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 재단 ‘어르신 공경 중국 효문화 탐방’ 성료 3박4일 일정 역사·문화 유적 ‘효’의미 되새겨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바쁘게 살다보니 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엄두도 내지 못했던 해외 여행길. 한건 복지재단과 한국종합건설(대표 김경배)이 이런 노인들을 위해 7000여만원의 경비를 들여 지난 18일부터 3박4일 동안 중국 상해와 항주, 소주를 여행하는 ‘어르신 공경 효 해외문화탐방’기회를 마련한 것.
이번 여행은 준비과정 만 3개월. 대상자를 엄격히 선정하는 것도 이유지만 어른들의 첫 해외 나들이에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히 준비하기 위한 주최 측의 배려다. 대상자는 우선 65세 이상 70세 미만의 노인 중 한번도 해외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노인. 여기에 해외여행을 하는데 건강상 무리가 없어야 했다. 따라서 청주시로부터 추천을 받은 110여명의 어른은 하나같이 한국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일부가 탈락하고 결국 86명의 노인과 2명의 의료진, 10여명의 자원봉사단 등으로 구성된 110여명의 여행단이 꾸려졌다. 마침내 여행 첫날 청주공항을 이륙한 동방항공 여객기가 한 시간 반쯤 지나 도착한 곳은 중국 제일의 경제도시 상해의 포동국제공항. 고층 빌딩 숲을 달리며 현지 가이드(김명성씨·여·23)는 “관광버스로 상해시까지 1시간30분이 걸리지만 시속 340km에 달하는 자기부상열차를 이용하면 불과 8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며 최첨단 대중교통을 연신 자랑했다.
그러나 현지가이드의 자랑은 채 1시간을 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 앞서 출발한 일부여행단(1호차)과 달리 후미차량(2·3호차)에 탑승한 67명의 여행객은 상해에 임시숙소를 마련하고 현지 병원(포남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1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진료결과는 비교적 희망적. 만일의 사태에 조기 귀국까지 고려했던 주최 측은 한숨을 돌리고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여행 둘째 날 상해에 아침이 찾아왔다. 호텔식 뷔페로 아침식사를 한 노인들. ‘느끼한 음식에 불편해 하지 않을까’했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정성들여 쌓아온 고추장 등을 꺼내놓고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 동방항공을 타고 중국 상해 포동국제공항에 도착한 ‘어르신 공경 효문화 탐방단’이 탑승구를 따라 내리고 있다. 아래서 세번재가 60년 만에 상해를 다시 밟는 남도희 할아버님. ’효’탐방단 울다 웃었다“건강은 괜찮으세요” 아침인사로 건넨 말에 노인들은 “일부 타박상이 조금 있지만 견딜 만 해, 그나저나 청심환 돌리며 응급처치 하느라 따라온 의료진(간호사)이 고생 많았어. 오히려 (주최 측이)걱정이 큰 나머지 말도 안 통하는 병원 여기저기를 끌고 다녀 힘들었지”라고 기대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둘째 날.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중국 10대 명승지 중의 하나 서호(西湖). 중국 6대 문화의 고도(古都)로 불리는 절강성 성도 항주에 자리한 서호는 1만2000년의 오랜 역사와 함께 시인 묵객들이 찾아 시를 읊을 만큼 주변경치가 수려했다. 서호 주변은 서호 10경을 비롯해 100여 곳의 명승고적과 영은사, 비래봉석굴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히 중국 국보로 지정돼 있는 1000여년 역사의 산실 목조 육화탑과 민물 진주양식으로 유명한 전당강이 흐르고 있다. 청주 복대동에서 온 원재희 할어버지(67) 는 “액땜해서 그런지 여행이 더 즐거워. 자고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종합건설 사장은 대단한 사람이야. 아마 현대 고 정주영 명예회장도 이런 일은 생각지 못했을 꺼야”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다음으로 찾은 곳은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는 영은사. 비래봉 동굴을 찾자 338명의 부처들이 조각돼 있었다. 영은사는 중국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로 입구에 ‘지척서천(咫尺西天 극락이 가까이 있다)’이란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대웅전 내에 황금색으로 만들어진 석가모니좌상은 자그마치 19.6m. 대웅전의 높이는 33.6m에 이르는 웅장한 건물이다. 이런 웅장함 속에서도 석가모니 뒤편으로 모셔진 미륵보살과 500나한(羅漢) 중 단연 우리의 눈길을 끈 불상이 하나 있다. 바로 신라시대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로 모신 것. 김교각 스님은 신라 성덕왕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위를 버리고 중국 안휘성 구화산으로 입산해 수도를 했다. 서기 719년 그의 나이 24세였다. 500나한 중 가장 크고 가운데에 모셔져 있는 것을 볼 때 중국인들이 얼마나 신라의 승려를 존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청주 대성동 이양순 할머니(68)는 “멀리 와서 우리 불상을 만나니 반갑지 뭐, 아무튼 중국이란 나라는 뭐든지 크고 웅장한 것 같아. 생전에 이런 곳을 여행할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너무 기뻐, 돌아가면 자랑 거리 많아서 좋아”라고 감탄사를 전했다.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송 개보(開寶) 3년(970년)에 오월왕(吳越王)이 세웠다는 것이 육화탑. 이 탑에 전하는 절설이 이채롭다. 13살의 육화(六和). 