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공동구매 막으려 브랜드업체 40% 가격인하

공동구매 계약업체 도교육청 홈피에 피해 호소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올해 교복파동이 딱 그 짝이다. 지난 2월 서울지역 일부 특목고의 교복값이 70만원대(동복 1벌)에 달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자 전국이 들끓었다. 중고생을 둔 학부모들은 아빠 양복값보다 비싼 아이들 교복값에 분노했다.

정치권은 발빠르게 학부모 부담경감책이라며 교복반값 시책을 거론했다. 교육부는 기존 일부 학교에서 시행한 교복 공동구매제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신입생은 5월까지 교복착용을 유예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다.

   
▲ 충주시 중고교 학생들이 신이 났다. 대기업 교복업체들이 일제히 하복 가격을 40% 인하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격인하는 교복 공동구매를 막기위한 고육지책일 뿐이다. 뒷통수를 맞은 공동구매 계약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육성준기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대기업 브랜드 교복업체들은 잔뜩 움츠린채 상품광고도 줄였다. 하지만 정작 개별 학교의 공동구매제는 지지부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내 209개 중고교 가운데 3월말 현재 4~5개교가 납품업체와 구매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꼴’이 되버린 교복 공동구매제, 그 원인과 실상을 충주시의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지난달 24일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충주지역 교복 납품업체 대표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교육감에게 하소연하듯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대책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대전에 본사를 둔 인텍(INTEC)사(대표 박종우)는 상표명 ‘c&v’로 학생복을 제작하는 전문업체다. 지난 3월 충주중학교와 충주 중신외고의 교복공동구매 제안공모에 참여해 학부모추진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낙찰됐다.

충주중의 경우 우선 학교운영위원회가 교복 공동구매를 결의하고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통해 참가여부를 확인했다. 80%이상이 참여할 뜻을 밝히자 학부모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시연회와 학부모 품평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는 20명의 심사위원단이 가격과 품질을 비교해 각자 점수를 매긴뒤 지난 3월 19일 최종 낙찰업체를 정했다. 공정한 절차와 계약을 통해 공동구매 업체가 선정됐으나 탈락업체와 브랜드 업체의 방해공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 회사 낙찰가가 하복의 경우 5만2천원인데 탈락한 3개 업체에서 4만원에 하복을 팔겠다며 연명으로 홍보전단을 만들어 뿌렸다. 입찰 참가서류에 ‘탈락하더라도 입찰가 이하 가격으로는 팔지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덤핑공세를 벌인 것이다. 판매방식도 4월 22일까지만 저가특판한다며 사전 예약판매를 했다. 5월초에 하복을 납품하는 공동구매 계약업체를 죽이기 위한 물불 안가리는 상술”이라고 인텍사 박대표는 혀를 내둘렀다.

설상가상으로 공동구매 입찰에 참여조차 하지않은 브랜드 업체들도 ‘딴지걸기’에 나섰다. 인텍사로 낙찰되자 지역 대리점식으로 운영되는 브랜드 업체 L,S사는 학교측에 놀라운(?) 내용의 제안을 했다. 하복을 작년보다 40% 인하한 5만5천원에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작년에 9만원에 팔았던 이월상품은 4만5천원 가격을 제시해 절반가격을 제시했다. L,S사는 연명으로 만든 문건을 통해 공동구매 입찰 대신 자율구매 방식으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자신들이 ‘충주 지역사회의 일원임을 참고해 달라’며 은근히(?) 연고성을 강조했다.

충주중 관계자는 “낙찰업체는 대전 소재 회사인데 브랜드업체 대리점은 지역 사람들이 운영하다보니 항의가 빗발쳤다. ‘외지업체 먹여살리기 위해 지역 상인 죽인다’ 식이었다. 공신력있는 대기업에서 공개입찰은 거부하고 막상 구매업체가 결정되니까. 뒤늦게 교복값을 40%나 깎아주겠다고 하니 납득이 가겠는가?”고 반문했다.

