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65)씨의 ‘퍼스트 레이디 모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다. 한씨는 “단아하고 자애로운 육 여사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닮고 싶다”며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으로 육영수 여사를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분은 부드러움으로 카리스마적인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중화시켰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엄숙하고 딱딱하다’는 이 후보의 이미지를 보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한인옥씨는 언젠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하는 ‘퍼스트 레이디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원하는 퍼스트 레이디상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내조하면서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살펴주는 것이다. 안에서 마음이 편해야 바깥에나 나가서도 일을 잘 보게 되는 것은 대통령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가장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법조가문에서 태어나
법조가문으로 시집오다
이회창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까지 한씨는 30여년을 ‘법관의 부인’으로 살아왔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유명한 법조집안 출신이다. 시댁과 친정 모두 ‘법조가문’이다. 그의 아버지인 한성수씨는 대법관을 지냈고 그의 첫째 남동생인 한대현씨도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있다. 시아버지인 이홍규옹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검찰서기를 지내다 해방 이후 검사를 지냈다.
법조가문에서 태어나 법조가문으로 시집온 그는 “남편을 위하고 자식들을 잘 기르는 ‘어진 아내’가 되는 것”과 “법관의 아내로서 처신을 잘 하는 것”을 자신의 ‘내조상’으로 삼아왔다. 그는 특히 ‘법관 부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그것은 내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며 “평생을 법관의 아내로 살아온 친정어머니의 사는 모습이 내 가슴에 각인되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만 그는 대법관 출신인 이 후보에 대해 “로맨틱한 면이 없다. 친정아버님이 법관이었기에 법조인들이 대개 그렇다는 것은 알았지만 신혼 초에는 많이 서운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38년 경남 함안 태생인 그는 부산 남일초등학교와 부산여중,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친의 강한 권유로 서울대 사범대학 가정과에 입학했다. 그는 훗날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버님께서 여자는 무릇 가정과를 가야 한다고 하셔서 (그 말씀을) 따랐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씨가 사회활동 경험을 거의 못했다는 점이다. 이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부터 자원봉사활동 등을 해오고 있긴 하지만 ‘직장생활’은 한 적이 없다. 서울대 사대를 졸업한 이후 그는 여느 졸업생들처럼 교편을 잡지 못했다. 서울사대부고에서 교생실습을 했고 졸업할 무렵 서울시내 학교로 발령까지 났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교사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교생실습을 할 때 부끄러움을 많이 탄 데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며 “사회경험을 했다면 이 후보를 훨씬 잘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가 많다”고 회고했다.
이회창 후보와는 61년 초가을에 만났다. 이 후보의 선배 법관이었던 김정규씨(현 변호사)의 소개로 인연을 맺어 6개월 정도 사귀다 62년 3월 결혼에 골인했다. 한씨는 이 후보의 첫 인상에 대해 “얼굴이 하얗고 맑아 보여서 좋았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씨는 카톨릭 신자(세례명 ‘세실리아’)임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그를 불교신자로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큼직한 불교행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불교신도회와 함께 한 달에 한번씩 유명사찰을 돌며 철야기도회를 열고 있다.
이는 카톨릭 신자인 이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고, 호남지역에 비해 불교신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영남지역의 민심을 묶어두는 효과도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그가 불교계에 정성을 쏟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도력이 있는 한 스님이 한씨에게 ‘이 후보의 인상이 너무 안 좋아 권좌에 오르기 어렵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한씨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 스님은 ‘앞으로 불공을 열심히 드리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그 후부터 한씨가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귀족적 이미지와 당무개입 논란
한씨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귀족적 이미지’ 및 ‘당무개입 논란’과 맞닿아 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에 이 후보와 함께 “귀족적”이라는 따가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후보도 이른바 KS(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이고 그 또한 KS(경기여고-서울 사대) 출신이다. 또 그의 형제자매들도 대부분 ‘KS마크’이거나 서울대를 졸업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가 주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것이다. 월사금이 부족해 여상 3학년 때 중퇴해야 했던 노무현 후보의 부인 권양숙씨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씨는 옥인동 자택 개방 때도 기자들로부터 ‘귀족적이라는 얘기가 많다’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그렇게 보이나. 정말 서민적으로 살아왔다. 북쪽 비탈에 있던 성북동 집은 겨울에 수도가 얼었다. 구기동 집을 장만했을 때는 너무 좋아 장롱과 유리를 닦는 데 재미를 붙이고 살았다. 시장이 멀어 버스를 타고, 김칫거리를 들고 다니면서 즐거웠는데 왜 귀족적이라고 하는지. 옷도 세일할 때 시장에 가서 산다. 나한테도 사치를 한다느니, 거만하다느니 말들이 많아 주눅이 들어 나서기가 겁난다.”
또 당 안팎으로부터 “한씨가 당 내부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97년 대선 당시 한씨의 수행비서가 갑자기 이회창 대표 보좌역으로 발탁됐다.
▲한나라당 여성인사들과의 통로역할을 해온 김 아무개 의원이 내리 전국구 3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한씨의 입김이 있어 가능했다.
▲한씨가 이명박 전 의원 부인과 지나치게 가깝다. 이명박 전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가 된 것도 그런 관계가 작용한 결과다.
▲한나라당 당사 회의실에 주요 당직자 부인들을 불러모아 ‘내조회의’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여성대변인 물망에 오른 ○○○씨가 남경필 대변인으로부터 자기를 한씨가 추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여성 부대변인 후보에 오른 아나운서 출신 △△△씨는 아예 가회동 자택에서 한씨에게 면접시험을 보았다.
지난 16대 총선 전 민주당에서는 한씨를 겨냥해 ‘안방공천’ 의혹까지 제기했다. 또 최근에는 이 후보의 핵심측근들이 그를 가끔 ‘영부인’이라고 불러 구설에 오르면서 “벌써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심지어 8·8 재보선과 관련 권영세 변호사가 이신범 전 의원을 제치고 공천(서울 영등포 을)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와 사위인 최명석 변호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