공동체놀이 중인 여성인사들. 사진/육성준 기자

 

부단체장 지난해 처음 배출
도내 정치분야를 훑어보면 여성들은 지방의회에 약간 진출했을 뿐이다. 17대 국회에서 강혜숙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한 명 낸 뒤 여성 국회의원은 다시 명맥이 끊겼다. 광역·기초지자체장은 역사상 한 명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지방의회에 진출한 사람은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 등 모두 20명. 이 중 절대다수인 18명이 비례대표로 의회에 들어갔다. 선거판에서 남성들과 싸워 당선된 사람은 정윤숙 도의원(한나라당·청주)과 김경숙 충주시의원(한나라당, 교현안림·교현2·용산동) 등 2명이다. 도내 광역의원은 31명이고 이 중 여성의원은 3명, 전체의 9.7%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기초의원은 전체 131명 중 여성은 17명으로 13.0%에 불과하다.

이어 행정분야 또한 빈곤한 인력풀을 엿볼 수 있다. 정책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는 도내 4급 이상 공무원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소방직과 교원을 제외한 충북도 공무원은 전체 1518명인데 이 중 여성은 338명으로 22.3%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 4급 이상은 6명에 불과하다. 김화진 영동부군수, 최정옥 여성가족과장, 김숙종 농업기술원 자원기획과장, 이희순 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장, 조경주 보건환경연구원 연구부장, 계약직인 노광순 충북여성발전센터 소장 등이다.

부단체장으로는 김화진 영동부군수가 유일하다. 김 부군수는 행정공무원 역사상 부군수 1호로 주목을 받았다. 공무원의 오랜 역사상 부단체장을 지난해 처음 배출했다는 것은 얼마나 후진 사회인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청주시 공무원은 전체 1751명이나 4급 이상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나머지 시·군 역시 마찬가지다. 청주시는 이정숙 흥덕구청장이 퇴직한 뒤로 국장급 여성을 배출하지 못했다. 도내 대부분의 여성 공무원들은 6~9급에 몰려 있다.

한 공무원은 “90년대까지도 여성 공무원들을 인사발령할 때 기획·총무·예산 같은 분야로는 보내지 않고 여성업무나 민원실, 혹은 사업소 같은 쪽으로 많이 보내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승진할 때는 남성보다 늦어 같이 공무원을 시작해도 밀리기 일쑤였다. 단체장들은 대개 특별한 여성 공무원 1~2명을 우대하고는 여성들을 배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성차별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정우택 지사는 취임 뒤 여성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복지여성국장을 개방형 공모직으로 돌렸다. 그러나 김양희 국장이 도민들의 반대로 중도사퇴하자 그 자리를 행정직으로 돌렸다. 이 때문에 여성 국장 배출은 다시 꿈이 되고 말았지만, 약속대로 공모해야 한다는 게 많은 여성들의 중론이다. 적당치 않은 인사를 기용한 게 문제였지 공모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전국적으로 여성국장 한 명 없는 광역지자체가 거의 없는 현실과 여성정책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여성 국장은 나와야 한다.

여자 교사는 많지만 교장은 드물다
경제계는 더 열악하다. 충북여성경제인협의회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여성경제인의 95%가 5인미만 사업장 대표다. 또 실제적으로 여성이 대표 일을 해도 남편이나 기타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 놓거나 이름만 여성 대표인 경우도 있다. 어쨌든 충북에서 규모가 큰 기업을 운영하는 여성대표는 많지 않다. 남자 기업인들은 빚을 얻어서라도 회사를 키우는데 비해 여자들은 있는 돈으로 알차게 운영하는 것을 선호하고, 경제적인 여건도 남자들보다 좋지 않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청주상공회의소나 충북이업종교류협회, 중소기업중앙회충북지회 등 웬만한 경제단체들의 장은 모두 남성이다. 여기저기 물어보아도 여성기업인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이현자 한국도자기판매주식회사 대표, 김귀학 (주)홍해초 대표, 정윤숙 우정크리닝 대표, 오미옥 아마르떼화장품 대표 정도다. 여성경제인들의 단체인 충북여성경제인협회 회원은 75명이나 대부분 작은 규모의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여성발전센터가 펴낸 자료를 보면 2007년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1.4%인데 반해 여성은 48.9%에 그쳤다.

