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Q대령 내연녀 아파트서 권총자살, 軍 밀실수사
가수 홍세민과 청주 사업가 K씨 돈 2억원 사기, 민사소송

노태우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1989년 1월, 청주시내에서 지역 보안부대장의 자살이라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 것도 내연녀의 아파트에서 한밤중에 권총 자살을 한 것. 당시 충청일보에는 단순 사건처럼 1단 기사로 처리됐고 지역 호사가들은 ‘치정(痴情)’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역 대령이었던 지역 보안대장의 자살사건은 경찰, 언론이 접근도 못한채 군수사기관이 전담처리했다.

그런데 최근 사건현장이었던 아파트 주변에 괴청년 2명이 배회했다는 증언이 새롭게 나왔다. 당시 정보부서에서 일했던 전직 경찰이 해당 아파트 주민의 진술이 있었다고 취재진에 밝힌 것. 이 증언을 토대로 31년전 '청주 보안부대장 권총 자살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30년전 보안부대장 권총자살 사건이 벌어졌던 청주 사창동 아파트 단지
30년전 보안부대장 권총자살 사건이 벌어졌던 청주 사창동 모아파트 단지

“밤늦게 동생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달려갔다. 막 도착하니 시신을 차로 옮기고 있었고 눈위에 떨어진 핏자국이 선명했다. 집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은 놀라서 어쩔줄 모르고 방바닥에는 피와 허연 뇌 같은게 엉켜 있었다. 동생이 식당 문을 닫고 아파트에 도착해 안방문을 여니까, 부대장은 이미 권총을 들고 있었고 동생과 눈을 마주치자 곧바로 자기 머리에 쐈다고 하더라.”

1989년 1월 24일 새벽 청주 사창동 모아파트 사건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던 민간인 A씨의 목격담이다. A씨는 숨진 보안부대장 Q대령과 내연관계였던 B씨와 청주 요식업계에서 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당시 B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요정식당에서 Q대령을 만나 연인관계가 됐고 B씨의 아파트에도 출입하게 된 것. 당시 청주 보안부대는 Q대령의 시신을 대전 국군통합병원으로 곧바로 이송했다. 군수사기관은 사건 목격자인 B씨의 진술을 토대로 자살로 결론지었고 부검없이 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했다.

5공 언론보도 통제를 겪었던 당시 유일한 일간지 충청일보는 보안사로부터 비보도 압력을 받았다. 그때 충청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모씨는 “그쪽에서 비보도를 요구해 편집국 내부적으로 설왕설래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교통사고 사망으로 처리하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결국 권총자살로 1단 기사 처리하게 됐다. 기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의문도 있고 취재도 하고 싶었지만 다름아닌 보안부대의 대형사건인데 어떻게 접근하겠나? 그땐 1단 기사라도 보도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배경에 의문을 품은 일부 정보과 경찰과 취재기자들이 현장 목격자인 B씨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건 직후 보안부대에서 수사를 이유로 당시 청주 모충동 청사로 연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가 끝난 B씨는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채 1개월가량 부대안에서 보호조치(?)를 받게 된다. 당시 청사내 머물던 B씨를 수발했던 A씨는 “그때 바로 풀려나질 않고 한달가량 부대안에서 생활했다. 내가 옷가지며 음식을 챙겨서 갖다주곤 했다. 나두 왜 거기 그렇게 머물렀는 지 이유는 모르겠다. 동생은 충격 때문에 보안부대를 나와서 속리산 암자에 기거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청주 기억을 잊기 위해 대전으로 이사가게 됐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홍세민씨 구속기사. 발생년도를 1988년으로 잘못 입력시켰다.
중앙일보의 홍세민씨 구속기사. 발생년도를 1988년으로 잘못 입력시켰다.

유일 목격자 B씨 군 수사뒤 청주떠나

B씨까지 청주에서 증발(?)되면서 보안부대장 자살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두달뒤인 3월 서울동부지청에서 가수 홍세민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키면서 다시 구설에 오르게 된다. ‘흙에 살리라’ 히트곡으로 유명했던 홍씨의 혐의는 ‘고위공무원을 통해 택시운송사업 면허를 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K모씨로 부터 2억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언론보도에는 ‘고위 공무원’으로 표현됐지만 그 사람이 바로 청주에서 숨진 Q대령이었다. 취재결과 Q대령은 청주 재력가인 K씨에게 접근해 도지사를 통해 택시사업 면허를 받아주겠다며 사례비 2억원을 받았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Q대령과 지인관계인 가수 홍씨도 합석해 대화를 나눴다는 것. 하지만 돈이 건네간 지 2개월만에 Q대령은 자살했고 K씨의 택시사업 면허도 불발되자 가수 홍씨를 상대로 검찰에 고소한 것.

