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됐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위기의 시대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풀꿈재단과 함께 1주일에 1회씩 매주 ‘풀꿈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풀꿈칼럼 : 코로나로 생각해보는 지구사용법

글 : Artist 2창수

코로나 19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움직임을 줄이고 있다.

지출비용을 쓰지 않으면 경제가 순환이 안돼 경제의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돈을 주어서라도 순환되도록 하려 한다.

이렇게 꾸준히 쓸모없는 지출까지도 해오던 습관은 지구의 자원을 아낌없이 쓰게 만들었다. 집안 곳곳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고 그런 물건을 수납하기 위해 더 크고 더욱더 큰집으로 계속해서 옮겨가며 살게 된 것이다.

사계절이 영향을 끼치는 기후라 다양한 계절에 맞는 옷과 음식이 필요하겠지만 집집마다 가득한 문명의 첨단제품은 백화점 진열대처럼 다채롭다.

음식도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양쪽 문이 열리는 냉장고의 크기도 못 미더워 김치만을 넣거나 냉동만 가능한 냉장고를 별도로 두어 전쟁이 나도 1달은 음식 걱정 없도록 집에 재어두었다.

곧 극복되어 우리 기억에서 사라질 듯했던 코로나 19는 2021년에도 지구 곳곳의 인류 활동을 위축시킨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위축된 인간들 덕분에 지구는 놀라운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인도 북부 히말리아산에서 150km 떨어진 마을에서 30년 만에 맨눈으로 바라본 히말리아 산맥, 돌고래와 해파리가 떠다니는 베네치아 수로의 모습을 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지구를 괴롭혔고 오염시켜 온지를 알 수 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의 지침에 따라 공장을 멈추게 하였고 자동차 운행도 중단시켰다고 한다.

뉴델리의 대기 오염은 44%가 줄었다. 인도 전역의 대기 질도 80% 이상 좋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봄마다 찾아오는 황사나 미세먼지의 재난이 거의 없고 가을과 같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분명 원래 있었던 우리의 자연이었는데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 구입과 소비하느라 잊고 지내왔던 자연의 모습이다.

올봄엔 황사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고 황사 이야기도 없었다. 물론 마스크 덕분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억에서 2021년 황사는 별로 없었다.

이렇게 지구가 깨끗해지는 것을 경험하니, 지구의 생존을 위해 지구를 괴롭히는 인류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구를 어떻게 아껴가며 사용할까에 대한 노력은 지역적이어서는 안된다.

더욱 넓은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진보와 생존에 필요한 곳은 아직 지구가 유일하므로 자원을 보다 아껴 사용하여 후대도 사용 가능한 지구를 남겨주어야 한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의 상원의원인 게이로 닐슨과 하버드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에가 지구의 날을 선포하였다.

1969년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에서의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에 대해 경고를 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한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인류 개인의 생활문화 개선을 제안하는 이 행사는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매년 4월 22일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 행사를 통해 의식적인 동참을 끌어낸다. 실제 10분의 소등 행사를 통해 20만3천 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산다면 더 빨리 성공할 수 있겠지만 함께 하는 법을 찾기 어렵다.

이번 코로나19사태는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갖게 해주었고 남을 생각해보는 인류애를 느끼게 해준 재난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대규모 재난이 계속 생기겠지만 인류는 이렇게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며 진화한다.

 

지구에 있는 물건으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방법이 가능할까?

 

이런 주제의 전시를 수십 년도 더 된 나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다.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환경을 인간의 관점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분명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을 알았던 순간의 경이로움이 기억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환경의 대재앙이 곧 밀려올 것이라는 공포는 세계의 다양한 징조로 나타난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흐르는 강물의 양의 증가와 빙벽의 무너짐은 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결과물이라고 한다.

자주 보게 된 빙벽 붕괴는 이제 별다른 경각심을 주지도 못할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듯 위기의 감각은 쉽게 무뎌진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유조선이 바다를 떠다니고 있고 떠다니는 유조선만큼 지구에 빨대를 꼽고 석유를 뽑아내고 있다.

땅을 넘어서 바다에서까지 석유를 시추하는 모습이 오히려 에너지 강국의 이미지로 세탁되어 한 국가의 자랑스러운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이와 다르게 바다에 버려진 석유 찌꺼기로 인해 고통받는 갈매기와 바다 인근에 서식 동물의 모습은 환경오염의 극한 상황을 보여준다.

같은 물건의 사용방법에 따라 이렇듯 희망의 모습이나 절망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대비는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상징이다.

플라스틱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되었다.

