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문로에서 우암동으로, 다시 현 청주역 자리로
우암동 건물은 청주 MBC가 30년가까이 사용
충북선은 80년대 들어서 화물운송하는 산업철도 돼


학생들 등하교 및 직장인 출퇴근 통근 열차가 특별히 운행되고 여객들로 붐비던 충북선 철도가 복선으로 놓이고 전철화 됐지만 자동차 문화에 밀려 청주 중심지에 있던 청주역은 외곽으로 옮기고 만다. 중심지를 벗어난 청주역은 기존의 여객 수송 보다는 무연탄과 시멘트를 운송하는 산업철도로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게 됐다.

▲ 청주시 중심의 옛 철도 1921년에 건설된 충북선 철도가 청주중심지에 놓였던 것을 철거하고 4차선 간선도로를 닦았다. 사진 우측은 구 까르푸 건물(현 홈에버),좌측은 신한은행 충북본부, 뒷쪽에는 교육회관이 보인다. / 1965년 충북선 철도는 1920년 3월 조선철도주식회사(착공 당시는 중앙철도회사)가 질 좋은 쌀이 생산되는 충북 지역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기존 부강~청주 노선(1912년 완공)을 조치원~청주 노선으로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놓여지기 시작했다. 1921년 11월 조치원에서 청주로 기차가 들어오던 날 ,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증기 기관차를 보고 놀라고 신기해 했다. 청주 주변은 물론 증평, 진천, 보은 등 충북 각지에서 주민들이 청주역에 몰렸고 신기한 기차를 한번 타 보려는 사람들로 역은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워낙 비싼 운임 탓에 한번 이용한 승객들이 다시는 기차를 이용하지 않아 운행횟수는 점차로 줄고 말았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청주로 대거 이주해 오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서울과 부산을 여행하는 승객들이 늘어 충북선은 다시금 활기를 찾게 됐다. ▲ 의료원과 충북선 우암동 새청주역사(전 MBC)를 통과하여 서청주역 쪽으로 달리던 디젤기관차와 새로 건축된 의료원이 새롭게 선보였다. 사진 속에 보이는 논에는 현재 흥덕성당이 세워져 있다. / 1972년
철도 공사가 계속되면서 청주는 외지인과 농촌 인구까지 유입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학교와 관공서의 규모도 점점 커져 갔다. 청주 도심이 커지면서 일본인들은 청주 읍성을 헐어 하수구를 쌓고 구불구불하던 좁은 길을 바둑판 같이 반듯하게 바꿔 현대식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했다. 도청이 있는 청주면(淸州面)을 시구개정(市區改定)을 통해 석교동에서 방아다리까지 일직선 도로를 개설하고 동서로도 반듯한 길을 닦아 천년 넘게 지켜온 청주의 옛 모습은 사라졌다.

일본인 이주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상수도가 개설되고 전기도 들어오고 도시의 생활은 한층 편리해지기 시작했다. 관공서와 금융기관 ,우체국 등 중심지에 큰 건물이 들어서자 상권도 중심지로 집중됐다. 1912년 통계 자료를 보면 청주군(淸州郡) 인구가 10만 6백 81명인데 그 중 1560명이 일본인으로 대부분의 노른자위 상권은 그들이 차지했다. 당시 서울, 부산, 인천, 평양, 원산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해 온 것이 청주였다고 한다.

충북선이 1922년 증평까지 연장되고 1928년에는 충주까지 연장공사가 진행되어 청주를 중심으로 경제가 활성화됐다.

▲ 우암동 청주역 북문로에서 이전한 우암동 새청주역은 10년도 안돼 다시 정봉역으로 이전했다. 청주 MBC가 건물을 고쳐 30년 가까이 사용하다 최근 가경동으로 이전했다. 철도공사는 많은 노무자가 필요해 자연적으로 청주에 인구가 집중되어 도심 뿐만 아니라 청주 인근 지역까지 확대, 하루가 다르게 청주는 발전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충북선 철도는 여객 운송과 화물 수송에 큰 몫을 했다. 1960년대로 접어 들어 청주의 인구가 20만으로 늘고 도로 여건이 좋아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40년 동안 청주 중심 북문로에 자리잡았던 청주역은 우암동(구 청주 MBC자리)에 새 건물을 크게 짓고 이전했다. 철도를 옮기면서 중심지에 놓였던 철로를 걷어내고 도로를 확장, 4차선 간선도로를 닦아 청주시가지가 크게 변화됐다. 석교동에서 내덕동을 잇는 일직선의 4차선 간선도로와 상당공원과 연계된 서쪽으로 뻗은 간선도로가 경부고속도로까지 연장됐다. 이 때 청주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가로수 터널길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 우암동과 새청주역 1968년 청주시 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1921년 개설돼 47년을 지켜온 옛 청주역이 시설을 확충해 우암동으로 옮겼다. / 1968년
청주의 도시 활성화와 자동차의 보급, 도로 신설 등 자동차 문화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면서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이 급격히 줄어 청주역은 10년도 안돼 역사를 우암동에서 외곽지역에 위치한 정봉역쪽으로 옮기고 만다. 기존의 정봉역과 합친 청주역은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전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이전당시의 현 청주역
북문로에서 우암동으로 다시 정봉역으로 이전한 현재의 청주역. 전국체전 출전선수환송식등 단체 승객 운송시에만 임시열차가 운행됐지만 지금은 시멘트를 운송하는 산업철도역이 됐다. 열차이용객들이 자연스럽게 크게 줄었다.
/ 1978년
충북선은 도내 북부 지역의 시멘트 산업 활성화로 수송량이 많아져 1980년 전구간이 복선으로 건설되고 지금은 전철로 바뀌어 여객운송 보다는 화물 운송에 중점을 둔 산업철도로 발전했다.

지나간 얘기지만 당시 행정 당국자들이 앞을 바라보는 혜안(慧眼)으로 우암동 역사를 지금까지 보존했더라면 청주 서울간 특급열차가 운행됐을 것이고 부산과 목포를 잇는 여객 열차와 충북선을 연계시킨 철도 교통망이 확충돼 아마도 청주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 前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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