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단합된 힘, 세상 바꾼다” 시민의식 확산
학교용지부담금 위헌·폭설대란 공익소송‘잇따른 승소’

시민들의 단합된 힘이 세상을 바꾼다! 이 말을 입증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미 지난 2005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학교용지부담금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충북참여연대를 중심으로 337명의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에 학교용지부담금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최근 3월 13일 대법원은 2004년 3월 폭설대란으로 고속도로에 갇혀있던 시민들에게 한국도로공사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 2004년에 쏟아진 ‘100년만의 폭설’은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한국도로공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죄로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역시 충북참여연대를 중심으로 43명이 소송을 제기, 얻어낸 성과였다. 이로써 우리사회에는 ‘부당한 것은 참지 말자’는 인식이 새롭게 생겨났다. 지난해 청주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청주시 공무원들의 시간외 근무수당 편법수령 문제도 시민들이 주민감사청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에 밝혀졌다.

시간외 근무수당을 주민감사청구한 충북참여연대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지난 20일 청주시 음식물 쓰레기 사업을 또 다시 충북도에 감사청구했다. 이 결과 또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모두 시민들의 단합된 힘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들이다.

2004년 3월 5~6일 충청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100년만의 폭설’이다. 당시 폭설로 농가가 무너지고, 가축들이 죽었으며, 사람들은 교통대란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순하기만 했던 눈은 무서운 흉기가 되어 사람들을 가두고 건물과 시설물을 파괴시켰다. 축사와 비닐하우스, 주택, 공공시설의 파괴로 충북도내 전체에서는 1600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당시 청주시내 교통상황이 아수라장이 되자 시민들은 청주시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을 퍼부었다.

충청권을 강타한 폭설은 당시 이 지역을 지나가는 경부·중부고속도로 이용객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들은 짧게는 5~6시간부터 길게는 30여 시간을 고속도로상에서 꼼짝 못하고 갇혀있었던 것. 하지만 문제는 눈이 많이 내린 것이 아니고 이에 따른 재난관리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5일 새벽 4시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으나 관계기관이 안일하게 대처, 시민들만 당하고 만 것이다.

“제대로 된 재난관리시스템 만들어라”

그러자 충북참여연대는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지난 13일 승소를 이끌어냈다. 충북참여 연대가 진행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는 43명의 원고가 참여했다. 소송 대리인은 오세국 변호사. 2004년 5월 오 변호사는 원고 43명이 각 200만원씩 86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고립시간에 따라 1인당 35~60만원씩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 43명이 받는 총액은 1655만원.
당시 충북참여연대측은 “이번 소송은 단지 고속도로 상에서 고통을 겪은 시민들이 개별적 보상을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매번 재난이 벌어지고 나서 뒤늦게 대책을 세우는 정부와 관계기관에게 제대로 된 재난관리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크다.

폭설속 고속도로 대란은 충청남·북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상황에서 차량 지체가 13km나 이어진 사태를 단순 차량지체로 오판한 한국도로공사의 과실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자연재해와 관련된 소송 전례가 많지 않았음에도 충북참여연대는 ‘귀찮은’ 소송을 기꺼이 감수했고, 이를 통해 엉망진창인 재난관리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이들은 98년 12월 4일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발생한 지하철 지연사고로 최장 50분간 갇혀 있었던 승객들을 모아 소송을 제기, 위자료 10만원씩 받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충북참여연대측이 홈페이지와 언론을 통해 원고인단 모집을 알리자 곧 바로 시민들은 피해사례를 쏟아냈다. 이 모씨는 “유방암환자인 나는 서울대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집으로 가던 중 22시간을 고속도로상에 갇혀 있었다. 고생 끝에 승객 6명과 함께 콜밴을 타고 새벽에 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적었다. 또 김 모씨는 “14시간을 중부고속도로 상에서 김밥 2줄로 버텼다. 출근도 하지 못하고 시동을 껐다 켰다 하면서 전날 채운 휘발유의 반을 정체된 차량에서 소모했다. 결국 청주까지 걸어나와 친구집에서 하루밤 신세를 져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런가하면 한 모씨는 “업무차 대전으로 가다가 옥산휴게소로부터 약 6km 지점에서 차가 꼼짝도 않고 28시간을 서 있었다.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버티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전력연구원에서 개최하는 전력핵심개발사업 과제 발표까지 미루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며 원고인단에 참여했다.

한국도로공사 업무태만에 ‘철퇴’

‘100년만의 폭설’은 당시 매우 큰 사건이었다. 감사원은 이를 특별감사했다. 감사원은 폭설로 인해 교통대란이 발생했음에도 한국도로공사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고속도로 진입 차량을 차단함으로써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물론 교통소통 예정시간을 잘못 발표하는 등 정부 신뢰를 실추시켰다고 발표했다.

▲ 2008년 1월 1일 우암산 새해맞이를 주최한 충북참여연대. 두 가지 중요한 소송을 승소로 이끌었다.

