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편집국장

며칠전 만난 친구가 자신의 고민 한가지를 털어놓았다. 올해 중3인 아들이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소재한 청원고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주소이전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청주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가족들까지 郡지역으로 주소이전할 경우 아들 대학입시에서 농어촌 학생 특례입학 조건에 해당된다는 것. 과연 위장 전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로에 섰던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던 또다른 친구와 필자는 별다른 고민없이 대답했다. “애를 위하는 건데, 그냥 해버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입시비리 사건으로 신문방송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외국어고 입시문제 유출파동으로 대선 뉴스가 주춤할 지경이었다.

현직 교사가 사설학원에 문제를 빼돌려 주었고 학원장은 3개 외국어고 응시생에게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입, 대입의 내신비중이 높아지면서 학교 시험 유출도 후유증이 큰 마당에 입시문제까지 빼돌리다니 말문이 막혔다. 더구나 금전적 대가에 눈이 먼 현직 교사가 범인으로 밝혀져 충격이었다.

연이어 터진 것은 대학총장 부인이 치과대학원 편입로비를 조건으로 학부모로부터 2억원의 돈뭉치를 받은 사건이었다. 일선 평교사부터 대학 총장님까지 흔들리는 우리 교육계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했다.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이무렵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결정했다. 난, 자식에게 거짓말을 가르치진 않겠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막막한 가슴속에 또렷한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래, 정답은 항상 내 안에 있지”

지난 12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차 기자회견을 통해 떡값 검사 명단 일부를 공개했다. 검찰총장 후보자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임채진 내정자까지 명단에 포함됐다. 대검 중앙수사부장과 국가청렴위원장도 ‘삼성 장학생’ 의혹을 받게 됐다. 한국의 불가침적인 권력집단인 검찰과 삼성이 변호사 한사람의 양심고백으로 사상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재벌과의 전쟁’을 강조했던 어떤 정권도 삼성의 치부를 제대로 수술하지 못했다.

하지만 ‘골리앗’ 삼성이 ‘다윗’의 돌팔매에 급소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비빌 언덕이었던 검찰도 정의구현사제단의 단계적 공세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우리 사회의 두 성역이 급속하게 무너질 것이다.

사태의 파장 때문에 정의구현사제단은 김 변호사의 제보이후 상당기간 양심고백의 진정성을 판단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제단의 기자회견장 펼침막에는 ‘돌아온 아들’(탕자)이라는 성경 표현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결국 과거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 계단을 오르다보면 눈에 띄는 슬로건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 그 아름다운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자식에게 거짓말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내 친구와 오욕으로 얼룩진 과거를 고백하고 광장으로 나선 김 변호사에게 안녕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런 이웃들을 통해 다시금 나를 곧추세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내게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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