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스원 대량해고 규탄집회 침묵하는 언론

<미디어오늘>"높은 광고탑에도 올라가 보고 추운 겨울날 한강도 수영으로 건너봤지만, 방송사를 비롯해 오늘(19일)처럼 기자들이 많이 온 것은 처음 본다. 삼성 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은데 삼성이 그렇게 큰 권력인가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든다."

프레시안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남대문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에스원 1700명 대량해고 규탄집회'에 참가한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소속인 한 노동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이 노동자의 말은 그동안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삼성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관심을 보인 언론의 '이중적 태도'를 질타한 것이다.

평소 삼성에스원 노동자에 무관심…본관 앞 집회 개최 때 '반짝 관심'

하지만 이 노동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언론은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 대해 높은 관심만 보였지 그 관심을 보도로 연결시키진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한 곳은 경향과 한겨레 정도다. 경향은 20일자 6면 <'선무당' 경찰청/ "경비업체·영업딜러 계약 불법" 엉터리 유권해석, 삼성에스원 560명 계약해지…뒤늦게 잘못 드러나>에서 "경비업체 영업계약직 수백명의 일자리를 잃게 한 경찰청의 유권해석이 잘못된 것으로 19일 드러났다"면서 "이들은 해당 업체에 전원 재계약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은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는 19일 오후 3시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청의 유권해석이 틀렸으므로 전원 재계약 해달라'고 주장했다"면서 "일부에선 경찰과 삼성에스원의 유착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이날 집회를 비중 있게 전했다.

한겨레도 같은 날 1면 <'집회 무풍지대' 삼성본관 앞 시위>에서 이날 집회를 사진기사로 처리했다. 또한 한겨레는 3면 <현장에서: 제발 저린 경찰 마구잡이 연행>에서 "이날 경찰의 대응은 유난히 과도하고 거칠었다"며 경찰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경찰이 지난해 영업딜러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았다면, 대량 계약해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게 노동자연대 쪽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경향 한겨레 '삼성 본관 집회' 비중 있게 보도…다른 언론은 대부분 '침묵'

하지만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경향과 한겨레 등을 제외하곤 이날 집회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참세상 등 인터넷 매체들은 이날 집회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같은 날 10면 <'허 찔린' 삼성/ '에스원' 해고노동자들, 삼성보다 먼저 집회 신고 삼성본관 앞 합법집회로는 처음…200여명 규모>에서 사진과 함께 관련 내용을 보도했으나 이들이 시위를 벌이는 이유인 경찰의 '무리한 유권해석' 부분과 경찰의 '과잉진압'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20일자 가판 6면에서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김오근 위원장이 삼성 본관 앞에서 삭발을 하고 있는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던 서울신문은 배달판에서는 '사진기사'를 들어냈다. 기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서울신문 가판서 보도했다가 배달판 '삭제'
KBS '뉴스9'에서 보도…경제지는 '전멸'

방송사 가운데 관련 내용을 보도한 곳은 KBS. KBS는 19일 <뉴스9> '본관 앞 집회 뚫려'에서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삼성에스원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해고된 특수고용직 종사자들. 이들은 지난 2001년 회사 설립 이후 길게는 5년 넘게 일해왔지만 지난해 8월 1700명이 모두 계약 해지된 뒤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삼성에스원 해고자들은 다음달 2일에도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 허가를 받은 상태여서 당분간 삼성본관 앞에서 노동자들의 집회가 잇따를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MBC와 SBS는 당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삼성에스원 노동자집회는 '침묵'…삼성전자 이재용 CCO 임명 소식은 1면

물론 보도를 하고 하지 않고는 언론사 나름의 판단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상식'은 갖춰야 한다. 같은 삼성 관련 기사라도 '부정적인' 측면의 기사는 거의 보도가 안 되는 상황에서 삼성 이재용 전무가 '최고고객 담당임원(CCO)'에 임명된 사안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면 이건 분명 '쏠림'이자 '편중'이다.

  
 ▲ 한국일보 1월20일자 3면 
 
같은 날(20일)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과 경제지들은 삼성전자가 조직개편을 통해 최고고객담당임원(CCO=Chief Customer Officer)직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이재용 전무를 임명한다는 내용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특히 한국일보는 3면 전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다음과 같다.

국민일보 <삼성 이재용 전무, 최고고객경영자 임명/사실상 경영전면 나섰다>(11면/ 4단)
경향신문 <이재용 전무 CCO '새 임무'> (9면/4단)
동아일보 <'이재용의 삼성'이 시작됐다> (32면 절반정도)
서울신문 <삼성 이재용 경영전면에> (1면 3단)
세계일보 <이재용 전무 CCO 맡는다> (12면 4단)
조선일보 <삼성 이재용 전무 CCO에> (22면 3단)
중앙일보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 CCO 맡았다> (2면 3단)
한국일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CCO 임명> (3면 전면 할애)
한겨레 (12면 2단)

매일경제 <이재용 글로벌 경영 전면에 나선다> (11면 4단)
한국경제 <이재용 전무 글로벌 IT 인맥 구축하고 신수종사업 발굴 역할 수행> (11면 6단)
머니투데이 <이재용 삼성전자 CCO 임명/전무 직급, 역할 '사장급'> (3면 3단)

물론 이 사안 자체도 주목할 만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온 이재용 전무가 사실상 처음으로 맡은 정식 업무라는 점에서 그렇고, '최고고객담당 임원'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책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다른 부문에 비해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고 권한은 막강하다는 점 △단기적인 사업성과를 내야 하는 사업부문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점 등을 언급한 곳은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특히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의 집회 소식과 비교했을 때 언론의 이재용 전무에 대한 보도는 그 관심이 과한 것은 둘째치고 내용이 '찬양일변도'다.

이것이 과연 삼성만을 탓해야 하는 일일까. 언론 스스로 '삼성공화국' '삼성권력'이라는 성역을 만든 건 아닐까. 이런 점에서 삼성보다는 언론의 '관성화된 보도' '알아서 기는' 태도를 더 탓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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