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정치권의 움직임은 곧바로 지방정가로 파급된다. 지난번 재보궐선거가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난 후 지역 정계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표면상으로는 일상(日常) 같아 보이면서도 안으론 비상(非常)의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정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분위기를 아주 ‘긴장된 정중동(靜中動)’의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결론은 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정계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조만간 ‘지각변동’이 일 것이라고 내다볼 정도다. 정치는 민심을 먹고 사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이 지금 지방 정계에서도 실감난다. DJ 임기말의 정국혼돈과 재보선 결과로 인해 민심축의 이동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자치단체장의 당적문제에서 우선 감지된다.

민심축 이동현상 두드러져
지난달 31일 이원종지사는 청주를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를 각별히(?) 영접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향배와 관련해 많은 얘기를 만들어 냈다. 이총재와 이지사가 공적으로 얼굴을 맞댄건 지난 8월 10일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야당 총재에 대한 파격적인 업무보고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8월 10일의 만남과 10월 31일의 대면은 성사과정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첫 번째는 실무선이 배제된채 철저하게 당사자를 포함한 윗선에서 전격적으로 조율한 자리였고, 두 번째는 윗선이 아닌 실무선에서 전력투구해 가까스로 성사시킨 자리였다.
당초 한나라당 총재실은 이총재와 이지사의 만남을 꺼렸다. 이총재가 틀에 박힌 브리핑이나 행사보다는 민생탐방을 원한 것도 한가지 이유지만 지난 97년 대선 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지사에 대한 이총재의 ‘배신감’이 아직도 두 사람 사이의 간극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선 패배의 쓰라림을 곱씹던 이총재의 입장에선 충북의 선대위원장까지 맡았던 이지사의 탈당은 쉽게 잊혀질 사안이 아니다. 때문에 이총재와 이지사의 두 번째 ‘악수’는 처음엔 계획조차 없었다. 그러나 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업무보고를 표면으로 띄운 후 한나라당 도지부가 여지를 만들어 주고 엑스포 조직위의 한범덕 사무총장이 이지사에게 적극 다리를 놓음으로써 비로소 둘간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이같은 전후과정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 당의 입장에선 일단 운을 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복선을 깔았다. 결국 이 말은 이원종 지사의 한나라당 영입문제를 시사하는 것이다.

둘간의 간극은 아직도 남아
이회창총재와 이원종지사의 이날 만남을 놓고 지역의 일부 언론이 이지사의 행보에 초점을 맞춰 ‘양측간에 모종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보도를 내자 이지사 소속정당인 자민련이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지사측은 비서실 등을 통해 “제 1야당의 총재한테 도정협조를 바라고 또 예우차원에서 나갔던 것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지사의 당적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호사가들의 안주거리였다. 지역에서 자민련의 정당 지지도가 빈사상태에 빠진데다 여권공조 파기 이후 당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지사 개인은 자신의 당적문제에 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 탈당과 자민련 입당(98년 3월)으로 이미 때만되면 철새의 굴레가 씌워지는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설혹 주변으로부터 당적 관련 질문을 받게 되면 이지사는 대개 “행정가로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 정치적인 문제엔 관심없다”며 예봉을 피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선 주변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당총재 영접은 “예우 차원”
이지사의 측근 인사 몇몇이 이지사의 한나라당 입당문제를 적극 거론하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이지사의 의중과는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정국동향과 연계돼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얼마전엔 지역의 대표적 인사와 언론계 중진이 한나라당 이부영부총재를 만나 한나라당에서 이지사를 끌어 줄 것을 강력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 또한 큰 의문으로 남는다. 한 관계자는 “이지사의 한나라당 입당문제는 너무 조심스런 사안이기 때문에 일단 개연성만을 전제로 분위기를 알아보는 정도이지 아직 구체적 감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이 문제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나오기 때문에도 그렇다”고 밝혔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결렬 이후로는 이지사의 민주당 영입 가능성에 대해선 거의 거론조차 안 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사견임을 내세워 “민주당에 대한 최근의 민심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지사가 민주당으로 옮긴다는 것은 모험이 아니겠냐. 개인 생각으론 이지사가 현 자민련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게 떳떳하겠지만 선거가 정당구도로 치러질 땐 어차피 당적문제로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종지사는 그동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타 후보군과 비교, 절대적으로 앞선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현재로선 이대로 간다해도 당선권이라는 확신감을 가지고 있을 테고, 때문에 당적과 관련해선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선 만약 이지사가 자민련을 탈당, 다른 당으로 옮긴다면 그 시기는 신당 창당 등과 맞물려 정국이 어수선해질(?) 때가 적기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덕현기자


