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고위직은 물론 일부 중하위직도 골프 붐

대전시 건설공무원들의 억대 뇌물수수사건이 피의자 자살과 잇따른 사법처리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수사가 해외원정 골프에 대한 제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직자들의 골프문화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계룡건설 등 8개 건설사로부터 월급형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주 모씨와 김 모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 모씨 등 3인방은 모두 충북 증평군의 모 고등학교 출신으로, 대전시 건설본부와 충남도 종합건설사무소 등에서 기술직공무원으로 일하면서 2001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억40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전시 건설직 공무원들이 ‘만골회’, ‘공토회’ 등 사조직을 결성해 놓고 집단적으로 골프접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구속된 주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2003년부터 11차례에 걸쳐 해외 원정 골프를 쳤으며, 국내 골프장에서도 60여차례나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공무원이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아니라 골프가 로비와 이에 상응하는 대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골프장을 드나든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부정축재 혐의 수사가 이뤄졌고, 김영삼 정부 시절 공무원들에게 골프장 금족령을 내린 적도 있지만 이미 골프는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귀족스포츠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벗어던진지 오래다.

더욱이 1998년 박세리선수의 LPGA 메이서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한국의 낭자군이 미 LPGA 무대를 휩쓸면서 골프는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국위선양에도 기여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대전시 공무원들은 이른바 ‘턴키 발주평갗를 하는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주겠다’며 건설업체로부터 돈을 챙겨왔고, 업체들은 6급인 이들을 상전 모시 듯 하며 골프를 접대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관 이상만 돼도 떳떳이 즐긴다
도내에서도 일부 공무원들이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골프를 즐기는 것은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무관 이상만 돼도 ‘쉬쉬’하면서 골프를 치지 않는다. 한담의 소재로 골프가 등장하는 경우도 잦다.

공무원들의 골프입문은 국방대학원 교육이나 중앙단위 교육연수 등이 계기가 되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골프를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 필요에 의해 골프를 배우기도 한다.

중앙단위 교육연수에 입소하게 되면 현업을 떠나 심적부담이 적고, 눈치 볼 일도 없는데다 연수를 받는 동기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도 자연스레 골프채를 잡게 된다. 이 때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연수를 계기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경우도 있다. 충북도 공무원인 W국장과 K국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

도청 P국장과 퇴임한 K 부군수 등은 공직생활 틈틈이 실력을 갈고 닦아 이븐파 수준의 프로급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이원종지사, 골프도 도지사급
충북도의 수장인 이원종지사는 골프도 도지사 수준이다. 베스트 기록은 이븐파에 가까운 75타, 평소에도 80타 중반은 너끈한 편이다. 64세라는 연령을 고려할 때 수준급에 속한다. 이 지사의 골프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로 최근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필드에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공무원 A씨는 “예전과 달리 휴일에는 지사님이 혼자 움직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얼마나 자주 골프를 치는지 알 수 없다”면서 “가까운 거리는 직접 운전을 하거나 사모님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A씨는 또 함께 골프를 치는 멤버들에 대해서도 “사생활인 만큼 알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언론사 대표인 P씨, 기업인 L씨, J씨 등이 함께 자주 필드에 나가는 멤버들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지사는 또 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골프대회를 여는 등 골프를 정치(?)의 도구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옷 벗고 실컷 골프나 쳐라
공직자에 대한 ‘골프장 금족령’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얘기지만, 골프장 곳곳에는 하루아침에 감투를 벗게 만드는 ‘벙커(?)’가 산재해 있다.

2002년 9월 전국에 수해가 났을 때 충북지방경찰청장이었던 K치안감이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가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직위해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K치안감은 평일이 아닌 휴일에 골프를 쳤음에도 여론의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이원종지사와 한대수 청주시장도 8월20일 한나라당 당직자 30여명과 함께 단양 오스타CC에서 골프를 친 뒤 성금 200만원을 모아 복지시설에 전달했다가 선관위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상황이 이렇자 휴일 날씨가 심상치 않은데 도지사 관사가 비었을 경우 보좌진들은 골프장부터 뒤진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다.  지역의 예는 아니지만 이해찬 국무총리도 골프로 인해 여러차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강원도 양양 산불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지난 식목일에 골프를 쳤다가 호된 질책에 직면했지만 비슷한 상황이 여러차례 반복된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남자답게 공직에서 물러나 실컷 골프나 치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시·군, 일부 중·하위직 숨어서 골프
대전시청 건설직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비리가 드러나면서 도내 공직사회도 불똥이 튈까 염려하며 ‘복지부동’하는 분위기다. 특히 각종 인허가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도시계획 및 건축, 토목 등의 부서는 그 강도가 더 하다. 물론 자신만 떳떳하면 그만이지만 유난히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도 있다.

시·군의 6급 이하 공무원 가운데 일부가 골프를 친다는 것도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실제로 모 시·군의 공무원 B씨는 인허가 관련 특혜 시비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업자에게 돈을 받아) 데리고 있는 직원들에게 술 좀 사주고 친구랑 골프 친 것까지 문제 삼으면 할 말이 없다”며 항변하기도 했다.

일부 공무원들의 경우 업체 관계자와 ‘호형호제’하거나 나이가 같을 경우 친구관계를 맺고 가까이 지내기도 하지만 들여다 보면 ‘기브 엔 테이크’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계산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

해외가 1순위, 2순위는 타 시·도
골프는 아직도 요정문화 만큼이나 은밀하다. 골프를 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다기 보다는 누구와 골프를 치느냐를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접대를 주고 받는 경우에는 작전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고 중·하위직 공무원이 필드에서 상급자와 마주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대전의 경우에서도 드러나 듯이 해외원정이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골프를 치더라도 타 시·도의 골프장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밖에도 신분 은폐를 위해 골프장 예약 시에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래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골프장의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공직자들의 라운딩 여부를 알아내기 어렵다.

골프를 치지 않는 공무원 C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골프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직 골프채를 잡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단체장이 아닌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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