원하는 대로 주물러서 만든다는 이 뜻은 석유로 만들어진 원료 알갱이 분자들을 서로 연결하여 고분자로 구성되면 분자의 종류와 결합방법을 통해 다양한 플라스틱으로 조직이 변화된다. 다양하고 편안한 방법의 이 플라스틱의 개발은 생각보다 어이없는 단순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

1860년대 미국 상류층에서 당시 당구가 유행했다.

당구공의 주재료인 코끼리 상아는 가격도 비쌌지만, 수요를 충당할 방법이 힘들어지자 새로운 당구공의 소재개발에 힘썼다.

당시 1만 달러(현재 2억 원)라는 상금을 걸고 공모를 했는데 당구공의 대체로 유리,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가 나왔지만, 견고성이나 대량 상용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때 개발된 셀룰로이드는 플라스틱 초기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개발된 플라스틱은 다양한 물건 만드는 재료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견고함은 장점을 넘어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까지 진행되었다.

 

오래 살기로 유명한 거북이는 그냥 보고있어도 무언가 부러움을 주는 동물인데 바다거북의 코에 박혀있는 플라스틱 빨대의 모습을 보고 바다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맥주 꾸러미를 엮는 플라스틱 비닐 팩을 몸에 두른 물개의 모습도 자연 생태계와 어울리지 않고 미안스러운 감정을 갖게 하였다.

처음 질문처럼 지구를 오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오염됨으로써 지구가 힘들어졌다기보다 지구를 사용하던 인류가 더 불편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과소비로 별다른 목적 없이 옆에 있던 물고기, 조개, 다양한 생물들이 피해를 공유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플라스틱의 발달로 인류가 더욱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다.

나무나 유리그릇이 아닌 쉽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용기로 우리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분해가 어렵다.

이전 플라스틱의 장점인 견고성이 오히려 수많은 쓰레기 문제를 해결 못하는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단점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핍이 있어야 욕구를 갖는다.

결핍은 목적이 있으면 생기는 것으로 목적을 세우는 것은 결핍의 시작이다.

누구와 물고기를 잡는 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이에게 잡은 물고기를 편히 가져다준다면 결국 아이는 물고기 잡는 법을 모르며 누군가 물고기를 주지 않았을 때 물고기에 대한 욕구도 상실된다.

욕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기준점으로 서서히 생겨난다.

물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낚싯대의 품질은 중요치 않으며 낚시꾼들의 거대 물고기 사냥에 대한 무용담도 대수롭지 않다.

자신이 적은 일이라도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욕구도 생기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결핍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욕구가 발생하기 전 관심조차 주지 않고 더욱 쉽게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한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면 똑똑한 이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잡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더욱 많이, 더욱 넓게 바다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수확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쌍끌이 저인망 어선으로 바닷속을 샅샅이 훑으며 온갖 물고기를 남김없이 쓸어 담는다.

이렇게 물고기 잡는 법을 발전시켜 더욱 거대해진 배로 먼 바다부터 물고기를 잡아 올려 연안에는 물고기가 줄어드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자연을 극단적으로 착취하려는 이런 방식은 다양한 부수적 과학발전을 이루지만 결국 남에게 보이지 않는 피해를 넘긴다. 자연 역시 생태계의 혼란이 가중되며 아주 빠르게 황폐화된다.

결핍은 생존과 욕구에 대한 개인 갈증에서 시작되지만, 결핍이 사회적 결핍이 되었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량의 사회 욕구가 수반되며 자연 생태계가 가진 복원력은 파괴되기 쉽다. 그러므로 결핍에 대한 해결은 자연의 근본적 이치를 깨닫고 결핍이 왜 생겨났는가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배를 만들어주면 배를 갖지만, 배를 만드는 기술을 갖게 하면 배를 만든다.

그러나 바다를 꿈꾸게 하면 배를 만들지만, 더욱 넓은 바다를 생각하며 자신의 욕구에 충족한 배를 만든다. 낚시도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닌 바다를 꿈꾸게 하였다면 오늘처럼 물고기의 씨가 마를 걱정으로 치어를 키워 방류하는 수고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과거 생존의 시대에서는 널려있는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내가 선점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남이 사용하여 남의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남이 사용하기 전 기회가 된다면 내가 있는 힘껏 모든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는 곧 ‘지속불가능한 발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형태였다. 에너지 자원을 포함해 지구의 물질적 자원은 현재의 기술로는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에너지 기술은 그 구조적 한계로 수년 내에 소진될 것이라는 여러 연구는 이미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생태계를 파괴하는 과소비를 지양하고 인류가 아닌 다양한 동식물의 생존환경도 보전하여야 한다.

인류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개인의 결핍을 개인 차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나 외의 모든 것에 대한 결핍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결핍은 욕구를 부르는 삶의 성공을 위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만, 이성 없는 결핍은 모든 이를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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