시장·군수도 요즘 잠자리가 편치 않다 몇몇은 이미 한나라당 “노크”
이원종지사 뿐만 아니라 도내 시장 군수들의 당적문제도 메가톤급 관심사다.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정당 분포를 보면 나기정청주시장 유봉열옥천군수 이건표단양군수 등 3명이 민주당, 권희필제천시장과 김경회진천군수 김문배괴산군수 정상헌음성군수 박완진영동군수 등 5명이 자민련 소속이고 나머지는 무소속이다. 과연 이들중 누가 한나라당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이미 설왕설래다. 며칠전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은 “오는 연말께 충청권 기초자치단체장 상당수가 우리당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해 타당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지역 정당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시종충주시장과 김종철보은군수 이건표단양군수 박완진영동군수 등이 친 한나라당계로 분류된다. 물론 이같은 추정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이중 몇몇은 당의 공조직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해 비밀리에 ‘러브 콜’을 건넸다. 이시종 충주시장은 지난해 총선 때부터 한나라당 입당이 줄곧 점쳐졌기 때문에 당에선 언제든지 영입가능한 대상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충주지구당 위원장 한창희씨와의 걸끄러운 관계 때문에 만약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순탄치만은 않을 조짐이다. 중앙당의 교통정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종철보은군수는 국회 심규철의원을 통해 입당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표단양군수는 지난 7월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구인사 방문에 맞춰 군정보고를 준비했다가 이총재의 일정이 빡빡해 무산된 적도 있다. 한 때 선거법위반으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민주당의 고위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향후 운신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국회의원 통해 의사타진
자민련 소속인 김경회진천군수와 정상헌 음성군수, 그리고 김문배괴산군수 등은 이원종지사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할 것이라는 게 지역정가의 다수 의견이다. 이들과 관련해선 이미 ‘패키지 설’까지 나돌고 있다. 움직여도 같이 움직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들 자민련 자치단체장들은 지난달 8일 JP와의 청주 만찬에서 의형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김문배괴산군수는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인 김종호 자민련 상임고문과의 관계 때문에도 처신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설령 시장·군수가 우리당에 입당한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개별입당은 여건상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충북도의회 의원들의 요즘 행보도 심상치 않다. 10월 31일 이총재의 청주방문 땐 무려 13명의 도의원이 행사장에 나타나거나 그를 수행했다. 도의원들의 정당분포는 민주당 3명(박학래 심흥섭 조평희), 한나라당 4명(유주열 황태모 조영재 최종록), 자민련이 3명(이근성 오장세 임봉빈)이고 나머지 15명은 무소속이다. 이들 도의원중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 기초자치단체장이나 광역의원 공천을 조건으로 한나라당 입당을 타진하는 인사도 있다. 지역 정계에선 김진호의장과 김준석 김소정 박종기 한현태 신대식 권영관 박노철의원 등을 한나라당 입당 가능 인물로 점치고 있다. 모 의원은 “속 마음은 이미 결정됐고 시기만을 보고 있다. 아마 개별 차원이 아닌 무더기 입당이 될 것이다. 일부는 차기 자치단체장 출마자들과도 연대를 모색해 놓고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마 재미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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