당시 Q대령과 만나게 된 상황에 대해 K씨는 "어느날 내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서 알게 됐다. 그러다 Q대령이 가수 홍씨를  소개해 같이 식사도 여러 번 했다. Q대령이 먼저 자기가 도와줄 일이 없겠느냐, 하고 싶은 사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처음엔 상호신용금고를 얘기한 것 같은데 나중에 Q대령이 '그건 곤란하겠다'고 했고 택시사업을 권유했다. 도지사를 통해 면허받게 해준다며 2억원을 요구해 대출받아 전달해줬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돈에서 일부는 가수 홍씨에게 건네갔더라. 내가 먼저 청탁한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접근한 건데‥정말 억울했다"고 말했다. Q대령 사망이후 청주지역엔 K씨 이외에 또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설이 나돌았다. 역시 재력가였던 '한전 아줌마'를 비롯해 일부 사업가들이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K씨의 민사소송 패소 탓인지 후속적인 소송분쟁 은 없었다.

31년전 2억원이라는 거금을 날리게 된 K씨는 가수 홍씨와 Q대령 유가족을 상대로 보관금 반환청구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1990년 3월 청주민사지법은 “이권청탁 등과 같이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의 약정은 무효다. 민법상 불법원인 급여에 해당돼 반환의무가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후 30년간 ‘청주 보안부대장 자살사건’은 기억속에 봉인된 채 아무도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초 취재진은 사건당시 경찰에서 정보통으로 일했던 퇴직 경찰관 W씨를 만나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W씨는 “그때 경찰은 현장접근조차 할 수 없었지만 유서도 없는 자살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해당 아파트에 살던 지인이 ‘사건발생 1주일전부터 젊은 남자 2명이 B씨 아파트 동 주변을 배회했는데 사건이후에 사라졌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K씨한테 받은 2억원을 비롯해 큰돈을 가진 Q대령이 어디에 썼는 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장군 승진을 앞둔 Q대령이 로비자금으로 쓴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한 승진 누락된 이후에 로비자금을 돌려받으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도 나왔었다”고 말했다.

자살동기 불분명, 거액 사용처 의문

Q대령 사망당시 청주 보안부대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 R씨에게 시중에 나돌았던 의문에 대해 질문했다. “유서는 없었고 가족동의하에 부검을 하지 않았다. 사건 목격자인 B씨는 2~3일 부대안에서 조사받은 뒤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건 당시 아파트 주변에 괴청년들이 보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소리다. 전혀 근거없는 소문이고, 개인적으로 우울감에 빠져 자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배기수가 준장승진되고 자신이 탈락한 것에 대해 비관했을 거고 K씨의 택시사업 청탁이 잘 처리되지 않아 역시 고민이 컸을 것이다. 모든 정황과 현장 증거로 봐서 자살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Q대령이 받은 거액의 부정한 돈에 대해서는 “아마도 유흥비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B씨가 보안부대에 한달간 머무는 동안 수발을 들었던 A씨는 Q대령의 자살원인에 대해 "그때 부대 왔다갔다 하며 직원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Q대령이 청주오기전에 제주부대장을 했는데 거기서도 돈문제가 불거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상부에서 알게됐고 Q대령에게 사직을 권고해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직 보안대 직원 R씨는 "제주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청주 K씨와  돈문제도 우리 직원들은 자살이후에야  알게됐다. 은밀하게 두 사람간에 1:1로 진행됐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청주 보안부대장 자살사건’이 31년이 지나도록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것은 현장 목격자인 B씨가 사건 이후 청주를 떠났고 지인들과 접촉도 피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보안부대가 사건직후 1개월간 B씨를 외부와 격리시켜 사실상 감금했던 사실도 전직 직원 R씨는 ‘2~3일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B씨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A씨는 취재진이 만남을 부탁하자 “일생에 제일 충격적인 일을 겪었는데 30년이 지나 또다시 그 일을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Q대령의 자살동기 중에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은 장군 승진 탈락에 따른 실망감이다. 하지만 6공초 기세등등했던 보안사의 지역 책임자가 승진누락 때문에 권총자살을 택했을까?

전직 경찰 정보통 W씨는 “숨진 Q대령은 나도 합석한 적이 있는데 우울증으로 자살할 성격은 아니라고 봤다. 숨지기 1주일전에 만났다는 사람들 얘기도 전혀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고‥기관장이면 대접받는 자리인데 거액의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것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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