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12회 단재문화예술제전 소고

“자 여러분 우리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신나게 노래하고 흔들어 봅시다. 이런 자리에서는 앉아 있는 것이 쪽팔리는 겁니다.” 단재 초상이 그려진 티셔츠에 점퍼를 걸치고 납작모자를 눌러쓴 왜소한 몸매의 크라잉넛 리더가 외치자 관객으로 가득한 청주예술의 전당은 이내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무명가수 시절 호두과자 한 봉지로 멤버들의 주린 배를 채우면서 울었다는 크라잉넛은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부조리한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과 해방 그리고 자유의 정신을 독특하게 구가하는 크라잉넛의 펑크록은 참다운 건설을 위해 철저한 파괴를 외쳤던 단재의 기상과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그들도 단재처럼 하늘 북을 울리며 광야로 말달리고 싶어 했다.

이 공연장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신채호와 신재효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젊은이들까지 단재에 대한 객석의 뜨거운 추모열기 속에서 단재의 단심(丹心)에 물들어 갔다.

올해 12회째를 맞는 단재문화예술제전은 젊은 영웅들인 수십 수백 수천의 ‘청년 단재’ 후예들의 출현을 꿈꾸며 기획되었다. 단재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토론, 경건한 추모사업도 중요하지만 단재의 삶과 사상이 이 시대 이 땅 젊은이들의 피 속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로 맥맥이 흐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단재를 더 깊이 알고자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충북역사교사모임 주관의 단재역사퀴즈대회는 눈망울이 초롱한 초등학생에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5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가하여 어떤 학술발표회보다 흥미롭고 진지하게 진행되어 참가자 모두가 감동의 열기를 느낀 뿌듯한 단재알기 한마당이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일체의 강연을 접고 있던 도올 김용옥선생을 강청(强請)하여 단재강연회를 마련한 것 역시 그 목표는 오직 한 가지, 피 끓는 단재정신으로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 단재’의 출현을 꿈꾸기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젊은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가.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수많은 스타들 속에서 돌아가신 단재를 어떻게 영웅으로 우뚝 세울 수 있겠는가.

단재의 사상과 행적을 제대로 연구?정리하기 위한 학술회의에서는 독립기념관이 새로이 편찬하는 《단재신채호전집》(9권)에 대한 논의와 함께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2,300페이지에 이르는 자필원고를 포함한 5,000페이지에 이르는 자료의 간행과 연구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 된 것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성과였다.

과거 십 수 년 동안 단제문화예술제전추진위가 수많은 단재관련 귀중자료집을 출판하고 국제 심포지움, 문화행사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해온 것은 이 지역의 귀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9,000여명의 국민성금을 모아 전국에서 가장 단재다운 동상을 청주예술의 전당 앞에 세우는데 앞장섰던 <단재를 기리는 모임>과도 힘을 합쳐 이 땅에 젊은 단재들을 힘껏 일으켜 세우는 일이 우리 단재 관련 단체들의 몫으로 남아 있음을 더욱 절감한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웅변해주듯이 지도자가 제 한 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서 살까를 걱정하면 그 민족은 헐벗고 굶어주리게 되고 지도자가 제 한목숨 부지코자 발버둥 치면 그 민족은 사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재는 나라가 망하여 중국으로 망명할 때 안정복의 《동사강목》이라는 역사책 한권 품고 압록강을 건넜다. 단재는 죽어서도 그 살은 썩어 이 강토에 흙을 보태고 뼈는 굳어 돌을 보태기를 소망했다. 단재는 나라의 독립과 올곧은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해 병든 몸을 지고서도 일체의 안일과 타협을 거부했다.

지도자는 권력이나 재산이나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 고결한 정신 하나로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다.

지도자가 권력의 노예가 되고, 지도자가 물질의 노예가 되고, 지도자가 국민을 기만하고, 지도자가 썩은 오늘 이 세상에서 이 시대의 단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가 젊은 단재의 출현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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