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유족과 함께 끝까지 힘을 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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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21일이 되는 13일 4가족이 장례를 치른다. 충북 노동시민사회는 고김병철님 빈소에서 추모식을 열고 유족을 위로했다. 고 김병철님은 아리셀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중 재해를 당했다.
사고 당시 화재지점 바깥의 사무실에 있다가, 화재발생 시 사고지점으로 달려가던 중 폭발로 사망했다. 평소 자녀들 이야기를 많이 했으며, <충북인뉴스> 기자로 일하던 부인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이날 추모식에는 오송참사 유가족들도 참석해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이중훈 오송참사 유가족은 “오상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6월 24일 또다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부터 지금까지 유족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러나 참사를 막지 못했다. 죄송하다. 아리셀 참사도 오송참사와 같이 막을 수 있었음에도 일어났다. 정부와 지자체, 사업주의 생명안전에 대한 무책임이 개탄스럽다.”며 분노했다.

유족에게는 슬픔, 분노, 절망, 좌절, 모든 아픈 감정과 고통을 나누며 곁을 지킬 것이라 위로했다.
송성영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 공동대표는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하차도, 아리셀 참사까지 사회적 참사가 반복돼도 이 사회는 바뀔 줄을 모른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지났어도 책임자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태원 참사, 오송참사도 마찬가지다. 참담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아리셀 참사 희생자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죽음에 차별이 없다. 모두 사람이다. 아리셀대책위는 산업현장에서 인권차별이 없는 세상,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유족과 함께 끝까지 힘을 모을 것”이라 다짐했다.
박옥주 민주노총충북본부장은 “아리셀은 참사 이전에 이미 4번의 화재가 있었다. 대형 인사사고가 우려된다는 컨설팅도 있었다. 예견된 참사였다. 그러나 100명이 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에스코넥과 아리셀 자본의 이윤 뒤로 미뤄졌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 책임자의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살아남은 우리에게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와 가족, 이웃이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된다. 생명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온전한 책임규명과 에스코넥‧아리셀 자본의 최고책임자 처벌을 위해 유족과 손잡고 걸어갈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또,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5인미만 사업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근절을 위해 끝까지 싸워 고 김병철님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 김병철님 유족은 “사실 지금도 꿈같다. 목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회사, 지자체 등과 싸움이 이미 시작됐다. 그런 현실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당하고 나니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공허한 이야기로 생각될 만큼 무력감에 빠졌다. 그럼에도 유족과 함께 싸워주는 분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제 애들 아빠 좋은 곳으로 보내고 잘 버텨보겠다.”며 눈물은 삼켰다.
박종호님, 이은주님은 기타연주와 추모곡으로 위로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단체 조문으로 식을 마무리했다.
한편, 16시 반경 아리셀 회사 관계자가 빈소를 찾았으나 유족은 조문을 거부했다. 유족은 아리셀이 보내온 자료가 고인을 모욕하고, 유족에게 상처를 줬다며 조문할 자격이 없다며 거부했다.
아리셀 사측은 고인의 국적과 주소도 확인하지 않고, 함께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자료를 보낸 것이다.
유족은 아리셀 사측이 산재보상의 근거를 길림성 평균임금으로 하여 산정하고, 동포비자 불법취업으로 강제출국 대상으로 19일 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공탁하겠다는 협박조의 문서를 보냈다며 분노했다.
또, 회사의 이런 태도가 유족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유족협의회와 하루라도 빨리 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빈소를 찾은 아리셀 관계자는 고개를 숙였다.
충북 노동시민사회는 아리셀의 책임회피가 계속되는 만큼 장례를 치르더라도 이후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에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
(이 기사는 <노동과세계>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