부모가 전당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높은 해일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전당강을 원망하던 육화가 높은 바위에서 돌을 던져 용왕이 사는 궁전의 지붕을 깨뜨렸다. 이에 용왕이 그 연유를 듣고 부모를 돌려주고 만조 때(음력 8월18일)를 제외하곤 해일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 이를 기려 육화의 석상이 육화탑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청주 사창동 이숙열 할머니(66) “대단하지 뭐, 부모 살리려고 꼬마가 그렇게 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효’문화 탐방에 나선 우리한테 어쩌면 제대로 효의 의미를 전해 주는 것 같은데. 아쉬운 점은 육화탑을 올라가 보지 못한 거야.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서 모두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깜짝 이벤트에 발마사지까지 땅거미가 지자 콧노래는 어느새 코고는 소리로 바뀌었다. 노인마다 밀려오는 여독을 잠으로 달래며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소주시 강소성 성시반점. 서수원(70) 할아버지를 비롯한 14명의 노인들이 한건 복지재단이 마련한 깜짝 이벤트에 눈시울을 적셨다. “고맙다. 자식들도 챙겨주지 못한 고희연인데… 해외에서 또 한 번 칠순잔치를 하게 되니 기쁘다”를 연신 외쳤다. 10여명의 자원 봉사단도 어른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큰 절을 올렸다. 여기에 화답으로 어른들은 고이 접어뒀던 쌈지 돈을 건넸다.여기에 본부요원 김미숙 총무(38)의 부모님께 올리는 글은 대미를 장식했다. “시부모님 해외여행 한번 제대로 보내 드리지 못한 점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내 부모 같은 90여분의 노인을 모시고 중국여행을 왔습니다. 여행기간 동안 불편함 없이 건강하게 집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잘 모시겠습니다”란 말이 끝나자, 노인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가슴 찡한 고희연을 뒤로하고 여행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루 동안의 노곤함을 달랠 발 맞사지. 손주같은 관리사로부터 발 마사지를 받는 노인들은 ‘지척서천’이란 말을 되새겼다.여행 셋째 날,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인 졸정원(拙政園)을 찾았다. 미로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 연꽃정원을 거닐던 최정원 할머니(65)는 이내 흥에 겨운지 춤사위에 노래까지 선보였다. 상해에 고층빌딩(新)이 있으면 소주엔 정원(舊)이 있다. 150여 종에 이르는 연꽃과 분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 했다. 암행어사였던 명나라 왕헌신이 낙향해서 지은 정원으로 진대의 시 한구절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가슴에 묻은 자식 되돌아 온 듯 기쁘다”해외 출장길 아들 잃은 서수원·이옥순씨 부부이번 중국여행엔 3쌍의 부부가 함께 선정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 중에서도 여행 둘째날 소주 강소성 상시반점에서 한건 복지재단이 마련한 합동 고희연의 주인공이 된 부부가 있다. 바로 청주시 가경동에 사는 서수원(70)·이옥순(69)씨 부부. 모두 14명이 잔치 상을 받은 이날 서 할아버지는 “친 자식들도 못하는 일을 이렇게 해주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 서수원·이옥순씨 부부
편지라도 써서 한건복지재단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가슴에 묻은 자식이 되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서 할아버지는 사실 남다른 아픔이 있다. 하나뿐인 아들을 가슴에 묻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아픔이 있는 분이다.
6년 전 서 할아버지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던 아들을 갖 결혼시켜 해외 출장을 보냈다. 그런데 현지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현재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서 할아버지는 “다 큰 딸도 늙은 부모가 불쌍한지 시집갈 생각을 안 하네. 그러다 보니 막상 칠순 잔치도 못했어.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 잔치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무도 고마워”라며 메말랐던 눈시울을 적셨다. 이번 중국여행은 예상치 못한 두 번의 현지 사고가 있었지만 본부단이 운영의 묘를 살려 발 빠르게 대응 하면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건강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노인들은 “여행기간이 짧다. 관광보다 휴식시간이 길었으면 한다. 여행단 규모도 줄였으면 좋겠다”는 다소의 불평이 있었지만 대체로 여행에 대한 만족과 감사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배상은 사무총장은 “중국 현지 여행사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로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노인들에게 생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효 문화 탐방의 본래취지가 퇴색돼 중단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내년부터는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여행지를 조정해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