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 조항범 교수 지명학회에서 논문 발표
일제시대 지도, 제보자 증거, 타 지역 사례 들어 주장
지난 7월 11일 서원대 미래창조관에서 지명학회가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조항범 충북대 국문과 교수는 ‘청주시 내덕동 소재 고개 이름은 밤고개인가 반고개인가’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일명 ‘밤고개, 반고개’ 논쟁은 내덕동 주민 김근태 씨가 오래전 ‘반고개(半峴)’의 타탕성을 주장하는 내용을 시에 제출했고, 지난 4월 서울대 최명옥 교수를 찾아가 ‘반고개’주장에 대한 자문 확인서를 받으면서 불거졌다. 올 4월과 5월 서울대 최명옥 교수와 충북대 조항범 교수는 같은 지명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면서 ‘해명에 대한 해명서’가 3차례 이상 오가는 등 논란이 계속됐다.

이날 지명학회에서 조항범 교수는 “밤고개, 반고개(半峴), 방고개, 율현(栗峴)으로 불리는 곳의 1차적 지명은 ‘밤고개’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 일제시대 군사용 지도인 약도(略圖)에서 지금의 내덕동을 ‘율현(栗峴)’으로 표기한 점 △ 1914년 일제강점 이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밤고개 주막’ 명칭이 기록된 점 △ 1912년 조선총독부가 낸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서도 밤고개를 율치촌(栗峙村)으로 기록된 점 △ 1917년 신구대조조선전도(新舊對照朝鮮全道)에서는 율현리(栗峴里)로 기록된 점 △ 일제가 만든 토지조사부에서 구 한국시대 지명인 율현리(栗峴里)로 기록된 점 등을 들었다. 이 지도에는 모두 ‘밤고개’를 한자화한 지명이 기록돼 있다.
이어 조 교수는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문제의 ‘밤고개’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만약 청주의 ‘양안(量案)’이 전해진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고개와 관련된 명칭은 현재 일제강점기 문헌을 통해서야 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명옥 교수는 자문확인서에서 △ 일제 시대 작성된 지도는 일제 시대 첩보활동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 만들어져 정확도가 떨어진다 △ <ㄴ>이 <ㅁ>으로 변화는 예는 많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찾기 어렵다 △ 만약 ‘밤고개’라면 마을 주민들은 그 고개를 ‘밤:꼬개’또는 ‘방:꼬개’라고 할 것이지만 현재 주민들은 ‘밤:고개’또는 ‘방:고개’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반고개’를 뜻한다 등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에 김근태 씨도 “일제시대 지도는 왜곡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지역의 역사 전공자들은 “일제지도를 자료로 참고할 때 통상적으로 정확도는 99%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날 조 교수는 “최근 제보자인 이정준 할머니(1933년생)는 고개에 있던 방앗간 집 큰 따님이시다. 할머니께서는 어려서 이 고개를 ‘방고개’라 하는 것에 의심을 품고 뒷집에 살고 계시던 고령의 할머니에게 연유를 물어봤는데 그 할머니께서는 방앗간 앞산(예전 가축보건소가 있던 곳)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고개’라고 하셨다. 이정준 할머니는 이 고개를 ‘밤고개’라고 부르고 있으며 ‘반고개’는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밤고개’와 ‘반고개’를 함께 쓰는 지역이 몇 군데 있고, 또 밤고개를 일차지명으로 본다는 것. 그는 충남 천안시 병천면 관성리, 경남 마산시 진전면 율티리, 서울시 강남구 율현동 등을 예로 들었다. 또 <ㅁ>이 <ㄴ>으로 변하는 전국의 지명 예를 들어 주장을 뒷받침했다. 조 교수는 “밤고개 지명은 이미 표준지명이다. 지도에도,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밤고개로 표기돼 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주민들이 대다수 이해하고 있는 공식화된 지명을 뒤바꾸려면 문헌이나 결정적 증언, 지명학적인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더 이상 밤고개 논란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며 속내를 밝혔다.
1995년 내덕동 주민들은 안덕벌 초입에 ‘밤고개 유래비’를 세웠다. 이곳이 밤고개로 불리게 된 전설과 1914년 안덕벌과 합병해 지금의 내덕동이 됐다는 간략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에 김근태 씨는 “역사의 잘못된 기록이 금석문을 통해 후대에 남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오랫동안 ‘반고개’주장을 펼쳐왔다.
한편, 이에 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김근태 씨 이의신청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다. 내덕동 주민자치위원회 의견을 듣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된다. 문제가 된 유래비를 세운 것도 지역주민이기 때문에 철거할 권한도 이들에게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