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1일 민주지산에서 발생한 군인 사망사건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전날부터 비를 맞으며 훈련에 임했던 육군특전사 흑룡부대 23대대 장병들이 대대전술종합훈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천리행군 중에 민주지산에서 그만 폭설을 만나 13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그

해 3월 16일 C-130 수송기에 탑승, 지리산 고공낙하를 시작으로 충남북과 전북 일원에서 침투 타격 생존훈련을 마친 흑룡부대는 4월 1일 운명의 날을 맞아 민주지산 산악행군에 나섰는데 8부능선 쯤에서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어 아예 폭설로 내리는 바람에 전날부터 비를 맞은 부대원들은 당장 저체온증에 직면했고, 밤샘의 사투 끝에 결국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당시 언론들은 훈련준비 미흡, 무리한 훈련 등을 거론하며 지휘부를 질타했지만 그 후 국방부는 사건을 다큐멘터리(아! 민주지산)로 제작, 군인정신 및 끈끈한 전우애를 상징하는 정훈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각별함을 보였다. 민주지산은 곳곳에 원시적인 숲이 많은데다 산세 자체가 험준해 평소에도 일기변화가 극심한 곳이다.

당시 사건은 구 충북일보(현 충북일보와는 무관)의 특종으로 사건 바로 다음날인 4월 2일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사건 당일 영동군과 경찰당국이 처음 작성한 동향보고는 한 두명 정도의 군인이 훈련중 사망했다는 단순사고였다.

때문에 대부분 언론은 단순 사건 기사로 처리한 반면 구 충북일보는 사건팀장(정규호 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팀장)을 현지로 급파, 생생한 현장을 담은 기사를 석간으로 내 보낸 것. 처음 충북일보에 전해진 동향보고 역시 단순 사건 수준이었지만 산에서 군인이 사망했다는 말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데스크가 뒷 취재를 주문하면서 엄청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기사가 나가자 전국의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취재협조를 요청해왔음은 당연지사이고, 이 때문에 창간한지 몇 달도 안 됐던 구 충북일보는 톡톡히 홍보효과를 누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