충주중 학부모교복추진위원들은 사전에 학부모들의 참여여부를 정확하게 조사했고 입찰 때는 지역업체(대리점)를 직접 방문해 입찰요청서를 전달하는등 원칙에 따라 공동구매제를 시행했다. 따라서 탈락업체와 브랜드 업체의 뒤늦은 덤핑공세에도 불구하고 동복 110명, 하복220명이 인텍사와 최종계약했다.

하지만 교복공동구매 입찰을 거친 충주 중산외고의 사정은 심각했다. 학교운영위가 지난 2월 인텍사를 구매업체로 결정했으나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학생 신체사이즈를 재다가 느닷없이 봉변을 당했다는 것. 지역 교복업자 9명이 교무실로 몰려와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학교측은 교내방송을 통해 ‘공동구매를 하지 않을 학생들은 그냥 돌아가도 좋다’고 지시했다는 것. 결국 순서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당초 학운위와 계약했던 인원에 크게 미달했다는 것.

“학교운영위가 규정과 절차를 모르고 경쟁입찰이 아닌 단독참가로 결정하다보니 지역 교복업체들의 압력에 밀린 셈이다. 결국 우리는 이탈학생들 때문에 1천만원 가량 손해를 입었고 덤핑가를 제시한 다른 업체도 원가만 건진 셈이 됐다.

중신외고의 경우 지역 교복업체들이 신입생들에게 가정통신문까지 발송한 것은 누군가 학생 신상기록을 제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불공정행위가 버젓이 자행된다면 공동구제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 오옥균기자

교복 공동구매 실적 학교평가에 반영해야

전국 250여개 중소 교복업체로 구성된 한국교복협회는 30일 하복 적정가를 공개해 ‘교복값 거품빼기’의 계기를 마련했다. 협회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의 남학생 하복 원가는 3만6000원, 여학생 하복은 스판원단일 경우 3만7370원, 일반원단은 3만5300원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원가에 30% 가량 마진을 고려한 금액이 하복 적정가격이며 대체로 남학생은 4만7000원∼5만1000원, 여학생은 4만6000원∼5만3000원 내외로 나타났다.

지난해 브랜드 교복업체의 도내 하복 가격이 9∼10만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40%가량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충주지역 브랜드 업체가 올해 5만5천원까지 하복가를 인하한 것은 거의 공장출하가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올해 영업수익을 포기해서라도 학교교복 공동구매제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중고교에 학부모 공동구매를 적극 지원하라는 지침만 전할 뿐 이렇다할 매뉴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업체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보니 학교운영위에 떠넘긴채 앞장서지 않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인천교복공동구매네트워크’ ‘교복값 제자리찾기 공동구매 전북연대’ 등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공동구매 방안을 논의하고 학교현장에 도입했다. 하지만 도내에서는 개별 학교 학운위 수준에서 논의되다보니 충주시에서도 5개 학교가 추진하다 충주중, 중신외고의 탈락업체 덤핑판매 사례를 보고 공동구매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열린우리당 학부모교육비줄이기 태스크포스(TF)는 학교 평가 항목에 교복 공동구매 추진 실적을 반영하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 '교복공동구매추진 협의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교복값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TF팀은 교복 이외에도 체육복, 학습 부교재, 대학등록금, 대학생 거주비 등 경감 대책을 교육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와 협의해 왔다.

이들은 학운위가 결성되기 전에 교복 구매가 이뤄지는 맹점을 해소하기 위해 교복 착용 시기를 학운위에서 자율 조정하도록 했고 교복 공동구매 방법 등을 학운위에서 심의하도록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밖에 시도교육청에 '교복 자문위', 지역 교육청에 '구매정보센터'를 설치해 지역 단위의 구매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올해까지 6년째 교복 공동구매를 해온 창원 문성고 허인수 교사는 "공동구매를 할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을 이길 수 없다. 학년 초에는 교사들도 학생을 설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정보제공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공동구매를 할 경우 학교의 업무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지원센터를 만들어 학부모와 경험을 공유하면 업무진행이 원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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