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됐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위기의 시대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풀꿈재단과 함께 2주일에 1회씩 매주 ‘풀꿈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어서 와! ‘활동가’는 처음이지?

글 : 최정민 풀꿈환경재단 사무국장

 

“저는 환경에 관심이 없습니다.”

충북 도내 모 초록학교 지원을 위해 방문했던 학교의 선생님께서 지원단을 보자마자 건네신 첫마디였다.

새로 발령 받은 학교에서 아무도 맡지 않아 본인에게 떨어진 업무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폭탄 발언에 학교 관리자 분들은 담당 선생님의 말을 수습하려 애썼다. 지원단은 안타까움과 허탈감을 동시에 느꼈던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르르...

함께 다녀온 지원단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거나, 다독일 수 없을 정도로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기억은 입사 당시의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시민단체가 지향하고자 하는 일, 또 그 일을 현실화 시키고 자 그들이 쏟아부은 에너지의 결과물을 누리며 살던 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입사한 풀꿈환경재단은 그해부터 우연인지 필연인지 심각하고 위급한 환경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때마침 충청북도교육청과 충북도내 환경시민단체는 지속가능한 생태순환형 학교를 만들고자 2017년부터 초록학교만들기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풀꿈환경재단은 2018년 시범사업을 거쳐 현재는 충북도내 75개 학교와 실천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타 지역보다 진일보한 녹색전환교육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초록학교를 볼 때마다 사업 담당자로서 부끄러움이 한 숟가락 가미된 자랑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 아니었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무수한 시행착오에 동요되었으며, 정돈되지 못한 감정의 요동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했던 그때는 정말이지...

초록학교만들기 사업을 맡았을 당시 나는 신념, 지향점, 당위성, 가치관의 방향 등에 대한 고민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닥쳐오는 일 처리와 갑자기 떨어진 책임감이라는 중압감에 머리가 상당히 아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할 것 같은 그 때, 주변에서 나를 ‘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에 상당히 기민하게 반응했고 경계했다.

활동가의 사전적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녹색전환교육과 녹색생활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는 책무 따위에 가볍게 안녕을 고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귀찮음과 편리함에 굴복되어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일상생활의 부끄러움은 살짝 눈 감아 외면하면서 초록학교의 대상자(학생, 교직원 등)들에게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괴리감의 간극에서 비롯된 심적 부담은 빠르게 임계점 향하고 있었다.

무력감으로 위태로웠던 감정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초록학교를 충북도내 전역으로 확산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첫 해는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초록학교 담당선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좌충우돌 실수 연발에도 인내심으로 기다려주고 다독여주었던 기획단 위원들, 주변의 활동가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그러한 관심과 응원은 서서히 임계점을 극복하려 애쓰게 만들었고, 그동안 부정하고 외면했던 활동가의 의미를 이해해보려는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전환점의 계기도 제공해줬다.

물론 이 감정도 찰나는 아니었다.

 

나 하나 변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당시의 어리석었던 부정적 의심들이 생각날 때마다 상당한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돌이켜보면 이런 나를 입사 때부터 전담으로 일을 가르쳐주었던 선임 활동가의 답답했던 심정이 눈에 그려진다.

‘저는 활동가가 아닙니다’라고 못박듯이 말하는 내게,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활동가’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객관도 주관도 결여된 대답을 들은 선임 활동가는 얼마나 어이없고 답답했을까?

모 선생님께 상처받았던 일 말고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며 상처받은 감정에 빠져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격려는커녕 오히려 힘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여기저기 한탄을 하며 속상해 했던 때가 있었다.

겨우 그 정도의 일을 겪고 말이다. 많은 뜻이 내포되어있는 공동의 안락한 삶을 위한 선임 활동가들의 권리 주장은 사적 이익을 위해 생성되는 이기적인 자기합리화의 사람들과 대척하기도 한다.

때론 추악하기도 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선임 활동가들은 얼마나 허탈하고 속상했을까?

오랜 세월 보장된 대가가 없는 선임 활동가들의 투쟁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지 희생은 아니라는 왜곡과 그들을 폄하하려는 억측이 난무한 상황이 억울했을 그 시절을 어찌 극복했을까?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의 수고스러움에 감사해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활동가의 모습을 100% 이해할 수 없으며,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의 대단한 업적만큼 잘 해낼 자신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는 어설픈 핑계로 정리되어지면 좋으련만...

나에게 내상을 주었던 그 선생님은 2021년 현재 여전히 초록학교 담당교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자체 프로그램까지 개발하며 열성적인 실천활동을 펼치고 계신다.

그 선생님이외에도 많은 선생님들의 인식변화를 지근 거리에서 지켜본 나는 그분들로 하여금 나의 책무에 대한 무게감을 재확인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그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는 자신과의 암묵적인 합의가 나의 내적 갈등의 끝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줬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시일에 있었던 일화를 말하자면, 재미없는 환경교육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위해 사회환경강사들과 교구를 직접 제작하고, 이를 순회교육으로 연결하기까지는 꼬박 2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기존 상품을 활용하면 쉽게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을 강사들과 지난한 회의 과정을 거쳐 직접 아이디어를 뽑아 제작하고, 환경교육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생각전환을 위한 강의 교안과 장기간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소통의 불협화음까지...

최정민 풀꿈환경재단 사무국장
최정민 풀꿈환경재단 사무국장

 

정말이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힘든 작업의 마무리로 ‘내년에는 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불과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포털에서 우연히 본 환경관련 이야기를 내년 교구 제작할 때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시나브로 활동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

‘활동가’의 의미를 살펴보면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모두에게 100% 동의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연스레 스며드는 당위성, 관점, 가치관 등을 강제하면 반항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강요를 받지 않았지만, 의례 갖추어야 할 덕목처럼 환경의 보전과 보호를 위한 사고가 내제된 활동가가 초록학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짓누르던 그 당시 나의 마음이 그러했다.

뾰족했던 초창기에 비해 ‘활동가’란 단어가 주는 부담감과 어색함이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는 활동가로서의 초보딱지를 떼고 전진해야 하는 의무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만큼만 오롯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선임 활동가들처럼 열성적으로 투쟁하는 것만이 활동가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역량과 정성을 쏟으면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다. 맨 땅에 헤딩하듯 사업을 추진할 때 나와 함께했던 초록학교 선생님들도 활동가라 하고 싶다. 활동가는 엄청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1일 개최되었던 전국환경교육포럼에서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은 업그레이드 환경교육정책 ‘초록학교 3.0’을 선포했다.

충북도내를 거쳐 전국, 더 넓게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환경공동체 네트워크가 형성을 목표로 ‘초록학교 3.0’을 추진하고자 한다.

현재 국제사회는 본격적인 녹색전환 시대 추진을 앞두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비전 선언’을 하는 등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충북도내 75개 초록학교도 학교 자체적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 여러 고민들을 시작했다.

어렵지 않은 활동가로서의 귀한 첫 걸음으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힘 쏟으실 초보 활동가 어디에 숨어 계신지?

함께하면 으샤 으샤 추진동력도 생기기도 하고 더불어 동질감도 생길 것이다.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보람과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넘겨주어할 지구가 깨끗해질 수 있도록 동참하는 활동 끝에는 견고한 가치관도 발현되지 않을까?

전력질주 해야 하는 단거리가 아닌 변화무쌍하게 숨 고르기가 가능한 마라톤을 함께 뛸 동료가 속속들이 나타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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