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엄부(嚴父) 퇴출, 부드러운 감부(甘父) 환영
아버지 가족대화 소외 1순위, 대화도 훈련 필요하다
| 봄의 여왕, 5월이 ‘가정의 달’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성년의 날 등이 가정과 연결되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자는 취지일 겁니다. 하지만 해마다 날을 맞고 달을 정해도 우리네 가정은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가족은 위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아버지는 ‘부권상실의 시대’에 짓눌리고, 어머니는 가사부담에 맞벌이까지 감당하는 ‘원더우먼’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 또한 치열한 공교육 입시현장과 사교육 경쟁에 내몰려 자기 정체성을 잃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가족의 해체’까지 언급되는 위기상황이지만 꺼져가는 불씨에 숨을 불어넣듯 힘겹게 서로를 보듬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의 결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대화의 미덕은 먼저 상대의 얘기를 새겨 듣는 것입니다. <충청리뷰>가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의 얘기를 대신 전해드리려 합니다. ‘익명대담’을 읽고나면 이젠,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5월의 화사한 꽃처럼 ‘가정의 달’에 ‘대화의 꽃’이 만발하기 빕니다.<편집자주> |
남편과 아빠로써 가장의 부담이 커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이런 질문을 전제로 대담자를 선정했다. 중학교 이상 대학생까지 자녀를 둔 40~50대 가장을 표본삼아 익명 보도를 조건으로 3명을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7일 저녁 청주시내 모식당에서 2시간여 동안 ‘아빠들의 취중진담’이 진행됐다. 사회자는 ‘고상한 말씀’ 보다 ‘까놓고 들이대기’를 주문했지만 ‘범생이 가장’인 대담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격정 토로’에 이어 대체로 자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할애했다. 이 시대의 남편, 아빠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선 쉽게 취하지 못했다. 결국 취중진담은 ‘절반의 실패’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 익명 대담자의 작심 한마디
김길동(52세 자영업) 아내여, 가정내 파벌조성하지 말라
아들아, 아빠 자꾸 왕따 시킬래?
이몽룡(46세 회사원) 여보, 결국 남는 건 우리 부부여
애들아, 그러다간 애비 인생의 반만도 못하게 산다
박정일(43세 자영업) 아내여, 남편의 술잔에 눈물이 반이다
얘들아, 아빠는 돈버는 기계가 아녀. 자존심있는 인간이여


김 =요즘엔 자식들 유아기 때 처가에서 돌봐주는 경우가 많다보니 처가와 유대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사위된 입장에서 죄송하고 고마운 심정인데 무슨 불만을 제기하겠나. 하지만 상대적으로 본가에 찾아뵙는 경우가 줄게되고 아내와 애들이 가기 싫은 눈치면 혼자 나서야 하는데,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이모, 외사촌들과 유대감이 더 커지는 집이 많은 것 같다. ‘처가에는 촌수가 없다’는 말처럼 수직적 가계 부담이 적다보니 심정적으로 편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 = 반대로 보면 과거 부계중심에서 모계중심으로 균형추가 움직이다보니 고부갈등보다 사위, 장모갈등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딸네집 살림에 간여하다보니 장모의 발언권이 세지게 되고 사위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힘들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시어머니도 손주를 돌봐주는 사돈댁에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부갈등의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 = 우리 40~50대가 본가와 처가에 대한 전통 남성들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한 전위세대였다고 본다. 그만큼 내적갈등도 있었고 아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본갇처가를 떠나서 이제는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육아 등 현안문제가 얽혀있거나, 공동취미·공동투자 등 이해관계가 맞는 친인척간의 교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내들도 맞벌이를 통해 자기 경제력을 갖다보니 과거처럼 본갇처가에 대한 차별대우의 갈등도 없어졌다고 본다.
자식들아, 아빠는 친구가 되고 싶다
사회 :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면 자녀들도 자기 사생활과 주장이 생기는 나이다.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의 반경을 벗어나려는 아이들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성적 성찰은 뒤에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아빠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들에게 솔직한 불만을 털어놓는다면.
박 = 애들 어렸을 적에는 퇴근을 하면 거실에 있던 놈들이 쪼르르 달려왔는데, 이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거실 컴퓨터를 하다가 쳐다도 안보고 건성으로 인사한다. 그때마다 얘기하면 잔소리될 것 같아 그냥 넘어가지만, 사실 아내한테 서운한 부분이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왔어’ 한마디면 끝이다. 이런 건 아빠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엄마가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빠에게 인사성없는 애들이 엄마에겐 잘하고 이웃에겐 잘하겠는가. ‘중이 제 머리깍기 힘는’ 경우에 아내가 알아서 해주면 그 고마움이 두배세배되는 것 아닌가.
