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배경 청소년 보고서⓵

충북에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23년 충북에 거주하는 외국인·중도 입국 학생이 2019년 대비 두 배가량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충북도 및 청주시 등 각 지역 기초지자체 지원방안은 사실상 전무하다. 충북교육청이 최근 이주배경 청소년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마저도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학생들에게만 국한된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제대로 된 지원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성이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많다.

충북인뉴스는 교육청에서도 지자체에서도 외면한, 이른바 교육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만나볼 생각이다.(편집자 주)

이발레리 학생이 청주새날학교 체험학습 활동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청주새날학교 제공)
이발레리 학생이 청주새날학교 체험학습 활동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청주새날학교 제공)

 

열여덟 살 이발레리는 고려인 4세다. 4대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쫒겨 카자흐스탄으로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뿐, 상세한 내막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명백한 한국인이고 그래서 자신 또한 분명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발레리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16년 열 살 때다. 엄마가 일자리를 찾아 먼저 한국으로 떠난 터라 엄마와 함께 살고픈 마음이 강했다. 엄마와 같이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토록 보고팠던 엄마와 함께 살게 됐지만, 어린 발레리가 겪어야 할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일단 학교가 문제였다. 발레리는 이주 배경 학생들이 많다는 청주 한벌초에 2학년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과 동시에 막막한 현실의 벽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다.

한국말로 소통이 안되니 친구를 사귈 수도, 교사의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 ‘아니오’가 유일한 표현이었고, 시시각각 밀려오는 놀람과 기쁨, 당황, 우울 등은 표현할 길도, 나눌 길도 없었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엄마는 직장생활에 치여 늘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한벌초 다닐 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선생님은 한국말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는 선생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나는 그냥 교실에서 앞만 쳐다보고 앉아있기만 했어요. 너무 슬펐어요.”

 

공부는 자연스럽게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한벌초의 생활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후 찾은 곳이 청주새날학교다. 새날학교에서는 자신처럼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발레리는 새날학교에서 한국말과 글을 기초부터 배웠고, 청주에서 살아가는 법을 하나둘 익혀가기 시작했다. 초등과 중등 검정고시를 차례로 합격했고, 현재는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새날학교에 처음 왔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선생님들이 나한테 공부 같이 열심히 하자고 했어요. 같이 하자고 했어요. 같이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발레리는 한벌초를 ‘슬픔’, 청주새날학교를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한벌초는 ‘슬픔’, 청주새날학교는 ‘행복’

안정감은 되찾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자신은 분명한 한국인이고 엄마와 같이 살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는 또다시 자신을 이방인 취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발레리에게는 ‘러시아 사람’, ‘카자흐스탄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3~4년간 이어졌던 ‘미운 마음’,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는 기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발레리는 이런 감정을 ‘사춘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새날학교에서 친구도 사귀고 한국말도 배웠지만, 심하게 사춘기를 겪었어요. 모든 것이 싫었고 핸드폰 게임할 때가 제일 편하고 좋았어요.”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사춘기 이전에 ‘이방인’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라는 것을 발레리 본인은 물론 새날학교 교사들은 알고 있다.

새날학교 교사 A씨는 “특히 중도 입국 아이들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이 힘들어합니다. 야단을 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계속 이야기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청주새날학교 제공.

 

지독한 사춘기, 그리고 다시 찾은 안정

발레리는 얼마 전부터 이제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고 말한다. 사춘기가 지나갔고 이제는 ‘미운 마음’도 없으니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말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말인지, 아니면 정체성에 대한 의문 자체를 잊고 살겠다는 말인지는 정확하진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발레리는 이제 미움보다 목표를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재 발레리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새날학교와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돕고 싶단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십 대를 온전히 청주에서 보낸 발레리. 발레리에겐 아직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발레리는 앞으로 20대도, 30대도, 또 40대에도 청주에서 계속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발레리가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이후 청주에서 보낼 시간 또한 열 살 때 겪었던 한벌초 상황처럼 그리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 터널을 뚫고 나온 발레리에게 이제는, ’한국 말을 못하는 카자흐스탄 아이’라는 시선 대신 ‘이웃’이자 ‘친구’라고 말해 주고 싶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