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도시계획 조례 일부 개정안 찬반 논란…‘부결’로 마무리 

“오늘 청주시의회가 모처럼 정말 잘한 일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도시계획 조례 일부 개정안을 상정해서 통과시키려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 남성이 기자회견 장소로 성큼 걸어 들어오면서 오황균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 상임대표의 발언이 끊어졌다. 남성은 두 손을 허리춤에 얹고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야! 다 들어오라고 그랴!”

그의 말이 끝나자 플래카드 행렬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막아섰다. 플래카드에는 ‘농촌주민 다 죽이는 도시계획조례 즉각 폐지하라!’라고 쓰인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조례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기자회견을 가로 막아섰다. © 김다솜 기자
조례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기자회견을 가로 막아섰다. © 김다솜 기자

지난 8일(금)에 발의된 ‘청주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안’ 최종 의결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조례안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개발 행위 허가 시 임야의 평균 경사도를 기존 20도 미만에서 15도 미만까지 낮추는 것이다. 

산지의 표고 차(한 측점과 다른 측점과의 높이 차이)를 7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변경하고, 입목축적도(일정 면적 안에 있는 나무 부피)도 150% 미만에서 130% 미만으로 개정하는 내용이 조례안에 담겼다. 

  • “청주시의회는 ‘청주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안’을 원안대로 가결해야 한다. 그것이 청주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며 나아가 지역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환경운동 관련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문 일부 

한마디로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발의된 조례안이다. 개발과 관련된 모든 기준이 강화되다 보니 재산권을 보호해달라는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청주시의회 복도를 가득 메우고, 또다시 고성을 질러댔다. 

조례안에 찬성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 김다솜 기자
조례안에 찬성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 김다솜 기자

 

설득은 없다 

청주시의회는 항의에 부딪힐 것을 고려해 임야 평균 경사도가 15~20도일 경우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하게끔 만들어 개발에 숨통을 터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청원·청주 통합할 때 (경사도) 20도 유지하기로 나랑 도장 찍은 거야. 이 개XX들아!”

“민-민 갈등 조장하는 김용규 의원은 (시의원) 자격도 없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배지를 달고 의원 활동을 하는 건지 XXXX들!“ 

그들의 원망은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규 청주시의원에게로 향했다. 이들은 2014년 청주·청원군 통합 과정에서 조정했던 평균 경사도를 언급하면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당시 평균 경사도는 청주시는 15도, 청원군은 20도로 정해져 있었는데 통합 과정에서 20도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청주시의원들이 복도를 지나가자 "조례안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 김다솜 기자
청주시의원들이 복도를 지나가자 "조례안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 김다솜 기자

53회 임시회 2차 본회의가 열리고, 사람들은 방청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규 청주시의원(더불어민주당)도 발언대 위에 섰다. 그는 조례안을 만드는 목적과 계기를 설명하고 발언을 마쳤다. 신언식 청주시의원(미래통합당), 박정희 청주시의원(미래통합당)이 ‘청원군의 소외 문제와 재산권 보호’를 강조하면서 반대 의견을 전했다. 

남은 건 표 싸움이었다. 하 의장이 의사봉을 한 차례 내려치자 전광판 위로 불이 들어왔다. 39명 재석 의원 가운데(1명 기권) 16명이 찬성하고, 2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조례안은 부결됐다. 

찬성 박용현 김기동 변은영 김성택 김영근 박미자 김용규 박완희 양영순 이재숙 최동식 유영경 이현주 한병수 임정수 정우철

반대 하재성 김은숙 김태수 박정희 김미자 김현기 김병국 남일현 변종오 박노학 신언식 안성현 유광욱 윤여일 임은성 이영신 홍성각 이완복 전규식 이우균 이재길 정태훈

기권 최충진

청주시의회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 원안 통과 표결 결과 

이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규 청주시의원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동료 의원들이 압박을 받다 보니 그 결과가 소신 투표로 이어지긴 힘들었던 것 같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의회 내 다수일 때 시대에 부응하는 변화를 일궈내야 하는데 여러 이유로 발목이 잡혀 아쉬우면서도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소회했다. 

부결의 결정적인 원인은 반대 의견이 너무 많아서였다. 조례안 개정에 반대 의견을 표출한 신언식 의원은 “이렇게 많은 민원이 발생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85만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이렇게 민원이 많은 데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건 (의회)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재성 의장이 전자투표 기록 표결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 © 김다솜 기자
하재성 의장이 전자투표 기록 표결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정작 주민들의 생각은 어디에 

이 조례안과 관련해 청주시의회로 도착한 의견서에는 연서명 인원이 약 5,000명에 이른다. 토지 소유주나 측량업체, 부동산중개협회, 개발사업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주민’이라기보다는 ‘이해 당사자’에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이전에 청원군 의원이었던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한 마을에 임야를 가진 토지소유주는 5%에 불과하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다수의 원주민은 내 집 위에 공장이 들어서고, 집 뒤에 임야가 훼손돼서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는 걸 원하지 않을 거란 얘기죠.” - 김용규 청주시의원 

과거 청원군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개발이냐, 보존이냐’ 해묵은 논제가 이들을 갈랐다. 10년 째 남일면 효촌리에 거주하는 조운형(77) 씨는 “여기가 개발돼야 주민들이 살기 좋다”며 “옛날 시절 한옥 초가지붕이 그대로 보존돼있다고 생각해보라”고 전했다. 

남일면 송암리 인근에 들어 선 전원주택 단지 © 김다솜 기자
남일면 송암리 인근에 들어 선 전원주택 단지 © 김다솜 기자

한재영(가명·62) 씨는 자신이 남일면 송암리에 시집오던 그때를 떠올렸다. 1984년, 청주 시내에서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이었다. 희뿌연 연기에 눈도 따갑고, 숨도 턱턱 막혔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지북동까지만 들어서도 공기가 달라졌다. 논바닥 천지에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그 시절이, 한 씨 마음에는 쏙 들었다. 

“전원주택 단지는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다 타지 사람들이에요. 차가 많아지니까 공해도 나빠지고…. 우리처럼 집 하나 있는 사람은 (개발된다고 해도) 이득 볼 게 없지. 여기 뭐가 많이 들어와서 환경만 나빠지고, 사는 게 안 좋아지면 반대지.”

국전리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김다솜 기자
국전리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청주에서 장사하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데 살고 싶었다. 윤정화(가명·77) 씨는 25년 전 문의면 국전리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상주고속도로를 가리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들어오고 나서 공기도 안 좋아지고, 살기가 더 안 좋아졌다”며 “이러나, 저러나 나라에서 하는 건데 막을 장사가 있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침묵하는 다수가 있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수의 의견이 있는 것”이라며 “오늘 청주시의원의 결정을 봤을 때 쌍욕 하면서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와닿은 거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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