이효윤 충북참여연대 국장은 “피해자들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해 매우 힘들다. 우리는 공익차원에서 이 소송을 제기했고, 총체적인 재난관리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고자 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 진입을 불허하고 폭설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송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국적으로 10군데 정도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추진은 개별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국장은 “충북참여연대와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집단소송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집단소송법’은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하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나머지 사람들도 구제를 받는 제도다. 하루빨리 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단소송제가 제정되면 국민들은 실제 엄청난 권리를 보장받는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 공장가동으로 주변 환경이 오염돼도 주민들은 경비가 많이 들고 복잡해 소송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 불량물건을 구입한 소비자도 개인이 손해보는 액수가 작아 소비자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있으면 각각 분산돼 있는 작은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반대하고 있으나, 미국과 독일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용지확보특례법 ‘퇴출’시킨 사람들

이 국장은 “이번에 소송이 가능했던 것은 오세국 변호사가 수임료를 받지 않고 봉사했기 때문이다. 원고들은 서류를 제출하는데 필요한 인지대만 부담했다. 오 변호사께서 기꺼이 이 업무를 맡아 우리로서는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원고인단 모집은 일정상 며칠 밖에 하지 못했다.

마감한 뒤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으나 다 받아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지금은 소송제기한 사람만 보상 받지만, 앞으로 집단소송법이 제정되면 모두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민들이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재난관리시스템이 진일보 하도록 관심있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충북참여연대 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는 오세국·홍석조 변호사는 충북참여연대 상임위원이다. 홍 변호사는 학교용지확보에 관한 특례법 위헌법률 심판과 반환청구소송을 제기, 역시 승소를 이끌어냈다.(본지 4면 참조)

학교용지부담금 위헌 판결도 시민단체와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다.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시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갈 뻔 했다.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은 대규모 택지개발로 인해 학교설립 수요가 급증하는데 반해 지방교육재정은 취약하자 학교용지 조성과 개발, 공급 및 경비 부담을 특정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시킨 제도.

▲ 입주자들에게 학교용지부담금이 부과됐던 청주시 봉명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그래서 300세대 규모 이상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은 분양금액의 0.8%, 개발사업지역내 단독주택 건축용 토지를 분양받은 사람은 분양가의 1.5%를 내야 했다. 만일 1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80만원, 같은 금액의 단독주택 토지를 분양받으면 150만원을 납부했다. 이는 분양금액이 클수록 세금이 올라가 가계에 적잖은 부담을 주었다.

이 법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충북참여연대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337명의 원고인단을 모집해 2003년 8월 14일 주민 민 모씨를 대표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8월 18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고, 또 같은 해 9월 17일 인천지법에서는 같은 사안으로 올라온 이 건에 대해 위헌성이 인정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판결이 난 것은 2005년 3월 31일.

우리 나라는 헌법상 의무교육 및 의무교육에 대한 무상교육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의무교육에 관한 한 학교용지 확보를 포함 물적 기반을 조성해야 할 몫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는 게 헌법재판소가 밝힌 위헌 요지다.

송재봉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우리는 학교용지확보에 관한 특례법 위헌 소송과 이미 납부한 학교용지부담금 반환청구 소송 두 개를 진행했다. 2002년 7월 1일 특례법이 시행되자 많은 시민들로부터 항의와 제보가 이어졌다. 그래서 변호사·법학자·법학교수로 ‘학교용지부담금 특별위원회(위원장 홍석조 변호사)’를 구성하고 법률 검토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 이 법은 조세평등의 원칙이나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관해 헌법에 배치되는 법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공재 성격이 강해 특정지역 주민들에게 세금을 물릴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학교용지부담금은 대규모 택지개발지역이 인구급증으로 교육여건이 악화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뭉치면 무섭다

이후 충북참여연대는 법률 폐지를 위해 청주지역 해당 아파트를 돌며 주민들에게 헌법소원 서명을 받고 원고인단을 모집했다. 당시 도내에서는 2만378세대에 대해 239억 2900만원이 부과됐고, 1만7203세대가 210억 1800만원을 납부했다.

충북도는 이 중 64억 2600만원을 위헌결정 직후 4283가구에 돌려줬다. 나머지는 이르면 오는 9월 중순부터 환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으로는 25만 가구가 4500억원을 돌려받게 된다. 충북참여연대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 중에서는 현재 대표 소송자만 환급 받았고, 나머지는 받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환급에 소요되는 예산 전액을 국가가 부담토록 한 특별법 원안규정을 문제삼아 국회 재의를 요구했지만, 수정되지 않았다. 통합민주당 노영민 의원(청주 흥덕 을)과 오제세 의원(청주 흥덕 갑) 등은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특별법 국회 통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당 차원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강태재 충북참여연대 대표는 “학교용지부담금 위헌 결정과 환급을 위한 특별법 확정, 폭설대란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보면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을 떠올렸다. 깨어 있지 않은 시민의 권리는 언제고 침해받을 수 있다“며 다중의 힘이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주민 246명의 서명을 받아 충북참여연대가 충북도에 감사청구한 청주시 공무원들의 시간외 근무수당 편법수령도 시민들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 공무원 전체 1728명 중 절반을 넘는 900명이 시간외 근무수당을 부당하게 청구했고, 이 금액이 1억4500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간외 근무수당 문제가 한 번의 감사로 개선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도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뚜껑을 열어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충북참여연대의 주민감사청구가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주시 음식물 쓰레기 사업 주민감사청구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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