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집담회, 탈성장을 말하다 

사계절이 사라졌다.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기상청은 ‘오보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신뢰를 잃고 있다. 기후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최근 3년 사이 우리나라 날씨는 한마디로 ‘변화무쌍’이다. 

2018년에는 31.4일 동안 폭염이 지속됐다. 도시의 열기는 39.6도를 기록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7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전국 평균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간 따뜻한 겨울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올해 여름은 49일 동안 기나긴 장마 속에 살아야 했다. 

지난 5월 충북기후행동이 충북도청에서 진행한 피케팅 ⓒ 김다솜 기자
지난 5월 충북기후행동이 충북도청에서 진행한 피케팅 ⓒ 김다솜 기자

기후위기를 말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충북기후위기비상행동(이후 충북기후행동)이 지난 2월 출범했다. 충북에서도 기후위기 담론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충북도청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하거나, 자전거 대행진을 벌이면서 기후위기에 관심을 모아 달라고 호소해왔다. 

지난 6월부터는 △기후위기의 인권 △기후위기는 식량위기 △그린뉴딜 쟁점과 방향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유렵 멸종저항과 기후행동까지 5가지 주제로 기후행동학교 강의를 마련했다.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충북기후행동은 4일(수) ‘탈성장을 말하다’는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이 ‘녹색 자본주의 혹은 탈성장?’이란 이름으로 녹색자본주의·포스트 성장·탈성장을 구분 지어 설명을 이어갔다. 모두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언급되는 개념들이다. 다만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이 폐기물 에너지화를 우려했다. 쓰레기를 에너지원으로 쓰면서 상품화된다는 얘기다. 순환경제의 함정은 여기서 발생한다 ⓒ 충북기후행동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이 폐기물 에너지화를 우려했다. 쓰레기를 에너지원으로 쓰면서 상품화된다는 얘기다. 순환경제의 함정은 여기서 발생한다 ⓒ 충북기후행동

녹색자본주의가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다소 보수적인 개념이라면, 포스트 성장과 탈성장은 그보다 급진적이다. 둘은 굉장히 유사하다. 유한한 자본을 가진 인류에게 성장이 경제 핵심 지표가 되는 시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포스트 성장은 양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생산과 소비를 지속적인 관리 체제 아래에 두자는 얘기다. 포스트 성장 안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에 탈성장은 질적 변화를 말한다. 자원은 인간이 영위하는 대상이 아니라 같은 생태 시스템 반경 안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경쟁을 지우는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순환 경제에 속지 말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얘기가 나온 지 2~30년이 흘렀다. 인류는 그 시간만큼 녹색자본주의·포스트 성장·탈성장 등 기후위기 대응책을 다양한 갈래로 나눠보고, 논의해왔다. 담론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착각할 위험이 있다. 

“순환 경제의 고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제조량 자체를 줄이는 겁니다. 지금 시스템에서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결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이 온실가스는 계속 늘어나고, (문재인 대통령도) 2050년 탄소중립을 말하지만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은 기업에서도 ‘순환경제’를 말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칫하면 착각 속에서 기후위기를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우리 모두 생존이 위협당한다 

그의 발표가 끝나자 △농민-임종래 △노동-홍미희 △청년-윤재민 △먹거리-최종예 씨가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대화가 이어졌다. 4가지 질문이 던져지면 관련 키워드를 쓰고, 패널들로부터 부연 설명을 듣는 방식이다. 

  • 첫 번째 질문, ‘기후위기 시대에 각 분야에서 겪는 위기는 무엇일까’

홍미희 씨는 일자리 위기를 우려했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위기는 빈곤과 삶의 불안정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 당장 노동 소득이 없으면 삶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실감하게 만든다. 

윤재민 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언급했다. 대학 시절 냉·난방 시설이 없는 단칸방에서 폭염과 한파를 고스란히 겪어낸 일, 악조건의 날씨를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던 아르바이트 경험을 풀어냈다. 

먹거리 운동을 하는 최종예 씨나, 친환경 농사를 짓는 임종래 씨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로 인해 당장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흔들리고, 농촌 공동체가 뿌리째 뽑혀 나갈 처지에 놓였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날 집담회는 대량생산사회에서 기후위기를 필연이라고 봤다. 기본소득, 에너지 산업의 공공화, 공장형 농업 대신 소량다품종 생산 등이 대안으로 논의됐다 ⓒ 충북기후행동
이날 집담회는 대량생산사회에서 기후위기를 필연이라고 봤다. 기본소득, 에너지 산업의 공공화, 공장형 농업 대신 소량다품종 생산 등이 대안으로 논의됐다 ⓒ 충북기후행동

플렉스(Flex)와 쿡방(cook방) 

  • 두 번째 질문, 성장 추구하는 사회가 만들어 내는 문제는 무엇인가 

질문이 던져지자 의외의 키워드들이 등장했다. 바로 ‘플렉스’(flex)다.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는 뜻을 가진 용어다. 윤재민 씨는 “청년들이 값비싼 물건과 음식을 소비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가 되면서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성장의 그늘에는 수탈과 착취도 있다. 홍미희 씨는 “성장은 장시간,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유지·강화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먹방’, ‘쿡방’도 나왔다. 최종예 씨는 “미디어에서 먹방이 나오지만 생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생산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생산자도 지워진다.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지가 없다 보니 비윤리적인 방식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농이 지역 농업을 삼키고 만다. 

  • 세 번째 질문,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해 각 분야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홍미희 씨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의식이 바뀌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원인과 책임을 밝히는 걸 어렵게 하는 일”이라고 짚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도 더해야 한다는 얘기다. 임종래 씨도 구조에 주목했다. 임 씨는 중앙정부·지방정부가 어떤 정책 기준을 가지느냐에 따라 전환이 이뤄진다고 내다봤다. 

세 번째 질문은 네 번째 질문으로도 연결됐다. 박윤준 충북기후행동 집행위원장은 “문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서 체제를 변환해야 하고 이건 정치적 문제”라며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우리가 사는 충청북도 같은 지방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기후행동은 지역 20여 개 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돼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행동하는 시민모임을 기획하자는 취지로 모였다. ⓒ 충북기후행동
충북기후행동은 지역 20여 개 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돼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행동하는 시민모임을 기획하자는 취지로 모였다. ⓒ 충북기후행동

기후위기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는 이유 

  • 네 번째 질문, 우리가 정부 단위에 요구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윤재민 씨는 “올해만 해도 코로나와 장마, 태풍 등으로 생계에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며 “특정 계층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생계를 위해 기본소득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예 씨는 “전국민 기본소득을 주장하지만 가장 먼저 농민기본소득이 실현돼야 한다”며 “먹거리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려면 생산자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로 먹거리 위기가 온다고 짚었던 최종예 씨는 생산자를 중심에 뒀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임종래 씨가 해답을 내놨다. 임 씨는 “정치와 경제가 둘 사이에서 부정부패를 낳지 말고, 더 좋은 걸 위해 분배를 해야 한다”며 “농민기본소득이 확대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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