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민중의 목탁(상)] 촛불종교인 사법처리방침에 반발

경찰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최근 잇따라 열린 시국미사와 기도회, 법회 등을 주도한 종교인들에 대해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촛불민심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맞서 폭력 충돌을 빚는 상황에서 6월3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촛불현장에서의 시국미사로 상황을 급반전시켜 평화적 촛불 기도회, 법회가 이어졌음에도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종교인 사법처리 발언’을 내뱉은 것은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한 상황.
특히 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5일 단식기도를 끝낸데 이어, 원불교 역시 8일 계획했던 시국법회를 잠정 연기한 상황에서 경찰의 이 같은 방침이 발표되자 평화로운 시위를 유도하며 국민을 보호하려는 종교인의 양심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강경한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국민들의 ‘촛불 피로감’을 고려해 한발 물러서려던 온건론에서 다시 진용을 정비하자는 강경론으로 선회하도록 오히려 경찰이 기름을 부은 꼴이다. 지역의 종교인들도 ‘상황을 지켜보자’는 온건론과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가르쳐 주자’는 강경론으로 맞서고 있다.
지역의 종교인들이 촛불정국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이른 지난 6월10일이다. 기독교 27명, 불교 16명, 천주교 5명 등 모두 48명이 ‘이명박 정부의 국민여론 무시와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우려하는 충북종교인 선언’을 발표하고 이날 집회에도 앞장을 선 것이다.
종교인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평화와 사랑 그리고 자비심을 전하는 우리들이 나서지 않고 광우병 쇠고기 정국이 평화롭게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랫동안 깊은 침묵의 기도를 드려왔지만 더 이상 침묵으로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끼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운을 뗀 뒤 “쇠고기 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 관철, 한반도 대운하 사업 포기 등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된 국정운영을 바로잡고자 선한 양심을 가진 세력들과 힘을 합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종교인들의 시국참여는 사실 정치적 행동이라기보다는 독선적인 정국운영과 이로 인한 반목과 대결에 대한 우려의 성격이 강하다. 종교인들은 선언문의 도입부에서도 “어린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이루어 온 국민의 마음속에 진실과 정의의 외침으로 커져 가는 것을 한편으로 자랑스럽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 가운데 지켜봤다”고 밝히고 있다.
소통부재 이명박 정부 실체 드러내
종교인 사법처리 방침에 대한 지역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해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광우병 충북대책위 이명주 상황실장(민주노동당 충북도당 사무처장)은 “종교인의 촛불참여는 집회를 평화적 기조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것조차도 부정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야간집회라서 불법이라면 집시법이 잘못된 것이다. 국민들의 상식과도 어긋난 법집행이고 반감만 사게 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종교인들의 반응도 표면적으로는 ‘즉각 대응’과 ‘사태 관망’ 등 다소 온도의 차이가 있지만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다. 증평 초중성당 김훈일 주임 신부는 “천주교의 현실참여는 이슈를 쫓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악에 대해서는 정의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가톨릭의 지침이자 교리다. 공권력을 동원해 재갈을 물리려하면 저항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이명박 주식회사의 직원처럼 살 수는 없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가르쳐 주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주 삶터교회 김태종 목사도 “종교인을 사법처리하겠다는 것은 저쪽의 방침이고 우리는 해야할 일이라면 계속해야만 한다. 어차피 그쪽은 실익이 없으면 그만둘 사람들이고 우리는 개인적인 이해상관이 없어도 목숨까지 내놓을 사람이 있는 집단이다. 승산은 뻔하다. 지는 싸움을 공권력으로 뒤집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우리도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풍주사 주지 덕일 스님은 ‘종교인의 시국참여는 철저하게 비정치적이고 다만 민심을 따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덕일 스님은 “비폭력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붙잡아 넣을 수 있겠냐”고 전제한 뒤 “종교인으로서 사회적인 일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국민들도 똑 같은 생각이겠지만 대통령이 ‘참회하고 잘못했다’고 말해놓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뭐가 있냐? 끝까지 가야한다”고 강경론을 펼쳤다.
청주청원불교연합회 사무처장은 관음사 주지 현진 스님은 ‘일단은 사태를 관망해야 한다’는 보다 온건한 입장이다. 현진 스님은 “정부가 제대로 해법을 찾지 않을 경우 다시 촛불을 들더라도 처음 촛불을 들었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을 폈다. 현진스님은 그러나 “집회의 평화적 영역을 만들고 완충적 역할을 한 것은 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소망의 집 원장 노영우 목사는 “정부의 강경대응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정부 측에 자제를 당부했다. 노 목사는 “어차피 지역에서는 평화시위를 했다. 날도 무더워지고 어차피 촛불집회도 소강상태로 가는데 정부의 대응방식이 싸움을 키우고 있다. 강하게 누르면 튕겨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종교인 나선 것 ‘심각한 현실’ 반증
촛불 종교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물은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다. 김 신부는 청주 금천동 성당의 주임신부지만 지난해 말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사회문제로 이슈화하는데 앞장선데 이어 최근 시국미사에 이르기까지 전국구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에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김 신부를 비롯한 사제단이 지난 5일 촛불 관련 단식을 접은 것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이를 ‘회군(回軍)’로 표현했을 정도로 촛불집회에서 김 신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김 신부는 5일 단식을 접으면서 “정부의 답변과 태도를 지켜보고 의견을 낼 것”이라며 “향후 의견 표명은 꾸준히 하겠으나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해서는 공식 논의된바 없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그러나 최근 경찰이 강경대처 방침을 공표한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김 신부는 “사제단이 시국기도회를 마감한 것은 정부에게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 안을 것인가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인데, 서울경찰청장의 입장을 정부의 입장으로 알아들으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밝혔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대회 오경석 사무국장은 종교인들이 시국현안에 앞장섰다는 사실 자체가 현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오 사무국장은 “공안탄압으로 촛불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나서서 균형을 잡아줬다”며 “종교인들이 나섰다는 것 자체가 현 상황이 심각하고 결정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사무국장은 “과거 국난을 겪었을 때 승병이 일어나고, 민주화운동의 결정적 시기에 사제들이 나섰던 것을 고려할 때 지금이 바로 심각한 시점이라 강조했다.
광우병 충북대책위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2차례 청주시 철당간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