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치안정감, 퇴임식장 ‘쓴소리’ 화제
“법질서 확립보다 인명존중 우선시 돼야”
충주출신으로 재임 시 음성경찰서장(1999년)과 충북지방경찰청장(2006년 12월~2008년 3월)을 지냈던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이 지난 18일 명예퇴임하면서 남긴 퇴임사가 조직 내외부에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박 전 교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해 1월 ‘경찰청장 직위 개방’ 등을 골자로 하는 건의문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냈을 정도로 경찰개혁을 앞장서 부르짖었던 인물.

어찌 됐든 박 전 교장이 ‘강경진압이 곧 법치는 아니다’라며 현 정부를 향해 내뱉은 쓴소리는 그가 재임시절 일으켰던 경찰개혁 논란에 이어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용산참사, 김석기 전 청장과 대조
박 전 교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법집행을 함에 있어 무조건 강경대응을 해도 된다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면서 ‘법치 확립’을 부르짖고 있는 현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교장은 또 “경찰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면서도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인명 존중’이라는 절대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주일 앞서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불법과 불의에 보다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과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박 전 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후배 경찰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우리 사회의 춥고 어두운 곳을 어루만지는 분들이 경찰을 지나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하지 말라”면서 “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런 분들과 경찰이 더욱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그 분들을 항상 가까이 모셔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 치안감의 퇴임식에는 함세웅 신부 등 평소 친분을 맺었던 지인과 경찰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휴대폰 전원 꺼놓고 세상과 단절 중
계급정년을 약 1년 남겨두고 현직에서 물러난 박 전 교장은 24일 현재, 며칠째 휴대폰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다. 인천에 있는 경찰종합학교에 문의한 결과 휴대폰 번호가 바뀌지는 않았으며, 국외 출타 등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아님에도 명퇴로 자연인이 된 이상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물러나 있고 싶은 심정인 것으로 풀이된다.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A씨는 “현직시절에도 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다 보니 현실과 자주 괴리현상을 빚었다. 사실 수사권도 우리가 요구한다고 이뤄지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찌 됐든 우리 조직에서는 개성이 강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는 언행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국력이 낭비되는 소모전만 벌이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 전 교장의 과거 언행 가운데는 ‘경찰 총수에 대한 직위 개방’ 주장도 파격적이었지만 경찰 내부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온 것은 충북경찰이 자체적으로 지구대(파출소) 근무를 3교대에서 4교대로 바꾼 것이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파장을 일으켰다.
A씨는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심지어는 경찰 내부 게시판에 ‘이런 사람이 총수가 돼야 한다’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문제는 인력 확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근인력을 빼서 지구대에 보충하다 보니 이 역시 양면의 논란을 불러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퇴임식장에서까지 날을 세웠던 박 전 교장의 튀는 언행이 미완의 개혁으로 마무리됐고, 경제논리가 민주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그의 바통을 이어받을 제2의 박종환이 출현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주시 주덕면이 고향인 박 전 교장은 주덕중을 졸업한 뒤 상경해 중동고,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1981년 경위로 경찰에 입문했다.
개혁코드 간부 Q씨 “나는 이렇게 본다”
존경했던 그분, 언론이 이용하는 측면은 없지 않나
경찰총수 직위개방 주장, 용산사태 보면 ‘선견지명’
계급사회인 경찰조직에서 정당성을 떠나 이제 대놓고 개혁을 외칠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박종환 전 교장의 퇴임사에 대해서도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유행가 가사와 같이 시큰둥한 반응이 만연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 수사권 독립과 경찰수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도내 경찰 간부 Q씨와 인터뷰를 나눴다. Q씨는 “굳이 나를 숨길 이유도 없지만 일단은 익명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Q씨가 익명을 요구한 이유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선이 굵은 박 전 교장을 존경하지만 대한민국이 온통 강경과 온건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마당에 갈등구조를 형성한 것은 아쉽다”는 말로 운을 뗐기 때문이다.
Q씨는 이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언론에게 돌렸다. 언론이 문맥 전체에서 김석기 전 서울청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발언만 끄집어내 두 사람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대립시켰다는 것이다. Q씨는 “결과적으로 경찰의 위상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효과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장 직급 장관급 돼야
Q씨는 그러나 박 전 교장이 현직에 있을 때 보여줬던 과감한 언행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분 그늘에서 자랐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에 그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
Q씨는 “김석기 전 서울청장이 용산사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경찰 총수 자리에 대한 임기제가 무색해진 것을 확인했고 그러려면 차라리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치인이 총수를 맡는 게 낫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 전 교장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Q씨는 또 “조직내부 인사가 맡아서 달라진 것도 없다”는 고언까지 덧붙였다.
Q씨는 경찰청장의 위상과 관련해서도 박 전 교장과 견해를 같이했다. Q씨는 “과거 지방청장 수준이었던 해양경찰청의 직급이 차관급이 돼 경찰청장과 동일한 것은 경찰 위신의 문제”라며 “외부인이 경찰청장을 맡더라도 장관급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