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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완희 청주시의원
길었던 추석 명절이 지났다. 모처럼 마음 편하게 친지들과 지인들, 시민들을 만났던 연휴였다. 문득 지난 설 명절이 생각났다. 총칼이 난무할 뻔한 광란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던 불안했던 시기. 1년이 채 안 된 시간인데 벌써 이렇게 우리는 예전의 따스한 세상으로 복원됐다. 전 세계 어디에도 보지 못한 ‘K-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이다.
추석 명절 민심을 살폈다. 민심의 바로미터는 전통시장이다. 원마루시장, 두꺼비시장, 가경복대시장을 돌면서 시민들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지만 추석만큼은 전통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다행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공동체의 삶이 녹아 있는 생활 문화의 터전이자, 시대 변화 속에서도 꿋꿋이 서민의 삶을 지탱해 온 ‘생활경제의 뿌리’다. 조선시대 후기 5일장으로 시작된 전통시장은 지역 간 교류의 중심이었고, 산업화 이전까지는 농민과 상민이 만나 물자와 정을 나누는 유일한 사회적 커뮤니티였다. 시장 안에는 흥정의 소리, 온정 어린 인심, 세월의 냄새가 스며 있다.
그러나 편의점과 대형 마트,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된 오늘날 전통시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은 급감했고, 젊은 세대의 발길은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전통시장을 단순히 ‘낡은 유통 공간’으로 볼 수는 없다. 시장은 여전히 지역민의 생활경제를 지탱하고, 골목상권의 온기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다. ‘사람 중심의 지역 회복’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전통시장은 지역 경제의 자생력을 키운다. 대형 유통업체의 이익이 본사로 흘러가는 구조와 달리, 시장의 매출은 지역 내에서 순환해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에게 다시 돌아간다.
둘째, 전통시장은 세대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한다. 기존 상인들의 경험과 젊은 창업자의 아이디어가 결합하면 새로운 지역문화가 탄생한다.
셋째, 전통시장은 사회적 약자를 품는다. 생계형 상인, 노년층 일자리, 지역 농산물 직거래 등은 모두 전통시장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경제의 형태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통인시장은 ‘도시락 카페’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되살렸고, 대구 서문시장은 야시장과 문화 공연을 결합해 대표적인 관광형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전북 전주의 남부시장 역시 청년몰을 조성해 청년창업의 요람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통으로 ‘시장=낡음’이라는 이미지를 ‘시장=새로움’으로 바꾼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시설개선 사업을 넘어, 문화·관광·청년창업을 결합한 복합형 시장 재생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해 온라인 주문·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장 상인들에게 SNS 마케팅 지원도 제공하는 등 디지털 친화형 전통시장으로의 전환이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의 연결’이다. 시장의 진짜 경쟁력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신뢰와 정(情)이다. 지역민이 시장을 ‘우리 동네의 얼굴’로 여기고,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한 활성화의 핵심이다.
장터의 불빛이 꺼지면 도시의 온기도 사라진다. 전통시장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가꾸고, 이어 나가야 할 미래의 자산이다. 서민의 삶과 애환이 배어 있는 그 골목이 다시 웃음을 되찾을 때, 지역경제의 맥박도 다시 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