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에서 만드는 맛의 원조, ‘족발 아저씨 배윤정씨’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는 옛말이 있지만 육거리시장에 들어서면 초입부터 오감을 자극하는 먹을거리들이 장꾼들을 유혹한다.

윤기나게 삶긴 족발에 이어 찜통 위에 똬리를 튼 순대, 노릇노릇 구워낸 각종 지짐, 참기름으로 단장한 절편, 꿀떡 등을 전진 배치한 ‘먹자골목’을 걷노라면,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체면은 슬쩍 내려놓기 십상이다.

시원한 막걸리로 컬컬한 목을 축일 수 있다면 목로에 간이 의자라도 호사가 따로 없고, 노점에 둘러서서 어깨를 부딪히며 먹더라도 길거리 음식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가 따로 있다. 포장마차 떡볶이와 분식점 떡볶이 사이에 명확히 비교되는 맛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먹자골목의 유혹은 ‘파는 이’나 ‘사는 이’를 가리지 않는데, 초장부터 ‘맛 탐사’에 몰입하면 장보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해장술 몇 잔에 얼근해지면 해거름도 되기 전에 물건을 떨이로 넘기고 그날 장사는 ‘파장’이라도 기분은 흐드러진다.

육거리시장 최고의 먹자골목은 ‘육거리시장 번영회’가 결성돼 있는 청주제일교회 골목이다. 족발집들이 대문이라면 들어서자마자 통닭집, 순댓집, 떡집, 만두집, 죽집, 전집(煎-) 등 먹거리 가게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른 재래시장에 비해 유난히 집중돼 있는 업종이 족발집들인데, 대퇴부 살을 편육처럼 썰어 파는 ‘왕족발’에 비해 발목 아래 부분을 잘게 토막내서 판매하는 속칭 ‘미니족(mini足·발목족발)’이 이 곳의 대표 메뉴다. 예닐곱 개에 이르는 이 일대의 족발집들은 모두 육거리 큰길 쪽으로 진출해 있어 이미 육거리의 명소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발목 족발이 이미 시장에서 대중화된 먹을거리고 이 대목에서 굳이 원조를 따지는 것 자체가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이 일대에서 효시를 따지자면 골목길 입구에 있는 ‘원조 아저씨족발’이 가장 먼저 터를 잡았다.

건물 외벽을 응용해 만든 두어 평 간이점포에 절반은 통닭집이 자리를 잡았으니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길이 머물기도 쉽지 않은 작은 공간이다.

   
▲ 배윤정씨가 3시간 동안 삶은 뒤 식힌 미니족(발목족발)을 다듬고 있다. / 사진 =육성준 기자
이리저리 시험해 보며 만든 맛
1989년부터 아저씨족발을 운영하고 있는 배윤정(57)씨는 1986년 육거리시장에 정착해 3년 동안은 돼지의 내장 등 속칭 ‘부속류’를 손질해서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 뒤 지금의 장소에서 족발을 삶아 팔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무슨 특별한 솜씨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시험도 해보고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지금의 자랑할 만한 맛이 나왔다는 것이다.

족발을 삶는데 들어가는 재료는 간장, 물엿 외에도 감초, 당귀, 팔각향 등 대여섯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는데 그 이상은 비밀이라고 하니 ‘맛을 내는 비전(秘傳)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하는가 싶다.

그러나 맛의 비결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었다. 재료의 공급처에 대해 묻자 “믿고 납품을 받는 집이 있지만 재료가 들어보면 요리조리 꼼꼼하게 살펴본 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바로 교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배씨는 “모든 음식은 재료가 중요하다”며 “족발도 신선도나 살집이 붙은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결국 맛을 좌우하는 것은 재료라는 얘기다.

배씨의 하루는 보통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족발을 삶는데만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때부터 움직여야 고객들의 요구에 맞출 수 있다.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배씨의 족발이 여행을 떠나는 관광버스 안에서 유독 사랑받기 때문이다. 배씨의 족발은 이밖에도 야식집이나 포장마차 등으로 팔려나간다. 물론 장을 보러 나왔다가 술안주나 주전부리용으로 사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격은 발목족발이 3000~5000원, 왕족발은 1만2000원으로 저렴하다.

배씨는 “새벽에 단체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예약을 하는 경우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약속한 시간에 물건을 댄다”며 “커다란 들통으로 하루 너댓 번은 삶아야 그때그때 손님이 요구하는 입맛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너댓 번을 삶자면 삶는데만 15시간이 걸리는 셈이고 배씨는 그동안 식은 족발을 부리나케 손질해 스티로폼 용기에 담는다. 결국 밤 11시를 넘겨 가게문을 닫는데도 늘 일손이 분주하다.

칼을 다루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은데 연신 딱딱한 뼈와 살을 발라내다 보니 칼날이 닳아 1년이면 여러 자루를 소모하게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삶고 손질하는 일의 노동강도가 어는 정돈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됐든 배씨를 시작으로 이 일대에 들어선 족발가게들은 하나같이 1년 365일 문전성시다. 값싸고 맛좋은 것으로 정평이 났기 때문이다. 삶아놓은 족발이 모자라서 일찍 문을 닫는 집도 있다. 이 정도면 서로 상승효과를 주는 셈이지만 그래도 ‘원조’의 마음은 다르다.

배씨는 “지금도 장사는 잘 되지만 아무래도 나눠 먹다보니 옛날 같지는 않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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