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열(제천고교평준화를위한시민연대 상임대표)

 

이치열 제천고교평준화를위한시민연대 상임대표.
이치열 제천고교평준화를위한시민연대 상임대표.

 

우리 사회에서는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높은 학구열이 맞물리면서 중학교와 고교의 서열화, 과도한 입시경쟁이라는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9년 중학교평준화,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되었다.

당시 교육 당국은 비평준화의 폐해를 ▲아이들을 과도한 조기 입시 경쟁 노출 ▲학교 서열화를 통한 자존감 저하와 열패감 내면화 ▲지역 공동체 형성의 장애 등으로 분석했다. 물론 이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후 중학교는 100% 그리고 고교는 약 75% 정도의 평준화가 진행되었고, 제천이 이번에 고교평준화 정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입시경쟁교육이 낳는 폐해

교사들 사이에서 “학교는 아이들을 사고 없이 관리·통제하는 기관이자 줄 세우기 성적표 발부 기관이 되어 버렸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들린다. 일부 학부모와 아이들의 안하무인식 갑질이 난무하고, 교사들은 교권을 보장해 달라고 외친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하는 사회에서 다수의 아이들은 어린 시기부터 낮은 자존감과 열패감의 트라우마 속에서 불행해지고 있다.

최근 묻지마식 살인극들에서 보이듯 르상티망(원한과 분노)을 떠올리는 극단적인 사회문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승자독식의 가치로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열패자의 분노와 원한이 폭력적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경쟁만을 강요하는 세상과 교육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제는 아이들을 경쟁기계, 경쟁중독자로 만드는 미친 입시경쟁교육을 멈춰야 한다. 과도한 입시경쟁교육의 폐해를 극복하는 길목에 고교평준화가 있다,

 

경쟁, 서열화는 인간의 본능?

꽤 많은 사람들이 ‘경쟁, 서열화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반쯤 맞는 얘기다. 찰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의 기원은 유인원이며, 공감·희생 같은 본성도 진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류의 진화과정은 약육강식의 논리처럼 힘센 종들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조화롭게 잘 적응한 종들이 살아남은 역사였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협력하면서 진화해왔고 이타적인 본성 역시 명백한 진화의 산물이다. 현대 뇌신경과학에서도 인간에게 공감과 협력에 작용하는 세포인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경쟁, 서열화라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을 강조하면서 승자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논거로 활용되어 온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아동·청소년 발달의 결정적 시기

아동·청소년기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심들이 많다. 이 시기는 고차적 사고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출생 이후 수많은 경험 속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두뇌의 시냅스 중에서 꼭 필요한 것들은 더 강고하게 다지고, 쓸모없는 시냅스들은 가지 치는 이른바 뇌의 ‘리모델링’ 시기다.

그래서 이 시기의 생각과 경험은 그 어떤 시기보다도 뇌 발달에 결정적이다. 운동, 언어, 예술, 자연, 그리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빈번하고 강력한 경험은 일생을 거쳐 사용할 두뇌를 완성한다. 다양한 경험기억이 갖는 의미에 대한 뇌과학의 설명이다.

정서는 더욱 그렇다. 100세를 누릴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 ‘학교-학원-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해서는 절대로 바람직한 평생학습자로 성장하지 못한다. 쳇바퀴를 돌며 받는 스트레스가 신체, 인지, 정서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자생물학을 통해서도 규명(세포핵 속에 물질적 근원 존재)되었다. 성장과 발달의 발목을 잡고 정서적 안정감 폐해를 주는 과도한 입시경쟁교육은 어느 시기보다도 10대에게는 위험하다.

 

제천의 ‘교육력 제고’는 무엇일까?

혹자는 제천고교평준화에 있어서 ‘지역의 교육력 제고’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지역 교육력은 무엇일까? 지역 교육력은 ▲지역 아동·청소년의 인격 및 사회화를 형성하는 힘 ▲지역 사람들의 인간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한송이 외, 2022)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지역사회는 학생들의 지적·사회적 역량을 높이고 시민적 자질을 함양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한다. 혹시 지역 교육력을 문제풀이 훈련을 열심히 해서 ‘수도권 16개 대학을 많이 보내는 능력’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부디 ‘제천의 교육력 제고’를 위해 모든 시민이 나서서 힘써 주시길 바란다.

