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음성군외국인지원센터 직원 A씨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두 차례 자리를 가졌다. 한 번은 음성군수와의 면담, 다른 한 번은 수탁법인 측과의 면담이었다. 두 자리에서 나는 직원 A씨와 함께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음성군은 외국인주민이 많은 지역 실정을 근거로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지원하였고 선정되어 국비를 들여 외국인지원센터 건물을 세웠다. 담당부서는 주민지원과 외국인지원팀이다. 도내 첫 번째 외국인지원센터 건립이라 보도자료도 나오고 자랑도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운영방식은 단체 혹은 법인에게 위탁 운영을 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작년 3월 센터가 개관하고 나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외국인지원센터에는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직원 A씨의 해고와 관련하여서는 보조금 부당 사용 이슈가 있었다. 언론에는 ‘센터장이 보조금을 횡령하였다’는 식으로 과장·왜곡된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문제는 청소기 구매에서 시작됐다. 건물을 막 세운 다음 내부 청소를 하기 위한 청소기가 필요했다. 전액 군비로 운영되는 센터였기 때문에 센터는 예산안에 청소기 구매비용을 집어넣어 메일로 보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자산취득은 불가능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 보조금으로는 왜 자산취득이 불가능할까? 사업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청소기든 세탁기든 살 수 있도록 해야하는 거 아닌가?

이 대목에서 상호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 직원 A씨는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청소용역업체 비용에 청소기 구매 비용을 ‘엎어서’ 예산을 잡으면 된다고 답변을 들었고 청소용역업체 예산에 청소기 값을 더한 예산안을 다시 메일로 보냈다. 말하자면 편법을 알려준 것인데 전체 비용을 청소업체에 보낸 다음 청소기 구매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따로 되돌려 받은 뒤 그 금액에서 청소기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꽉 막힌’ 보조금 사용지침을 현실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 이런 편법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보조금을 개인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른 공무원이나 보조금을 지원 받아 운영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다들 대수롭지 않게 ‘암묵적인 관행’이라고 했다.(물론 드러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관청으로부터 보조금을 지원 받아 진행하는 사업은 문화, 예술, 교육, 돌봄, 복지 등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위탁계약, 공모사업 등)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공공(公共)을 위한 활동을 단체나 개인에게 ‘부탁’하여 수행하도록 하는 시스템에서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대부분 어떤 한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시스템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국인지원센터의 청소기 구매 건은 ‘보조금 과다책정’, ‘보조금 편법집행’이라는 이슈로 등장하면서 센터 운영 주체들의 비위행위만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이면에는 주목 받고 있지 않은 또 다른 정황들이 있다.

예컨대 센터장과 직원 3명은 보조금 사용과 관련한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했다. A씨에 따르면 군청에서 5~6월쯤에 보조금 사용에 대한 교육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이마저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 작년 수탁법인에서 진행한 자체 감사에서는 지적사항이 무려 174건이었는데, 감사를 통해 센터 운영에 대해 교육을 한 셈이었다.

한편 직원들 중 A씨를 제외하면 기관에서 실무를 경험했던 사람은 없었기에 A씨는 다른 직원들을 가르치며 초과근무를 하기 일쑤였다. 초과근무를 했지만 그에 대한 수당마저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센터장과 세 명의 직원은 각자 제각기의 이유로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들이 호소하는 괴롭힘과 갈등, 왕따… 등등은 과연 개인적인 인성이나 태도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A씨는 군이 그토록 홍보하던 외국인 지원 업무를 도맡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A씨는 ‘보조금 횡령 직접 가담자’라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기간 만료에 의한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다.(처음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였다가 나중에 기간제로 변경했다) A씨에게 보내진 계약해지 통보서에는 음성군이 제대로 지도감독 하지 않은 책임, 보조금 사용이 중요하다면서 교육하지 않은 잘못, 직원들이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한 법인의 책임은 적혀져 있지 않았다.

A씨의 계약 종료에 대해 음성군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더라, 법인에서 책임질 일이라는 식의 선 긋는 태도를 취했다. 수탁법인 역시 인사권한이 없고 센터장에게 권한이 있다고 했다. A씨 계약해지 당시 센터장은 공석이었고 권한 대행으로 법인 사무국장이 와있었다. 지금은 새로 채용된 센터장이 자리에 앉아있다.

음성군외국인지원센터 직원 A씨 해고 사건은 권한이 분절된 구조에서 종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민간위탁 문제와 함께 수행주체를 거대한 시스템 속 톱니바퀴 하나로 전락시키는 관료제 문제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관료제-민간위탁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쉽게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막고자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던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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