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문 하나 없는 안심사 입구 사람을 편안하게 하려는 마음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흐르고 있는 절 얼마 전 가까운 이들과 가벼운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가치관 경매였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에게 있어 무엇이 중요한 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였다. 꽤 여럿이서 마음의 평화를 손꼽았다. 퍽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기도 했다. 그 때 머릿속에서 퍼뜩 떠오른 장소가 있었다. 청원군에 있는 안심사라는 절이었다. 아마도 이름에서 오는 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작정하고 준비하여 떠나는 것과 가볍게 바람이나 쐬는 것.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에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는 기대감이 크게 자리한다. 반면, 바람이나 쐬는 정도로 훌쩍 가볍게 떠나는 여행은 작지만 탱글탱글한 기쁨이 빠르게 마음에 번져 나간다. 청주 사람들에게 있어 안심사는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이다.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는 길도 순순하다. 입던 옷에 신던 신발 그대로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 마음자리가 뒤숭숭할 때, 그럴 때 다녀올만한 곳으로 조용하게 소문난 절이다. 안심사를 가려면 먼저 석곡 사거리를 찾아 가야 한다. 플라타너스 길로 유명한 강서 사거리에서 들어 갈 수도 있고, 가경동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하면 충북공고를 막 지나는 시점에 있는 사거리다. 이 사거리에서 석곡주유소가 있는 152번 군도로를 따라 남이 청원 교차로쪽으로 십 리 정도 가다보면 척북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오 리 정도 가면 안심사 표지판이 크게 나타난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길을 잡으면 구불구불 자그마한 논배미들이 양쪽으로 정겹게 자리하고, 구룡산 줄기에 폭 안겨있는 안심마을이 보였다가 가려지곤 한다. 골짜기가 깊지는 않지만 길기는 한 탓일까.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뜻한 전원주택도 별로 없다. 저자거리를 벗어나면 자연이 가깝게 다가온다. 사람 소리가 멀어지는 곳 새 소리도 가깝게 들려온다. 왁자지껄한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혼자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을 가깝게 끌어당기고 대화를 나누는 데는 초여름 숲길이 안성맞춤이다. 갓 모내기한 논배미가 거울처럼 맑다. 녹음이 깃들기 시작하는 산 그림자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 안심사 연꽃
자신을 가깝게 끌어당기고 대화를 나누는 데는 초여름 시골길이 안성맞춤이다. 갓 모내기한 논배미가 거울처럼 맑다.
안심사는 상당히 여성스러운 절이다. 우리네 어머니 같다고나 할까. 키 작고 몸집이 작아 그 존재가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빛으로 어느덧 온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여성. 안심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절이다. 그 흔한 일주문도 없다. 다만 오래된 느티나무 몇 그루의 큰 그늘이 절 입구를 편안하게 만든다.
신라 혜공왕 때 세워진 절이니 오랜 세월 이것저것 마련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절 마당에 탑 한 기도 없이, 그냥 비어 있다. 크게 키우려면 얼마든지 넓힐 만하게 산자락이 원만하고 순한데도 그렇다. 그러나 그 작은 공간이 마냥 비어있지도 않다. 곳곳에 온갖 생명들이 깃들어 함께 살고 있다. 공들여 키운 꽃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피고 지는 절 구석구석 작은 꽃밭들이 그러하고, 마당 초입의 작은 석연지와 마당 구석의 연못은 숲 속 식구인 산개구리와 도룡뇽이 몸을 풀어놓는 곳이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안심사는 대웅전도 작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불과한 작은 집이다. 하지만 이 대웅전은 보물664호다. 문을 열고 부처님을 보니 절의 인상처럼 얼굴이 순하시다. 부처님 뒤의 후불 탱화도 부드럽다. 1891년에 그려졌다니 세월이 부드러움을 절로 자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처음 절이 세워질 당시 신라 진표율사가 말한 것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하려는 마음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흐르고 있는 때문일까.
이 절의 편안한 인상은 부처님 머리 위의 닫집도 말해준다. 빛바랜 나무 색으로 퇴락의 빛이 역력하지만 섬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늙으신 어머니의 손이 저러하고, 주름진 입가의 미소가 저러하리라.
작지만 오래된 절, 안심사는 고미고미 볼 것이 꽤 많은 절이다. 대웅전 외벽이나 지붕 모습이 독특한 건축 형식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다. 중수와 중건, 중창을 거듭하는 동안의 과정을 추적해 보게 하는 재미가 만만찮다. 먼저 대웅전의 전체적 집 태가 좀 이상하다. 뭔가 껑충한 느낌이다. 그 연유는 처마 안쪽에서 이해가 된다.
