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상당산성 민영휘 후손 땅 환수위해 4년간 행군
토지 등기부등본 1박스 조사, 족보도서관까지 뒤져

“의정활동 중에 우연찮게 내 눈에 띄게됐고,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면서 되찾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났다. 시의원으로서 할 일을 당연히 한 것 뿐이데, 이런 인터뷰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충북참여연대 산하 상당산성내 친일재산환수시민위원회 김경태 위원장(48 전 청주시의원)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신과 상당산성의 인연을 설명했다.

제7대 청주시의원 재직 때인 지난 2003년 12월 김 위원장은 예결위에서 청주시 예산안을 검토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15억원의 상당산성 성곽보수비와 토지매입비가 고스란히 이듬해로 이월됐기 때문.
“한푼도 집행되지 못한 이유를 물었더니 ‘산성내 땅을 한사람 후손들이 공유하고 있는데 이해관계가 달라서 합의를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산성이라면 옛날엔 국가의 땅이었을텐데, 어떤 연유로 개인이 그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해당 토지의 소유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상당산성이 애초부터 국가의 방위시설인데 어떻게 특정 개인의 소유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당초 국유지가 민간 소유권으로 바뀐 경위에 대해 취재결과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제정된 산림령을 근거로 거대 산림지주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국유임야 민간대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제정했고 주로 일본인들에게 임야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실제로 민씨 후손들이 소유한 산성 토지의 등기부상 권리이전 내용을 보면 국유지→일본인(민영휘)→계성주식회사→조선신탁주식회사→민씨 후손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기-타이핑-컴퓨터 3단계 등기부등본
“민영휘는 1935년 조선강점 25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공로자명감’에 소개된 한국인 353명 중에 포함될 정도의 친일인사였다. 말그대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350명의 영향력있는 인사인데 국유지 임대는 수월한 일 아니겠는가? 조사해보니까 계성주식회사나 조선신탁이나 모두 민영휘 아들인 민대식, 민규식이 대주주로 참여해 만든 회사였다. 실제로 일제당시 민영휘씨가 상당산성내 토지 90% 정도를 자신의 손에 넣지 않았나 생각된다”

2004년도로 접어들면서 김 위원장은 의심이 가는 산성내 257필지 토지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모두 발부받아 조사하기 시작했다. 등본은 해방직후 수기로 작성된 것과 타이핑으로 전환된 것, 최근의 컴퓨터 전산화작업으로 완성된 것 등 3가지 종류를 모두 발급받아 전체 한 박스가 넘는 분량이었다. 등기발급 비용만 70만원에 달했다는 것. 특히 수기로 작성한 등기부등본은 김종욱 박사(75 전 충북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한문을 해독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독립운동가 김은배옹의 후손으로 자기 일처럼 열성적으로 자료분석을 맡아줬다.

특히 김 위원장은 민영휘와 아들 형제의 친일행적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다. 국회도서관은 물론 부천에 있는 족보도서관까지 찾아가 민씨 집안의 족보를 확인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수년전부터 친일인명사전 발간작업을 하면서 놀랄만큼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민영휘 일가에 대한 자료도 충분히 제공받았고 상당산성 땅을 꼭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됐다. 우리가 조선의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된 8월 29일을 국치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가사적지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이런 상황은 국가의 수치가 아닌가?”

후손에게 지자체 무상기증 은밀히 제안
김 위원장의 토지자료 조사와 <충청리뷰> 등 지역언론의 상당산성 친일재산 환수 필요성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청주시는 2005년 7월 더 이상의 토지매입을 중단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민씨 후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 토지 무상기증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민영휘가 설립한 서울 휘문고와 풍문여고 재단 관계자를 만나 청주시 헌납을 제의한 적이 있다. ‘어차피 국가에 환수되느니 스스로 지자체에 기증하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으냐’고 제안했다. 청주시의 입장으로보면 국가 귀속될 경우 지자체가 권한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대토를 제공하던지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곧장 무상기증받을 경우 환수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판단돼 그렇게 권유했던 것이다. 하지만 ‘환수될 땅이 아니다. 정당하게 소유권을 갖고 있는 땅’이라고 강변했다”

김 위원장은 민씨 후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실소를 금치 못할 상황도 겪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민영휘의 4대손인 모인사는 “우리 할아버지(민영휘)는 은밀하게 중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까지 대주신 분이다. 겉으로는 기관장도 맡고 일제에 협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창씨개명도 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조국의 독립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뒤로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런 부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는 것. 또한 지난해에는 상당산성 땅을 관리하는 민씨 후손으로부터 “(특별법 제정이 됐는데)토지 재산세가 나왔는데, 내야하는 거냐?”는 전화연락을 받고 “지금까지 청주시에서 받은 땅값이 수억원인데 세금낼 돈이 없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후손에게 지자체 무상기증 은밀히 제안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청주시의원 선거(사창동)에서 낙선한 뒤에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측과 협의해 상당산성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시민위원회를 구성했다. 8월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김 위원장은 9월에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의견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했다.

재산조사위는 같은해 12월 1차로 친일파 후손 41명의 소유토지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민영휘 후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따라 상당산성 시민위원회는 재산환수 촉구 의견서를 2차례에 걸쳐 재산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또한 재산환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여론을 모으는데 주력했다. 마침내 지난 13일 상당산성내 30만㎡의 땅이 국고 귀속 결정됐고 김 위원장의 4년에 걸친 행군은 첫 성과물을 얻게 됐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역 언론의 보도 덕분에 상당산성 친일재산이 신속하게 국고귀속 결정됐다. 충북은 재산조사위의 2차례 국고귀속 결정 결과를 보면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로 환수 토지가 많은 곳이다. 정부가 환수 토지의 규모에 따라 지역별 수혜정도를 차등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민영휘 이외에 도내 재산 조사대상으로 분류된 친일인사들의 조사가 정확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자체 나름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4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시민위원회를 조직한 충북참여연대와 김경태 위원장은 친일재산 환수작업이야말로 현실속에서 제대로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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