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서부복지관, 70~90대 여성 노인 9명 그림책 공동출판
‘활짝 핀 꽃 같은 꿈을 꾸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어릴 적 소설가 꿈 이뤄가는 오순해 작가 인터뷰

'꽃꿈할매' 공동 출판 저자 오순해 작가 모습.
'꽃꿈할매' 공동 출판 저자 오순해 작가 모습.
제일 좋아하는 꽃을 묻는 질문에 “옛날엔 꽃 하면 목화 꽃이었어, 여자가 순해 보이고 살림을 잘할 것 같아서 목화꽃이라 얘기해야 시집을 잘 갔지. 근데 사실 난 시뻘겋고 화려한 꽃이 좋아”라는 답을 한 공재순 어르신의 말을 그림과 함께 책에 담아냈다. (서부복지관 제공)
제일 좋아하는 꽃을 묻는 질문에 “옛날엔 꽃 하면 목화 꽃이었어, 여자가 순해 보이고 살림을 잘할 것 같아서 목화꽃이라 얘기해야 시집을 잘 갔지. 근데 사실 난 시뻘겋고 화려한 꽃이 좋아”라는 답을 한 공재순 어르신의 말을 그림과 함께 책에 담아냈다. (서부복지관 제공)

 

청주서부종합사회복지관의 70~90대 여성 노인 9명이 모여 제작한 ‘꽃꿈할매’ 그림책 한 장면이다.

‘꽃꿈할매’라는 제목은 ‘꿈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활짝 핀 꽃 같은 꿈을 꾸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뜻한다. 오순해 작가의 ‘나는 누구여’라는 질문에 9명의 여성 노인들은 각자의 삶에 회고를 풀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격려하고 꿈에 대한 말들을 나누며 삶과 지혜를 녹여낸 구절들을 꽃과 함께 표현해냈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한 공동출판 그림책이다.

신보미 복지사는 “여성 어르신들 대부분이 돌봄과 가족에 전념하며 본인의 삶을 미뤄둔 채 살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자기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나마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찾길 바라며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그림책 제작을 지원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부복지관은 어르신들이 원하는 활동과 관계중심의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운영해왔다. 관계 형성, 그림 작품과 자서전 만들기 등 여러 희망사항들이 모여 그림책 제작을 결정했고, 신율봉어린이도서관의 지원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책이 출간될 수 있었다.

책 소개를 맡은 오순해(84세) 작가는 어릴 적 묻어두었던 소설가의 꿈을 복지관을 통해 이뤄가고 있다고 한다. 복지관을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며, ‘꽃꿈할매’ 외에도 광복절 기념글 ‘35년간 설움 받고 산 우리네 이야기’, 공모전에 도전하고 자서전을 작성하는 등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순해 작가는 일종의 포트폴리오처럼 손수 모아둔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소개했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구치는 내 모습’, ‘장수’, ‘시집가는 날’, ‘원추리꽃’
오순해 작가는 일종의 포트폴리오처럼 손수 모아둔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소개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구치는 내 모습’, ‘장수’, ‘시집가는 날’, ‘원추리꽃’

 

“난 내가 가진 꿈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잠들기 전에 항상 ‘나는 누구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생각하곤 했어요”

그림책의 출발점이 된 ‘나는 누구여’라는 질문은 오순해 작가가 항상 품고 살던 의문이라고 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 해왔지만 어릴 적엔 공부도 곧잘 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던 작가의 꿈을 가진 아이였다.

오순해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반장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하고 명랑한 학생이었다. 작문을 잘해 3학년 때 웅변 발표 대회에 추천받아 나갔다가 선배들을 제치고 우승을 하기도 하니 선생님은 항상 “순해는 이담에 공부해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꿈 많고 명석한 학생이었지만 중학교를 다니던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학교를 그만뒀고, 가족들을 위해 일하며 지내다 24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결혼 한 뒤 고생문이 열렸어요. 외갓집에서 쫓겨나 갓난아이를 업고 산골짜기로 리어카를 끌고 갔던 기억, 일은 안하고 밖으로 나도는 남편, 아들이라도 굶기지 않으려고 동냥하러 다니던 일, 산골짜기 방 한 칸 집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60여 년 전의 기억임에도 생생한 듯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아들 교육은 시켜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들은 밭일에 나오지도 못하던 산골마을에서 일하는 남자들 틈에 아들을 데리고나가 모심고, 밭 매고, 돈을 벌었다. 악착같이 번 돈으로 겨우 도시로 나와 건강식품 판매도 하고, 도매업도 하고 돈 되는 일은 다 해가며 살아왔다. 자신한테 쓸 돈을 아끼고 아껴 세 자녀들 대학도 전부 보냈다며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순해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꽃을 묻는 질문에 원추리꽃이라 답했다. “그 꽃을 보면 고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원추리꽃처럼 고상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 험난하게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백합을 닮은 원추리꽃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일부 종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화사한 모양새를 갖고 있지만 강건한 면모를 가진 꽃, 원추리꽃은 굳건히 삶을 살아오며 예술가의 꿈을 잃지 않은 오순해 작가의 삶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오순해 작가 모습.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오순해 작가 모습.

오순해 작가는 복지관 덕분에 그림책을 낸 작가도 돼보고 꿈을 이뤄갈 수 있어서 그저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책을 만들며 너무 즐겁고 행복했지. 서로 옛날 얘기도 나누고 위로할 수 있었어요. 이 나이에 이런(책을 출판하는) 일을 어떻게 해보겠어요. 근처에 좋은 복지관이 있어서 참 행복하지 참 보람찼고 고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꿈을 갖고 있을 거예요. 늦었다고,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으면 해요.”

‘꽃꿈할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정겹고 솔직한 내용에 왠지 모를 따스함과 감동이 느껴졌다. 화려한 기법과 도구를 사용한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여성 작가들의 옛날 그 시대의 삶과 감수성을 본인들만의 표현방법으로 그려낸 이 그림책 또한 보는 이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오순해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만의 작품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샘솟는다. 묵혀뒀던 메모장을 꺼내 스케치를 해보려 한다.

‘꽃꿈할매’ 그림책은 청주서부종합사회복지관 홈페이지 포토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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