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됐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위기의 시대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풀꿈재단과 함께 1주일에 1회씩 매주 ‘풀꿈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자연의 권리를 생각한다

글 : 허석렬(풀꿈환경재단 이사)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몸과 인격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주었으니 어떤 타인이나 집단도 이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이 권리를 양도할 수도 없다.”

유럽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확립된 '천부인권'에 대한 개념은 그 후 더욱 확대되어 이른바 다양한 사회권을 포함하게 됐다.

인종, 국적, 성별, 종교나 정치적 신념, 성적 취향, 장애의 유무 등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이런 인권이 있다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생각은 우리 인류가 지구 위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철학적, 과학적인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 세계관에 기초하여 1948년 국제연합은 '인권에 관한 보편적 선언'을 공포했다.

이는 국제법적 지위를 가지고 이 선언에 참가한 회원국들의 헌법과 법률은 이 인권선언을 반영하게 됐다.

그런데 과연 인간만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유럽인들은 항해술과 살상무기의 우위를 이용하여 다른 문화권을 정복하고 그 땅을 식민화하며 그들의 세계관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그들의 지배적 종교인 기독교에서는 인간중심주의가 종교적 교리로 됐다.

구약성서 첫 부분인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온 세상을 다 창조하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흙을 빚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담을 창조하면서 자신이 창조한 모든 자연은 다 아담, 즉 인간을 위한 것이니 정복하고 번성하라고 명한다.

이 세계관에서는 자연은 인간이 정복할 대상에 불과하다.

즉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원'일 뿐이다. 물론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수사처럼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설파한 종교인들도 있었다. 서구 기독교적 전통에서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사실 이런 세계관은 서구인들이 정복하고 파괴했던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생각이었다.

2020년 11월 1년 간의 망명 끝에 귀국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볼리비아 코차밤바주 치모레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향해 전통 깃발을 흔고 있다. 코차밤바주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정치 경력을 시작한 곳이다.
2020년 11월 1년 간의 망명 끝에 귀국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볼리비아 코차밤바주 치모레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향해 전통 깃발을 흔고 있다. 코차밤바주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정치 경력을 시작한 곳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발전된 불교나 힌두교, 그리고 도교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세계 속에서 결코 특권적 위치를 가진 존재가 아니었고 다른 생명체를 포함한 자연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유기적으로 엮인 한 부분에 불과하다.

서양문명의 패권 속에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변혁시켜 인간-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인간은 자연을 자원으로만 파악하고 끝없이 착취하고 파괴했다.

20세기 말부터 그 후과가 점점 드러나게 되었고 이제 자연을 파괴한 인류 자신의 생존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으며 그 인류적 위기는 점점 가속되고 있다.

인류 생존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지구 생태계의 건강성에 인류 생존이 달려 있다는 세계관의 전환이 시작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 비서구 지역에 존재했던 세계관의 복원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과 자연이 지구 생태계에서 같은 공동체를 이룬다는 철학적 전환이 일어났다.

자연의 권리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모든 인간이 생존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자연 또한 파괴되지 않고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겨난 자연의 일부였다. 그러나 지성을 갖춘 인간은 점차 자신의 모태인 자연을 대상화하고 자연과 대립하게 됐다.

이런 과정의 극한점에 이르자 전 지구적 환경위기가 발생하게 되었고 자연은 인간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다시 인류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자연이 인간의 동반자라면 자연 또한 파괴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인권이 철학적, 정치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법을 통해 구체화되어 시민의 강제적 규범이 되듯이 자연의 권리 역시 법제화에 대한 시도가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20세기 후반기부터 많은 생태학자들은 가이아 가설을 제창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이아는 땅의 여신이다. 많은 고대인들은 지모신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대인들의 삶의 경험에서 얻어진 신앙형태로 그들에게 식량과 다른 생활자료를 제공하는 땅을 신격으로 숭배함은 당연한 일이다.

생태학자들은 이 지모신 신앙을 지구 생태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 즉 초 유기체로 간주하는 가이아 가설로 재현했다.

