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업으로 존속 '틀' 가까스로 마련

시장(市場)에서 저지른 한 번의 실수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70∼80년대 충북경제의 가장 강력한 성장엔진으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주)대농이 5년여의 기나긴 법정관리 끝에 결국 ‘헐 값’(?)에 매각됐다. 그동안 눈물겹게 기울여 온 자력회생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대농의 미래는 새로운 인수자 ‘신안’의 손에 맡겨졌다.
서울 마포의 대농본사 빌딩, 13만4000평에 달하는 대농의 드넓은 청주공장, 경기도 반월의 나염·포염 공장, 중국 칭따오의 유한복장공사와 유한방적회사. 부채 6400억원. 담보채권 900억.
(주)대농의 자산과 부채는 지난 10일 호남 기업인 신안종합개발을 모태로 한 신안컨소시엄에 의해 1170억원에 매각됐다. 대농이 신안그룹의 계열사가 된 것이다.
대농을 법정관리하고 있는 서울지법은 이날 “부실기업은 매입을 희망하는 기업이 있을 때 매각한다는 원칙에 따라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신안종합개발의 대농인수 본계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대농의 매각-인수가 확정되기 위해서는 채권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한 관계인(담보권자)의 75%이상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매각이 4차례나 유찰되는 등 난항을 겪었던 만큼 이번에는 큰 어려움없이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청주공장 부지 개발 매력 ‘엄청’
대농은 부채 6400억원으로 현재 자본잠식상태이며 이중 담보채권이 900억원이고 나머지는 정리채권으로 이뤄져 있다. 대농의 총 채권액은 재무자문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에서 확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농은 방직경기 부진으로 지난해 1660억원어치를 팔았지만 288억원의 적자를 안는 등 한계상황에 부닥쳐 있다. 이 때문에 채권단조차 “대농은 신규자본이 투입되지 않는 한 회사가 살아나기 힘든 실정”이라며 “그동안 몇차례 매각이 무산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이번의 매각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대농 청주공장의 이운재 서무과장은 “부채 6400억원중 2400억원은 채권단이 출자전환하는 형식으로 인수자의 부담을 덜어준 데다 청주시가 대농 청주공장 부지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용지 등으로 용도변경키로 결정한 점이 향후 개발에 따른 부가가치 기대감을 자극, 인수매력을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의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이런 분석에 동의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농을 인수하게 된 신안컨소시엄측이 15만여평의 청주공장 부지중 50%를 청주시에 기부채납하더라도 나머지 7만여 평의 부지가 상업용지 등으로 용도가 바뀌게 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할 것”이라며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재개발이 성공만 하면 평당 가격이 200만∼300만원대로 치솟는 것은 시간문제며, 이렇게 되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7만 5000여평만 가지고도 1500억∼2000억원대의 개발이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 대농빌딩 등 여타 채권은 제외하고서 그렇다는 것. 하지만 결과가 낙관적 관측대로 진행되더라도 인수자로서는 대농이 지고 있는 4000억원대의 잔존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신안계열사로 ‘위상’바뀌게 돼
신안컨소시엄은 인수조건으로 대농의 방직업을 계속 승계하는 동시에 청주시의 도시계획변경 결정의 부대사항에 묶여 충북내에서 새로운 공장부지를 물색, 이전해야 할 입장이다. 청주시는 대농이 청주(또는 충북)를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도시계획변경을 결정했고, 대농과 채권단은 이에 화답하기 위해 당초 이전후보지 확보차원에서 매입한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소재 옛 금화방적 부지를 올초 매각했다. 금화방적 부지의 처리를 통해 “대농은 청주를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청주시에 주기 위해서다.
대농 관계자는 “옛 금화방적 부지는 지난해 초만해도 시가 기준으로 200억원에 달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으로 땅값이 급상승, 400억원대로 추정되는 등 향후 추가상승 여력이 충분했다”며 “그러나 대농을 옮기더라도 이전후보지를 반드시 청주권역에서 물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조기매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가격산정의 근거가 과장되지 않았다면 이 땅을 110억대에 매각한 대농과 채권단으로선 최소 300억원 가량 손해를 본 셈이다.

직원들도 “불가피했던 결정”
어쨌거나 대농으로선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자력으로 빠져나오진 못했지만 새로운 자금줄을 외부에서 확보하게 됨에 따라 한때 지역경제의 젖줄 역할을 했던 방직업을 중단없이 계속 영위하게 됐다. 윤광로 대농 노조위원장과 이운재 서무과장은 “회사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매각을 통한 새 인수자의 물색 및 새로운 경영체제의 확립을 통해 회생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며 “직원들도 이런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보다 열심히 일해 회사를 반듯하게 살려보자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80년대만 해도 종업원이 8000명에 달하고 시설도 35만 추(錘)에 이를 정도로 동양최대 방적회사로서 위용을 잃지 않았던 대농은 90년대 들어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데다 외환위기 이후 적대적 인수합병의 먹잇감으로 떠오른 계열사(미도파)의 경영권 방어에 나서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 1998년부터 법정관리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현재 직원수는 1600명선이다.


신안컨소시엄은 어떤 회사?

신안의 역사는 1960년 신안건설을 모태로 한다. 그런만큼 올해로 43살을 맞았다. 주택건설분야를 포함, 택지 및 공단조성, 항만, 고속도로, 지하철 공사 등 분야에서 성장하며 몸집을 키웠다. 한때 전문건설업 도급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건설업이 주종이었다. 1996년 테헤란로로 사옥을 옮기면서 제2의 창업기를 맞은 신안은 신안종합건설을 중심으로 신안CC 그린CC 리베라CC(옛 관악CC)등 골프장업은 물론 신안상호저축은행 신안캐피탈 등 금융업, 리베라호탤 신한스포츠클럽 등 레저, 환경설비업 등에까지 업역을 확장해 왔다. 2001년 당시 대농소유였던 관악CC를 인수한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 돼 이번에 대농마저 계열사로 거느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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