이 =아빠는 직장에서 점심값도 아끼려고 신경쓰는데, 애들은 걸핏하면 휴대폰 정액제 요금 올려달라고 아우성이다. 더구나 머리가 큰 애들이 다른 집 아빠는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비교하면 자괴감이 밀려든다. 어떤 집 아빠는 자식이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하는데 거기에 맞는 과외를 못시켜줘서 죄인심정으로 주눅든다는 경우도 있더라. 쫌 특별한 경우일텐데, 하이튼 요즘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보니 경제개념이 없어져 걱정스럽다. 학교에서 생활경제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체감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눈물의 맛은 몰라도 의미는 알아야
김 =얼마전까지 ‘마마보이’란 얘기가 나오더니 이젠 ‘헬리콥터보이’가 등장했다. 대학 입학한 뒤에도 엄마가 수강신청을 대신하고 교수를 만나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한마디로 요즘 아이들은 수동적이고 나약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7차 교육과정에서 특기적성을 살리라고 해서 아이들 원하는 것을 시켜보면 불과 서너달만에 포기하고 만다.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만하고 완주의식, 목표의식이 희박하다.
박 = 청소년들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혹시 발표력 강화, 논술교육 강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표출력만 가르치다보니, 남의 얘기를 참고 듣는 수용하는 태도는 부족한 것 같다. 부모자식 관계라는 단순도식을 벗어난 조부모 관계로 넘어가면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함께 동거하는 대가족 문화가 아니다보니 그럴 수 있는데, 기본적인 뿌리의식이 희박하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TV다큐멘터리 ‘인간극장’같은 프로를 시청하도록 권하는데 우리 세대보다 감동을 느끼는 진폭이 다른 것 같다. 이런저런 조언을 할라치면 아예 ‘인간극장같은 얘기할라 그러지’라며 정색을 한다. 아이들이 눈물의 짠맛은 모르더라도 눈물의 의미는 알고 어른이 되야하는데 걱정이다.
다시한번 남편·아빠가 된다면
사회 : 전반부에 맘껏 배설을 하고 후반부에 반성적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다 쏟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 가장이 아내·자식들에게 가진 불만이상으로 남편·아빠에 대한 가족들의 반감도 클 것이다. 가장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 무엇이고 다시 가장으로 새출발한다면 어떤 점을 바꾸고 싶나.
이 = 어릴적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고 서울 명문대학교도 구경시켜주고 나름대로 자녀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내 욕심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돌이켜보면 내 위주의 방식을 고집하다가 정작 아이들의 눈높이를 놓친 것이 아닌지 아쉽다. 여행도 아이들이 가고싶은 일정을 잡고 거기에 살을 붙여주는 방식이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은 가슴으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머리로 내려야 한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박 = 가족간의 대화는 가장이 어떻게 물꼬를 트느냐가 중요하다. 훈계조로 말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남편·아버지로써 힘든 점을 털어놓는 화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두터운 외투를 입은채 아내와 자식에게 발가벗고 얘기하자고 하면 되겠는가. 뭣보다도 자식들과 건강한 소통을 위해서는 부부지간의 소통이 전제가 되야한다. 무작정 전가족을 동반한 행사만 하지말고 먼저 아내와 둘이 나누는 시간을 통해 소통구조를 만든 다음에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는 남편이 그만큼의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김 =가장 큰 의견차가 아이들 교육문제인데, 따지고 보면 부부간에 제대로된 대화를 갖지 못한 탓이 크다. 아이의 성적표와 집안의 가계부를 놓고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한다면 언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 탓하기에 앞서 우리부터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아내에 대한 무시, 깔보는 심정을 지워내야 한다. 겉으로 듣는 척해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눈빛은 표시나기 마련이다.
이 = 아내, 아이들과 어느날 갑자기 대화하자고 멍석깔기도 어색하다. 나같은 경우는 얼마전에 아이들 휴대폰을 사주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특히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내곁에 가까이 있다는 정서적 친밀감을 주기에 효과적이다. 이런 식으로 터닦기를 하고 나면 정례적인 가족회의를 시도해 보려 한다. 아내가 아이들 편이되고 남편을 왕따시키는 것도 우리들에게 책임이 없지않다. 남편과 유대가 느근해 졌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 아닌가.
<좋은 아빠되기 10계명>
1.좋은 말은 밖으로 표현하고 나쁜말은 속으로 삼켜라
2.대화란 잘 듣는 것이다.
3.설교하지 마라
4.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마라
5.칭찬은 두번, 야단은 한번만 해라
6.아이에게 구체적인 반응을 보여라
7.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라
8.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라
9.아이의 말을 끊지 말고 또한 말꼬리를 잡지 말라
10왜? 라는 말을 자주 쓰는 아빠가 되지 말자
<좋은 남편되기 10계명>
1.아내의 얘기를 끝까지 귀담아 들어라
2.아내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라
3.아내와의 약속을 지켜라
4.매사를 아내와 상의하여 결정하라
5.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라
6.자녀양육과 집안 일을 아내와 분담하라
7.아내가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8.아내가 속상해 하면 가르치려 들지말고 위로하라
9.집에 손님이 찾아왔을때 아내를 칭찬하라
10.아내에게 받은만큼 똑같이 안마해 줘라
권혁상 기자
jakal4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