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익 1조8천억원, 해외 매각 막아준 지역에 인색 여론
| 채권단 공동관리를 조기졸업하고 지난해 1조8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하이닉스의 회생 이면에는 2002년 해외 매각 위기에 처했을 당시 ‘하이닉스 살리기’에 올인한 도민들의 성원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2004년 12월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하청지회의 농성으로 시작된 하이닉스 사태는 15개월이 지나도록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직접고용 불갗라는 사측의 철옹성 같은 차단막으로 인해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장기간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의 경제적 고통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재산압류와 이혼 등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상복투쟁과 서문대교 고공농성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일하고 싶다는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목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사용자도 아니고 노동위원회가 불법 파견을 결정한 만큼 고용의 의무가 없다는 하이닉스 사측의 주장은 그들이 말하듯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대기업에 걸맞지 않는 편협함과 옹졸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매각을 저지하자는 범도민운동과 지역에 내밀었던 대기업의 손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불거진 하이닉스 사태는 법리 논쟁에 앞서 ‘충북에 있어 하이닉스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이닉스와 지역이 일궈낸 상생의 과정을 돌아보고 보다 더 큰 상생의 길은 없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
해외 매각 방패막이 ‘충북’
2002년 4월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를 미국의 마이크론사에 매각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청주공장의 3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메모리 부문을 전직원 85% 이상의 찬성을 전제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반도체업계는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었고 정부 방침대로 계약이 성사될 경우 연구개발 등 핵심 분야는 모두 미국으로 옮겨가고 청주공장은 단순한 생산기능만 수행하거나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현금 대신 마이크론사 주식 1억8000만주로 대신한다는 계약 금액이었다.
당시 마이크론사 1주 가격은 29.5달러로 전체 금액이 32억달러에 불과했으니 빅딜 당시 현대반도체가 LG반도체를 인수한 가격의 절반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빅딜 당시 현대가 LG로부터 인수한 금액은 현금과 부채 각 3조원씩 모두 6조원이었다. 더욱이 여기에 더해지는 계약의 혜택 사항이 알려지면서 특혜를 주면서 까지 해외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 한다는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하이닉스 인수 금액의 절반에 가까운 15억달러를 30년 만기의 저금리로 대출 지원하는 것과 인수주식 중 1400만주를 에스크로우 주식으로 묶어 둔다는 것.
에스크로우는 특정물을 제3자에게 기탁하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상대방에게 교부할 것을 약속하는 조건부양도증서로 마이크론사가 손실을 볼 경우 이를 되찾아 간다는 조건이었다.
LG반도체 인수가격의 절반에, 그것도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매입하면서 그중 절반을 대출지원해주는 것으로도 부족해 손실까지 보전해 주겠다는 내용에 지역 여론은 냄비 끓듯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청주공장에 남겨진 비메모리 부문에 부채를 고스란히 안겨 준 채 흑자를 내기 시작한 메모리 부문만 떼내 납득할 수 없는 특혜까지 주며 미국에 넘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 | ||
하이닉스 해외 매각 방침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조목조목 반대 근거를 제시하며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메모리 부문 반도체 기술로 향후 성장성 측면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던 반도체를 헐값에 특혜까지 주며 매각하는 것은 불모지에서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국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고용 등 지역경제에 미칠 악영향과 국부유출 주장까지 제기되며 하이닉스 해외 매각 반대는 도민운동으로 확산됐다.
하이닉스 매각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하면된다는 정신이 자본에 의해 여지 없이 무너져 이에 따른 상실감과 국민적 패배감은 물론 충북지역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하이닉스가 채권단 관리중이라고는 하지만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반도체 기술이 초일류라는 점에서 경쟁국에 상납하듯 매각하는 것에 분노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등 관계기관에 수차례 항의문을 제출하는가 하면 1500여명이 참가하는 대중 집회를 열기도 해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하이닉스 매각 반대 내용을 포함하는 국회 결의문을 이끌어 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하이닉스 매각을 저지시키는 도민운동이 회사 측과 긴밀한 협조에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또다른 관계자는 당시 회사측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하이닉스 매각 가능성이 전해진 것은 2001년 가을 쯤이다. 시민사회단체 일부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서시히 이뤄지다가 다음해 4월 본격화 됐다. 처음에는 일부 단체가 대기업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공동대책위가 꾸려지는 등 도내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했다. 회사측과 초기부터 협의해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움직임이 가시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접촉이 이뤄졌다.
정부 차원의 해외 매각 논의가 깊어지면서 회사측에서도 구체적인 도움을 주문해 오기 시작했다.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대응이나 지역에서의 여론 환기 등 주요 단체와의 활발한 물밑접촉은 매각 반대 운동 방향 설정에 적잖이 기여했다”
하이닉스 매각 저지에 대한 지역의 시각은 자발적으로 벌어진 도민운동에 회사까지 동참해 이뤄낸 쾌거라는 것이다.
김진오 기자
true5@cbi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