우리 몸의 한 부분이 고장나면 우리 몸 전체가 망가지듯, 가이아로 불리는 지구생태계의 한 부분이 망가지면 인간계를 포함한 지구생태계 전체가 교란되고 망가지게 된다.

가이아 가설은 생태학의 한 패러다임에 그쳤지만 21세기가 되자 서구 문명에 의해 파괴된 아메리카 대륙이나 뉴질랜드, 시베리아 등의 선주민들의 관습법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자연권 사상이 발굴되고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의 문화사학자인 토머스 베리는 북 아메리카 선주민의 관습법을 연구하면서 땅의 법학(Earth jurisprudence)이라고 불리는 선주민들의 법 관념을 소개했다.

즉 지구의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고유한 권리를 가진다는 법적 관념을 땅의 법학이라고 부르면서 이를 현대적 법철학에 도입할 것을 주창했다.

현대 법철학자들이나 많은 법학자들은 인권법과 마찬가지로 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세계관이 힘을 얻으려면 그 세계관을 실현할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

 

자연의 권리라는 생각이 세상 사람들의 관념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구체적 계기는 선진국의 환경운동에서 발생하기보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선주민 운동에서 촉발되어 전 세계 환경운동에 큰 자극을 줬다.

라틴 아메리카는 식민주의와 뒤이은 제국주의에 의해 선주민 문화가 철저히 파괴됐고 20세기 말엽부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민중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지역이다.

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지금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탈식민주의, 탈 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적 사회변혁의 길에 접어들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삼국에서 이 과정은 매우 전형적인 모습을 띠며 나타났다.

세 나라 모두 기존의 식민주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참여민주주의와 사회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한 헌법을 새로 공표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단계의 자본주의가 초래한 지구생태계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헌법에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을 강화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나라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인데, 이들 나라들은 안데스라는 자연환경과 잉카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잉카제국 사람들은 '파차마마'라고 불리는 지모신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파차마마는 어머니 땅이라는 뜻이라 한다.

인간을 태어나게 하고 양육하는 모성을 지닌 파차(땅)는 자기 자식인 인간이 자신을 해치면서 나쁜 짓을 하여도 슬퍼할 뿐 보복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러한 어머니를 해치면서 결국 자신마저 해치게 된다. 이제 자식인 인간은 파차마마의 따뜻한 품을 깨닫고 파차마마를 해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아이마라 선주민 출신의 코카농민으로 농민운동을 이끌던 에보 모랄레스가 2005년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선주민의 인구가 전인구의 50%가 넘는 나라다.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으로 이루어진 볼리비아 선주민은 잉카의 후예로서 스페인 식민자들에 의해 노예화됐다. 고원지대로 쫓겨난 아픈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고원에서 재배할 수 있는 코카나무에 그들의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볼리비아를 통치하면서 선주민 농민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다른 시민들의 삶도 크게 파괴됐다.

코차밤바의 물 투쟁은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인용된다.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의 선봉에 섰던 에보 모랄레스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다음 헌법제정의회를 소집하여 새로운 볼리비아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선언이 들어갔으며 2010년 '파차마마(어머니 땅, 자연)의 권리에 관한 법'을 이 선언에 기초하여 제정하였다.

그 후 2012년, '어머니 땅의 권리와 참살림(Vivir bien)의 통합적 개발 법'을 제정했다.

스페인어인 '비비르 비엔'은 잉카 선주민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말로써 '파차마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의롭게 산다'는 뜻이라 한다.

이 법은 어머니 땅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벌칙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자연의 권리를 입법화하려는 시도는 볼리비아만이 아니라 에콰도르, 멕시코, 뉴질랜드 등 세계 여러나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환경운동도 이제 자연의 권리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채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허석렬 전 충북대교수
허석렬 전 충북대교수

 

백두대간 보전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대야산 석산개발 과정에서 석재채취업자들의 횡포와 그를 비호하는 법원의 결정을 보면서 만약 자연의 권리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구체적 입법이 있었다면 대야산 줄기가 그토록 끔찍하게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자연을 인간의 착취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존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동반자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과 법철학적 전환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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