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오효진 소설가

오효진 소설가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은 여성적이고 어리석다. 그들은 감정과 증오에 의해서만 통제된다.” 히틀러는 이런 신념으로 독일 국민들을 선동해서 파죽지세로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감정과 증오를 자극해서 유태인과 공산주의자들을 수용소에 몰아넣었고 학살했다. 그러면서 여성적인 감정에 호소해서 1932년 4월 선거에선 나치스가 독일유권자의 36.3%를 얻어 마침내 원내 제1당이 됐다. 이것을 기반으로 히틀러가 총리가 됐다. 2년 뒤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이 됐다. 악인 히틀러는 대중이 어리석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선거를 통해 이런 못된 전술로 어엿하게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오늘날의 선거전략도 이런 거짓술책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선거에서 보더라도 정도(正道)로 가는 후보자보다는 옳지 않는 길로 가는 후보자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유권자들도 여론조사를 할 땐 인물중심, 정책중심으로 사람을 뽑겠다고 해놓고 막상 표를 찍을 땐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방송토론에서도 사람의 됨됨이나 정책을 따지기보다 상대방을 헐뜯고 서로 싸우는 일이 많다.

지금 한창 설왕설래 하고 있지만 여론도 조작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믿을 게 없다.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겠는데 나선 사람들 가운데는 정직한 일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이 판을 치고, 사술(詐術)이 횡행한다. 선거 때만 되면 옳지 못한 사람들이 거짓말 대회를 하는 것 같다. 후보들은 감정과 증오로 국민들을 몰고 가려고 한다. 애석하게도 유권자들은 또 깜빡 속아서 선거일 하루 잘못 찍고 4년을 내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모 방송사에서 보도책임자로 일할 때 선거가 몇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정치부장한테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치판에서 몇 십 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정치부장이 예상하는 일이 맞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예상이 빗나갔다. 그런 일이 잦게 돼서 나는 정치부장이 예상하는 것과 반대로 결과를 점치곤 했다.

정치부 초임기자들은 대개 야당부터 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중견이상이 되면 여당출입을 하다가 차장 부장 자리를 맡게 된다. 이때쯤 되면 알게 모르게 머리가 여당적 구조로 짜이게 마련이다. 여당편향적이 돼서 그쪽에 유리한 결론을 내리게 마련이다. 정치판 전문가인 부장은 선거판의 생리에 익숙해져서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꼽기보다, 당을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출신배경을 따져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다.

정치부장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나도 이제까지 수십 번이나 투표했다. 그 가운데 내가 찍어 당선시킨 사람은 정작 몇 명 되지 않았다. 번번이 내가 찍은 사람이 떨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 가운데도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의 지식층들은 일반국민들의 중간적 사고영역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른바 먹물들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 반듯한 사람, 꼭 돼야 할 사람,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뚜렷한 사람을 고른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후보자들이 선동하는 대로 증오와 감성에 휘말려 골라서는 안 될 사람을 고르는 경우가 흔하다.

선거에선 마지막 3일간의 바람을 잘 타야 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정치부장보다 훨씬 정확하게 선거의 결과를 백발백중 맞춘다. 그분은 바닥에 부는 바람을 읽을 줄 안다. 그분은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하게 당락을 맞췄다. 그분은 자기주장이나 소속감을 버리고 가만히 대중의 흐름을 본다.

그러나 이 바람은 민주주의가 바라는 바람은 아니다. 그것은 히틀러가 말한 대로 말초적, 자극적, 감정적, 비본질적 소문이나 거짓이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히틀러의 거짓 술책으로 당선된 또 다른 히틀러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 4년간 정말 내가 선택을 잘했다는 자긍심으로 그 지도자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기를 바란다. 어쩐지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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