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성장타령, 이제는 그만둬야

<캠페인 : 지역과 노동을 잇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충북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의 연대체로 충북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존중’ 등이 시대적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운동본부는 충북인뉴스와 지역의 저임금‵비정규 노동의 현실, 노동정책과 이슈 등을 통해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집어보려고 합니다. 지역과 노동을 잇는 소식이 ‘노동이 존중되는 충북, 살 맛 나는 충북’을 만들기 위한 걸음에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충북인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을 반대합니다. 비정규운동본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활동가들이 기고한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쓴이 : 선지현(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

 

모든 게 최저임금 탓?

 

올해 초부터 최저임금 인상 및 결정제도를 둘러싼 공방이 시작됐다. 일부야당과 기업주들은 경제가 어려워진 것도, 일자리를 줄어든 것도 모두 최저임금 정책이 때문이라며 최저임금을 공격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면 한국경제 문제는 모두 최저임금 인상 탓이다. 정말 그런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임금 ‘제자리’

 

선지현(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

2019년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월급으로 계산하면 174만5천150원. 지난해보다 월 17만1천380원이 인상됐다. 그러면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의 임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지난 2월 20일 비정규노동자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공개한 월급명세표에 보면 한 자동차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작 월 1만 7천원이 올랐다.

심지어 임금이 아예 인상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지난 해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노동 상담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인한 상여금과 각종 수당 폐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의 상당수는 10.4%의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임금 인상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한 것. 그런데도 기업주들은 난리다. 그래놓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개악해 임금을 더 낮추겠다는 나서고 있다.

OECD 국가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 2위(2018년 기준. 23.5%),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지니계수는 35개국 중 31위, 남녀 임금격차 1위, 노인 빈곤률 1위 등 우리나라 양극화`불평등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것밖에 없다.

또 보자. 정부가 발표한 2019년 중위소득은 4,613,536원(4인 가족 기준)이다. 이에 60%인 최저생계비는 2,768,121(4인 가족 기준)이다. 2인 가족을 기준으로 해도 2019년 최저생계비는 170만원이 넘는다. 최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이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은 ‘겨우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250~3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얼마 전 노동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청년(15~29세) 노동자 5명 중 1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고령층의 노동 빈곤화에 더해 청년들도 저임금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면 양극화 해소는커녕 저임금구조가 더욱 고착화된다.

최저임금을 높여 저임금 구조를 벗어나자는 주장은 ‘더 이상은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그대로 두고, 임금만 깎는 탄력근로제

 

 

노동자 임금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이 동원하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만이 아니다. 지난 2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탄력근로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정책에 합의했다.

단순히 기간만 확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계산을 ‘1일’에서 ‘주 단위’로 변경하면서 노동시간을 사업주 맘대로 고무줄 늘이듯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야간근로, 연장 근로에 대한 임금 가산이 이뤄지지 않아 노동자들의 임금은 또 하락하게 된다.

시급제를 적용하는 대다수 제조업에서는 장시간노동은 그대로 유지된 채 임금만 깎이게 된다. 노조가 있고, 사업장 규모가 크면 단체협약을 통해 이를 방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임금비정규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이 1%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에 따른 임금삭감은 고스란히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의 몫이다.

한국사회는 수 십 년 째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을 달고 살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인 나라에서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이 역설은 결국 경제성장이 노동자의 장시간노동과 저임금 체계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향한 고임금 타령을 하고 있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해놓고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정책을 관철시키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하는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저임금`장시간 체제를 더 고착화시키고 있다.

 

지긋지긋한 성장 타령

 

기업들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임금과 고용 안정 애기가 나올 때마다 ‘경영 위축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논리를 앞세운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이 발표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르는 일자리 축소는 추정치이거나, 인구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통계 발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임금인상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고,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며 일시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일자리를 앞세운 기업의 논리는 사실 50년 넘게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성장해야만 분배의 크기도 커진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과거 우리는 꾸준히 성장하는 경제 지표를 보면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심각한 수준의 양극화`불평등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오랫동안 저성장 늪에 빠져 있는 세계 경제상황이 존재한다.

우리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한 기간 동안 고성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이를 고려해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생산이 부족해서 생산성을 높이면 성장할 수 있거나, 돈이 없어서가 나눌 수 없는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이윤을 남길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거짓 논리에 경제가, 정부 정책이 움직인다. 한심한 노릇이다.

얼마 전 충북통계청은 2018년 기준으로 충북지역 성장률과 고용률이 다른 지역보다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들여다보니 최근 5년간 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이 5.3%에 달했고, 실제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만 6천 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18시간미만 단시간 노동자가 1만 3천명(2017년 4만 1천명 -> 2018년 5만 4천명)이나 증가했고, 36시간미만 노동자 역시 2만 4천 명(2017년 9만 9천명 -> 2018년 12만 3천명)이나 증가했다.

저임금`불안정 일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에 비해 안정된 상용직이라고 볼 수 있는 36시간 노동자 수는 오히려 2만 명이나 줄었다. 성장률, 고용률 모두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더 악화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일자리를 만드는가가 중요

 

 

일자리 중에서도 청년 일자리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청년 일자리는 분명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청년들이 요구하는 일자리는 저임금 일자리가 아니다. 기간제, 하청일자리가 아니다.

그들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를 원한다. 그럼에도 기업주, 정부, 노동계 모두가 나서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걱정하지만, 실제 내용은 최저임금 8,350원도 줄 수 없는 일자리, 노동기본권도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 밤낮으로 사업주가 요구하는 데로 일해야 하는 일자리, 장시간 노동이 아니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일자리 만들기 뿐이다.

그러니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사다리에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지표가 아니라 고용의 질 문제다. 그것을 빼놓고 말하면 한국사회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

2월 말쯤 정부가 최저임금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국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최저임금 관련한 각종 법안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동결, 유휴수당 폐지,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처벌 완화, 심지어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예외 적용까지 임금하락과 차별조항들이 차고 넘친다. 이 법들이 겨냥하는 주 대상은 노조 없는 노동자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다.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노동존중’을 앞세운 정치권의 위선이 더욱 분노스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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