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언론사 부당거래조사 ‘진두지휘’
1년 뒤에는 ‘과징금 취소’ 결정에 가담

작년 12월 30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www.ftc.go.kr)가 단행한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과징금 취소‘ 결정 파문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당시 공정위 전체회의 참석자들 중에 2001년 언론사 조사의 실무책임자가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7일 입수한 ‘15개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납부명령의 직권취소에 대한 건’ 이라는 제목의 공정위 공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공정위 전원회의에 윤영대 부위원장과 3명의 상임위원(박상조, 이한억, 오성환), 3명의 비상임위원(정명택, 이성순, 이임성) 등 총 7명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남기 위원장, 윤창호 위원은 사정상 불참)
참석자들중 논란의 초점은 이한억 상임위원. 작년 1월 상임위원에 위촉되기 전 그는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실태조사를 진두지휘하는 공정위 조사국장을 역임했다. 당시 이 위원은 2001년 2월12일 조사기획과, 조사1과, 조사2과 등 기존 조직에 독점관리과에서 차출한 인력까지 총 37명을 4개 반으로 나눠 각 반마다 3∼5개 언론사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담당하게 했다.
이 위원은 당시 동아일보가 공정위 조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내보내자 한때 사무실 앞에 ‘동아일보 기자 출입금지’라는 명패를 달아놓는 등 보수언론과의 ‘맞대결’도 서슴지 않았다.
공정위 조사는 이후 두 달간 실시됐고, 이 위원이 같은 해 6월21일 공정위 대회의실에서 “5434억원 규모의 부당내부거래를 한 13개 중앙언론사에 24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는 조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출입기자들이 ‘출입금지’의 수모까지 당한 동아일보는 공교롭게도 언론사들중 가장 많은 62억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01년 공정위가 발표한 ‘242억원’은 언론사의 계열회사들에 부과된 과징금을 포함한 것으로, 지난해 12월30일 공정위는 이중 언론사 및 자회사에 부과된 182억원에 대해 과징금 전액을 취소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위원은 육사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경제부처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 경제기획원 시절에는 공정거래2과장, 경제조사과장을 지냈고, 공정위에서는 공보관, 기획관리관을 지냈다.
공정위는 2001년 2월 “언론의 대 국민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감안해 부당내부거래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는데, 2년여가 지난 뒤에는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공익적 기능 수행을 위해 과징금을 부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상거래를 혼탁하게 했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공정위 공문에 따르면, 공정위는 ‘언론사의 특수성’과 ‘최근 언론사의 경영악화’를 과징금 납부명령을 취소한 사유로 들고 있다. 이는 “언론사의 과징금 납부가 경영상태 악화로 이어질 경우 언론의 공익적 기능 수행이 힘들어진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들의 경영악화에 대해 공정위는 “2001년 언론사들이 신문용지 잉크 등 원부재료비의 상승에 따라 비용이 크게 증가한 반면, 경기침체에 따른 광고수주액 감소 등으로 매출액이 감소했다”며 “중앙일보(676억원), 조선일보(412억원), MBC(279억원) 등이 막대한 법인세 추가납부액 발생으로 자금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나아가 “언론사 경영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과징금 납부를 독촉할 경우 일부 회사의 부도 및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10억원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된 조선일보와 방송3사가 2001년에 각각 2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과징금 일괄취소‘의 논리가 궁색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방송사는 신문사와 달리 재무상황이 어렵다고 보기 어렵지만, 2001년 매출액이 감소했고 신문사나 방송사 모두 언론의 특수성은 동일하다. 방송사에 원래대로 과징금을 유지하고 신문사만 과징금을 취소한다면 방송사만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결과가 발행하므로 형평상 방송사에도 과징금을 취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영 악화를 핑계 삼아 일부 신문사들을 봐주려고 했으나 “왜 우리만 내냐”는 방송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사이좋게’ 양쪽 모두 덜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2001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대한매일, KBS, SBS 이상 8개 언론사가 이의 신청을 했을 때 “문화일보를 제외하고는 이유 없다”고 기각 결정을 내린 ‘호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공문 상에 드러난 공정위의 해명(경영이 악화된 언론사의 특수성 감안)만으로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다.
<오마이뉴스>는 회의에 참석한 몇몇 위원들과 접촉했으나 이들은 “전원합의로 내려진 결정이어서 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과징금 취소 건은 공보과에 알아 보라”고 대답을 회피했다.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가능한 한 이번 일은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출입기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분위기.
대통령직인수위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뜻을 받아 경위 조사에 들어갔으나 “인수위가 정부 업무에 개입한다”는 역풍을 의식,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있다. 공정위는 인수위에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징금을 취소했다”고 경위를 밝혔으나 이 같은 옹색한 설명이 노무현 당선자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는 후문.
다만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가 지난달 30일 공정거래위 전원회의 회의록과 관련정보 일체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기로 결정해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또한 7일부터 광화문 4거리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매일 정오 1인 시위를 벌이고 있고, 10일에는 공정위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
지난 연말 느닷없이 불거져 나온 ‘언론사 과징금 취소‘ 파문은 시민사회가 몇몇 정부관료에게 언론개혁의 주도권을 넘겨줄 경우 개혁이 ‘용두사미’로 귀결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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