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공학박사·건축사

깔깔깔 웃음 섞인 청순한 여대생의 잡담과 휴대폰 통화소리, 봄을 맞이하려 울타리에 엉켜있는 장미넝쿨을 다듬는 전지가위소리, 뚝딱뚝딱 조그마한 가게를 손질하고, 간혹 요리조리 좁은 길을 빠져 다니는 오토바이 소리에 섞여 아이들 야단맞는 소리도 돌연 들리기도 한다.
조그만 카페의 테라스에 널려있는 의자들을 정리하며, 그날 장사를 위해 무게있는 식재료를 옮기는 주인아저씨의 애쓰는 소리,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를 틀어놓고 분주히 손님맞이 청소를 하는 여종업원, 도시의 뒤편 사잇길에서 그들 모습을 통해 여러 가지 작은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하루의 일과인냥 양지에 나와 노환의 시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지루하듯 노시는 노모들의 화투치는 소리, 그리 넓지않은 탁자에서 중절모를 쓴 노인분들의 탁주 넘기는 소리, 때론 번화가에 가려진 한가한 듯하고 쫓기지 않는 듯한 그림속에서도 작은 소리가 들린다.
애매한 시간에 장보러 나온 깍쟁이 주부와 가게주인간에 오가는 가격 흥정도 지나는 이로 하여금 관심을 끌게 하기도 하며, 약간 비린내 섞인 시장의 어수선한 소리에서도 그들의 바지런한 삶에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백일홍길, 젊은이길, 행복길, 바른맘길, 국화길, 은행나무길, 새벽장길, 보람길... 듣기에도 재미있고 정감이 가는 우리지역 일부의 도로명이다. 시각적 규모에 가려져있는 재미있는 사잇길을 통해 새롭고 커다란 규모의 낯선 곳보다는 가끔 우리가 사는 모습 그 자체의 흔적이 남아있을 만한 곳에서 지나간 시간을 되찾는 여유를 갖고 싶다. 우리나라 40대 이후의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집을 찾는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시집을 통하여 자기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생활이 많아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사잇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해외로의 여행들도 많이 다니지만 우리 주변의 가까운 부분에서 틈틈이 돌아다니다보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사소한 요소들로부터 잊고 있던 느낌들을 전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다.
배낭 메고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주말 자전거를 이용해서 삶의 의미를 실감케하는 도심속 재래시장을 시작으로 상점가, 식당가, 주택가, 공원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좁은 사잇길을 통해 도시갤러리를 다녀보자. 이는 곧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아닐까. 커다란 아파트 숲속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소하고 낯선 듯하지만 작은 규모의 장소들과 그 속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삶의 모습과 소리들이 순박하고 진솔한 도시갤러리의 모습으로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바쁘게 쫓겨 다녔던 시간들을 좀 더 나누어서 스쳐 지났던 작은 골목과 장소를 산책하듯 즐겨보자. 우리의 도시 갤러리를….
언젠가 친한 벗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주변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키워서 그것들을 받아들일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도심속 사잇길을 갤러리를 즐기듯이 여유롭게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 있을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은 삭막한 콘크리트. 그 속에서 악다구니를 써 가며 삶을 영위해 가는 기계적인 자신의 모습만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용차 대신, 자전거 패달을 밟을 수 있는 자그마한 여유만 있다면 회색빛 도심의 사잇길도 어렷을 적 뛰어놀던 신작로나 개울처럼 정겨워질 수 있다.
소똥 냄새 온데 간데 없고 풀벌레 소리 벗 삼을 수 없는 도시의 현대인이라지만 그런 자그마한 여유와 마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대로 콘크리트 숲 속에서 새소리를 가려 들을 수 있지 않을는지.
여름이 오기전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그 곳을 다시 찾아가보련다.
라일락향기와 빠알간 장미 넝쿨이 피어날 그 사잇길을 찾아, 도심의 갤러리를 즐겨 보련다. 마음만 조금 열면 그 곳이 어딘인지 누구에게나 보이잖은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