▲ 김향숙 신대희 정윤숙
▲ 이은규 김숙종 하숙자
사회·교육분야는 여성대표가 일부 있지만 이 또한 극소수다. 사회단체 중 여성대표가 있는 곳은 NGO 분야. 충북여성단체연대회의는 올해 하숙자 충북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를 공동대표로 임명했다. 이 곳은 3명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을 여성으로 임명해 왔다. 연대회의는 도내 NGO 단체들의 연합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연대회의와 여성단체 외 충북참여연대, 충북경실련, 청주충북환경련 등 주요 단체들이 공동대표를 모두 남성으로 내세우고 있어 실망스럽다. 이들 단체 관계자들은 “총회 때마다 고민해도 마땅한 인물이 없다”고 하소연 하지만, 시민사회분야도 많은 여성들을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 여성이 많기로 유명한 교육계는 어떨까.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지난 2월 이은자 교장을 옥천교육장으로 인사발령했다. 과거에도 가뭄에 콩나듯 1~2명의 교육장이 있었고, 이 교육장은 다행히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도내 초·중·고 공립학교 교장은 전체 415명이나 여자 교장은 이 중 35명, 8.4%에 불과하다. 초등학교는 ‘교단의 여성화’를 걱정할 정도로 여성 교원이 압도적으로 많고 중·고교도 많이 늘어났으나, 관리자급인 교장은 별로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교사로 일을 하고 교사로 정년퇴직하지 교장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통계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충북도교육청 내에 4급 이상 여성 간부는 한 명도 없어 위로 갈수록‘남성들의 무대’임을 알 수 있다.

대학도 여전히 남성들의 천국이다. 충북대는 전임강사 이상 교원이 전체 728명이나 여성은 82명으로 11.3%에 불과하다. 이 중 단과대 학장 이상의 간부 여교수는 김향숙 학생처장과 권수애 생활과학대학장 뿐이다. 생활과학대는 여자 교수들로 구성돼 있으니 여자학장은 당연한 것이고, 다만 김 처장이 본부에서 주요보직을 맡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충북대는 몇 년전에 박외숙 기획처장을 임명한데 이어 두 번째 여성 처장을 냈다. 하지만 58년의 대학 역사를 생각하면 심각한 남성편중이 아닐 수 없다. 청주대는 전체 383명 중 여성 교수가 80명으로 20.9%를 차지하고 있으나 단과대 학장 이상의 간부 여교수는 한 명도 없다. 남녀평등 교육을 해야 할 교육계마저 이런 식으로 남성위주 인사를 단행하고 있는 게 지역사회 실정이다.

여성판사 12명, 여성검사 8명
지역의 문화·예술계도 남성들의 무대다. 문화예술계의 두 기둥인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 회장은 항상 남성들이 차지해 왔다. 청주문화원도 사무국장은 여성인 권영애 국장이 하고 있으나 원장은 대대로 남성들이 해왔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가보면 참석자 대부분은 여성인데 주최측 관리자는 남성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여성들이 많지 않았던 법조계는 오히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는 것이지 남성과 비교하면 역시 초라한 숫자다. 청주지법·충주지원판사는 모두 41명인데 이 중 여성은 전현정 부장판사를 비롯해 모두 12명이다. 또 청주지검과 충주지청 검사 35명 중 여성은 정은혜 검사 등 8명으로 나타났다. 여성변호사는 신국희·신대희·김난연 씨 등 3명. 충북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모두 81명이다. 몇 년 전 권은희 씨가 유일한 여성변호사로 활동하다 경찰간부로 이직한 뒤 한 명도 없었으나, 올해들어 3명이 청주와 충주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여성법무사는 전체 법무사 144명 중 이은규 씨 등 6명이다. 변호사회와 법무사회 회장도 말하나마나 남성들의 자리.

지역여성계 인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임면권을 가진 사람들이 남자이다보니 주요 자리에 남자들이 가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나아지겠지만 아직 멀었다. 남녀차별 현상은 도처에 깔려 있다. 또 문제는 여성들이 주요자리에 있다고 해도 누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여성인력을 관리하고 필요한 자리에 소개해주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학실 충북여성발전센터 연구팀장은 “다른 지역은 여성정책연구원이라는 기관에서 여성인력들을 관리한다. (재)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서는 전문직여성 DB를 구축하고 전문여성인명록도 발간했다. 충북에서도 여성인재들을 발굴, 교육, 활용하는 기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의 사이트에 접속하자 분야별 전문인력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들은 지난 2005년 12월 경기전문여성네트워크도 발족했다. 충북의 여성 인력풀은 매우 빈곤하고 조사 또한 돼있지 않다. 따라서 여성 네트워크 조직인 ‘충북여성포럼’에서 여성인력 DB를 구축하고 발굴·추천·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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