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장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고 압력에도 의연하며 거짓말이 탄로 날 위기가 닥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냉혹하며 오히려 피해자나 고소인을 당황하게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30일 전국 80여 개 여성단체가 주최한 대선후보 여성정책 토론회에서 이명박 당선인(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은 여성가족부를 존치하겠냐는 사회자에 질문에 “하겠습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했다.
오히려 “여성가족부의 기능이 다른 곳에 흩어져 있으면 모아주겠다”며 ‘여성가족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존치를 재차 확인하는 패널에게 웃으면서 “왜 그렇게 자신이 없으십니까?”라고 반문하기 까지 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 발언이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당당하다 못해 더 이상의 토론을 무색하게 하는 단호한 대답에 수긍 아닌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한밤중 토론회 동영상을 다시 보니 왜 그리 소름이 끼치는지.
BBK 동영상이 공개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너무 엄청난 거짓말을 접하게 되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입으로 “금년 1월달에 비비케이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을 하기로 생각을 해서. . .” 라고 말한 동영상이 나왔는데도 BBK는 자신과 관계없는 회사라고 우겼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보다 거짓말에 속은 국민들 탓을 한다. 속은 사람 책임이니 당해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가 존치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기대할 것을 기대해라.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는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 여성가족부를 유지해 줄줄 알았냐’면서 여성가족부 존치 주장을 물 건너 간 일,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오히려 여성계를 허망한 주장을 하는 비현실적인 집단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지난해 여성계가 그렇게 반대해도 충청북도의 잘못된 인사는 버젓이 강행되었고, 충청북도 여성정책이 한참 후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되살아나서 더욱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지난 금요일 태안 구름포로 기름제거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연말에 이어 두 번째다. 한편 참 한심하고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 책임자인 삼성은 책임을 최소화하려고만 할 뿐 사과 한마디 안하고, 인수위는 해양수산부 통폐합을 버젓이 발표하는 상황에서 한도 끝도 없는 걸레질이 헛손질이 아닐까 생각이 드니 화를 넘어 눈물이 울컥 났다. 돌아오는 길에 들은 태안 주민의 분신자살 소식은 가슴에 큰 돌덩이를 하나 더 올려놓는 듯 하다.
하지만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은 기름 범벅이 된 돌을 닦는 건지 도를 닦는 건지 알 수 없는 작업을 한없이 반복하면서 서로 다짐한다. 10년이 되어도 잊지 말고 책임자에게 분명히 끝까지 책임을 묻자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게 하자고. 대통령 당선자가 아무리 경부운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언론들이 모두 줄서서 기정사실화 해도 ‘안된다 절대 안된다’ 끝까지 막아내자고.
단숨에 되돌려 지고 후퇴하기도 하지만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여성정책을 실현하라는 당연한 주장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그리고 성평등 정책의 중단없는 지속을 위해 여성가족부의 존치가 필요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주장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다 내가 죽으면 돌들이라도 일어나서 말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