우리네 한옥 형식은 다포가 많은 집에는 대개가 팔작지붕을 쓴다. 이는 건물 측면이 넓어 집이 앞뒤로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대웅전의 지붕은 다포가 겹겹으로 많이 올라갔으면서도 팔작이 아닌 맞배지붕이다. 그렇다면 처음 이 대웅전을 만들 때는 팔작지붕이었다는 이야긴가?
그 답은 대웅전 뒷면에 있다. 어느 때인가 이 집의 뒤쪽 한 칸이 손상되자 원래의 모습인 측면 3칸을 2칸 집으로 줄여서 수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웅전의 변형된 구조는 같은 절의 영산전으로 그대로 물려진다. 영산전 역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이라는 흔치 않은 건축물이다.
▲ 뒷산에서 내려다 보는 안심사 영산전에는 아담한 나한상들이 빙 둘러 앉아 있다. 똑 고르게 50센티미터 정도의 나한상들인데 역시 대웅전의 부처님처럼 인상들이 소박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소박한 나한상들의 발밑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기다랗게 가로놓인 나무함이 있다. 괘불을 보관해 놓은 것 괘불함인데, 안심사를 빛나게 하는 보물상자라고나 할까. 작고 오래된 이 절을 당당하게 만드는 힘이라고나 할까. 괘불은 기도나 법회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불전 바깥에 걸어 놓고 의식을 행하는 불화이다. 안심사 괘불은 청원군의 유일한 국보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색체 보존 등의 이유로 볼 수 없고, 일 년에 한 번 석가탄신일에만 볼 수 있다. 영산전을 나오면 뒤편 산언덕 쪽으로 보일 듯 말듯 작은 길이 나있다. 손바닥만한 돌이 몇 개 도움닫기처럼 놓여 있고, 길은 깊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이 언덕에 서면 안심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들어오는 길은 순순하고 완만했지만, 이 절은 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건너편 산줄기가 한참이나 아래로 보인다. 어느새 산빛이 많이 달라졌다. 연둣빛 산이 수런수런 녹음으로 가고 있다. 이제 산빛은 점점 더 반짝일 것이며 숲 안은 더욱 서늘해질 것이다. 여름 숲 입구에서 돌이켜 보니 지난봄은 많이 바빴다. 봄은 늘 종종걸음을 한다. 그러나 여름 숲은 더디다. 단조롭다. 이젠 발걸음의 속도를 조금 낮출 때이다. 단조롭고 느린 자연의 움직임 속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햇빛이 내리쬐는 숲속에서 동물들이 뛰어 놀고, 벌레들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밝고 맑다. 잎사귀 하나하나를 쓰다듬어주는 바람의 손길이 감미롭다. 온 숲속에 평안이 가득하고, 밝은 빛줄기가 온 몸을 감싼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안심사 영산회괘불탱(安心寺 靈山會掛佛幀) 국보 제297호안심사(安心寺)에 있는 불화(佛畵) 불화의 내용은 석가여래불(釋迦如來佛)을 주존(主尊)으로 그 주위에 불(佛)·보살(菩薩)과 제자들인 교화성중(敎化聖衆)과 사천왕(四天王)의 호법신(護法神)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한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로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청문성중(聽聞聖衆)과 지방불(地方佛)이 둘러싸고 있는 구도를 실감나게 나타내었다. 주존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높고 뾰족한 육계가 있고 중간에 계주가 있으며 눈·코·입과 수염이 장식화되어 조선중기의 불화수법을 보여준다. 괘불대(掛佛臺)를 대웅전 앞에 설치하여 부처님오신날 등 중요한 행사 때 괘불을 걸어 예배하도록 공개하고 있다.
▲ 안심사 대웅전(安心寺 大雄殿) 보물 제664호안심사의 주존(主尊)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중기의 일반형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신라 혜공왕(惠恭王) 11년(775)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건하고, 그 후 조선 인조(仁祖)4년(1626)에 송암대사(松庵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존 건물은 1626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 기와에 "강희십일년임자(康熙十日年壬子)" 명문(銘文)이 있어서 현종(顯宗) 13년(1672)에 번와한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후에도 수차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976년 12월 23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가 1980년에 보물로 승격되었다. ▲ 안심사 세존사리탑(安心寺 世尊舍利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안심사 대웅전의 서편에 놓인 석종형 부도(石鐘形 浮屠)로서 탑비(塔碑)와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부도는 신라 혜공왕(惠恭王) 11년(775)에 진표율사(眞俵律師)가 안심사를 창건할 때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조성양식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