 

미래사회와 미래교육

교육력 제고는 ‘미래교육’이라는 화두와 함께 거론된다. 그럼 미래교육은 뭘까?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고도화에 따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구 대비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 되겠는가. AI나 로봇, IoT가 하지 못하는 일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 ▲타인을 존중하고 의사소통하며 참여를 통해 상생하고 협력하는 역량 등이 필요하다. 이것이 미래교육의 핵심이다.

그런데 미래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덮어놓고 입시경쟁만을 강요하는 ‘기-승-전-대학입시’의 발상법은 시대착오적이다.

 

평준화가 교육 선택권을 제한하고 하향평준화 된다?

일부에서는 평준화가 교육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교육에서는 평준화 시대 속에서 꾸준히 비평준화가 확장되어 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특목고(외고, 과학고, 국제고, 영재고), 자사고 등이 그것이다. 전국적으로 그 숫자가 평준화 이전 지역 명문고보다도 더 많은 약 100여 개의 소위 입시 명문고가 존재한다. 더 무슨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요구는 소수 상위권 학생들의 이해만을 보장하라는 이기적 요구에 다름 아니다.

다양성의 환경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현대 교육학의 정설이다. 평준화와 관련한 실증연구들을 살펴보면 평준화 이후의 학업성취도가 이전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강상진 외, 2011).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된 교육이 훨씬 아이들의 학업성취도 및 인성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사실상 평준화되어 있는데 무슨?

혹자는 제천은 사실상 이미 평준화되어 있는데 구태여 형식적인 평준화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제도의 변화도 없이 자동적으로 평준화가 실현되었다? 왜 이런 웃지 못 할 기현상이 발생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라.

이는 교육기회의 평등정신이 반영된 평준화가 아니라 과도한 입시 경쟁 패러다임이 만들어 낸 꼼수의 결과가 아닌가. 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참에 깔끔하게 평준화를 제도화해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숙의과정이 필요하다

제천고교평준화 문제는 지역사회와 교육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의제다. 중요한 정책결정의 과정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숙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시민들은 물론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조차 이런 이슈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심지어는 교사들조차 잘 모르는 게 실상이다. 당사자인 청소년들에게는 이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서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도 않다. 심각한 상황이다. 과정에서의 민주적인 숙의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충북교육청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래서 얼마 전 ‘제천고교평준화를 위한 시민연대’는 교육청에 좀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숙의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추가적인 시민공청회를 개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공문 형식으로 보낸 이 요청에 교육청은 전화통화를 통해 요청을 거부하고, 식사를 겸한 비공식적인 간담회를 하자고 역제안해 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공식적인 공문에 대해서는 공문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공개적인 토론회는 거부하고 비공적인 간담회를 하자는 저의는 무엇인가? 도대체 교육청의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시민들과 소통할 의지가 있긴 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차 공청회나 학부모연합회의 간담회, 학부모 설명회 등에서 보여 준 교육청의 태도는 제천의 고교평준화에 대해 반대를 넘어 방해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교육청은 시민들이 스스로 숙의 과정을 통해 최적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공정한 입장에서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고민과 토론이 진행되도록 촉진하는 것이 교육청의 역할이다. 교육청의 각성과 공정하고 적극적인 업무진행을 해주기 바란다.

 

이(利)로움과 의(義)로움의 조화

요즘 제천고교평준화 문제를 바라보면서 ‘<맹자(孟子)> 양혜왕 1장’에 나오는 고사(古事)가 계속 뇌리에 맴돈다.

 

전국시대 맹자가 양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양혜왕이 말하기를,

선생(맹자)께서 먼 길을 와주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을 알려주시오.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로움(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만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께서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시면 그 아래 대부는 내 땅의 이익만 생각하고 그 아래 선비나 백성까지도 자신의 이익만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 모두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어진(仁) 사람이 자기 부모를 저버린 자가 없고 의로운(義) 사람이 자신의 왕을 무시한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고교평준화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대학입시에서의 유불리(有不利)’의 문제로 치환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따져보면 고교평준화가 되든 비평준화가 유지되든 조변석개하는 대학입시제도 아래서 이것이 그리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보인다(여기서 관련 실증연구를 다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고교평준화를 제도화함으로써 다수의 아이들이 교복색깔로 열패감과 자존감의 저하되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제천에서 배추장사를 하더라도 ○○고를 나와야 한다”는 뿌리 깊은 소외 의식과 엘리트 의식이 완화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교육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서로 화합하는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할 줄 아는, ‘나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이요 둘이 아님’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민주시민의 소양이다. 이(利)로움과 의(義)로움의 조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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