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구속수사·재판원칙, '일단 구속시켜놓고 보자'

청주, 영장 발부율 평균 상회

본보 지난호(9월14일자 246호)에 게재된 ‘무분별한 인신구속’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많은 독자들과 피해자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분명히 불구속수사와 무죄추정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구속 수사 및 재판이 일상화되어 있어 ‘구속 왕국’을 실감케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하소연은 무엇보다 재판 제도와 법조인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높아만 간다는 사실이다. 가장 뿌리깊은 불신은 제도와 법에 따라 이루어지기 보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돈없고 빽없는 약자만 당하게 된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조에 대한 회의감이다.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 한국민족정신연합회 사무실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법조 피해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사무실은 종교 단체 사무실이지만 지난해부터 이 연합회 김옥순총재가 공권력의 남용으로 피해를 본 법조 피해자들의 단체인 ‘전국 공권력 피해자 연맹’의 청주 모임을 이끌면서 소문을 듣고 피해자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때문이다.
전국 공권력피해자 연맹은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그 어디에 제대로 호소할 곳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만큼 시민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법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저 정의가 세워질 줄 굳게 믿고 법에 호소했다가 돈과 시간만을 잃고 낭패를 봤다는 피해자를 비롯하여 억울하게 구속되었지만 풀려 나오는데 급급하여 변호사에게 선임료만 주고 무죄를 다퉈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등 다양하다.

“재수없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니

이중에는 변호사의 성의 없는 변론 등 의뢰인에 대한 불성실 서비스에 불만이 가장 높았다. 한 참석자는 “변호사가 처음에는 무죄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일단 구속되고 나자 ‘재수없어 당한 일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일단 나가서 싸우자’는 식으로 종용하고 나섰다. 막상 재판에 들어가자 피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기보다 판사의 눈치를 살피며 판사에게 거스르지 않는 재판 진행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역력했다”며 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옥순씨는 “모 변호사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느 한 피의자로부터 무죄를 입증시켜 주겠다며 선임료로 330만원을 받아갔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변론을 못하겠다고 했고 피의자는 선임료를 돌려 받으려 했지만 200만원 밖에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빼앗겨 10여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이모씨는 “농지 거래 증명을 위한 서명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상대방이 위증죄로 처벌까지 받았는데 그 거래의 원인 무효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여기에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구속에 따른 사회적 처벌로 인해 돌이킬수 없는 죄인이 된 채 아무런 보상을 되돌려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청주지법 영장 발부율 전국 평균 상회

한편 인권(人權) 정부를 자처해온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형사 피의자 피고인에 대한 인신 구속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국회 국정 감사자료로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997년 82.2%에 머물렀던 구속영장 발부율이 98년 85.8%, 99년 86.4%, 2000년 86.7%, 2001년 87.4%로 현정부 들어서 해마다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청주지법의 경우는 구속영장 발부율이 지난해 88.1%에 달해 전국 평균 보다 0.7% 포인트 높았다.
반면 보석허가율은 96년(58.6%)을 정점으로 97년 55.2%, 98년 51.9%, 99년 50.8%, 2000년 50.6% 등으로 떨어지다가 급기야 지난해에는 50%벽이 깨지면서 49.9%까지 주저앉았다.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어느정도 지켜지는지를 가늠해 볼수 있는 체포·구속적부심 석방률도 97년 48.3%에서 98년 44.3%, 99년 43.3%, 2000년 44.2%, 2001년 42.5% 등으로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이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의해 부당한 인신구속으로부터 보호받을수 있는 영장실질심사, 체포·구속적부심, 보석 등을 통한 인권 보호 장치들도 일단 구속시켜 놓고 보자는 수사·재판 편의주의에 의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법조 주변에서는 구속을 면하는데 1000만원이라는 돈거래의 검은 소문들이 무성한 실정이다.
/ 민경명 기자

“바쁜 업무에 쫓겨 무죄 판결 쓰기를 꺼려하는 판사,
구속을 도구로 수사에 임하는 검찰,
적당히 타협해 돈만 벌려는 변호사”
변호사가 ‘억울한 죄인’ 양산 법조 현실 비판 소설

구속재판제도의 문제점과 변호사의 불성실한 변론 등에 대한 법조 불신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가 쓴 법정소설 『그림자 새』가 세간에 화제다. 전직 판사로서 법조계의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인해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내는 법조현실을 통렬히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다.
작가 임판 변호사는 93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5년여간의 판사직을 그만두고 인천에서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임변호사는 책의 서문에서 “주인공이 있는 개인적인 드라마이긴 하지만 소재가 법정 드라마이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판사와 변호사를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재판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그런 제도의 크나큰 수혜자였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음에 틀림없지만 누구라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런 부끄러움을 덮어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소설에서 변호사를 ‘고용된 총잡이’ ‘용병’ ‘장돌뱅이’ 등으로 부른다. “다른 변호사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하면서도 변호사의 공익적인 역할은 이상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한 신문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법조 현실 비판은 ‘법화’(法禍)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관통하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바쁜 업무에 쫓겨 무죄 판결 쓰기를 꺼려하는 판사, 구속을 도구로 수사에 임하는 검찰, 적당히 타협해 돈만 벌면 된다며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으려는 변호사 등등. 이런 불완전한 시스템이 소설에서처럼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테마인 강간 사건도 실제로 그가 판사 시절 무죄를 선고한 피고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인 법조인이 되었지만 이혼의 아픔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김변호사가 억울하게 구속된 세 소년의 변론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자신과 인생의 의미를 이해해 가는 내용이다.
/ 민경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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