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의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 작성에 충북 충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류자명(柳子明·1894~1985) 선생의 아나키즘과 의열투쟁 이론이 도움을 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는 최근 펴낸 '의열투쟁의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한 류자명'(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 기획)이란 제목의 평전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27일 "류자명 선생은 많은 분에게 아나키즘 이론을 전파했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단재 선생이 선언서 작성 때 상하이에서 한 달간 함께 기숙하면서 아나키즘과 의열투쟁 이론을 지원한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류자명 선생은 비밀항일결사단체인 의열단(義烈團) 김원봉(金元鳳·1898~1958) 단장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 있던 단재 선생을 방문해 조선혁명선언문 기초를 간청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단재 선생과 한 달간 기숙하면서 아나키즘과 의열투쟁 이론에 정통한 류자명 선생의 지원은 '조선혁명선언' 집필에 큰 도움을 줬을 것으로 박 교수는 보고 있다.
류자명 선생은 집필 과정에 자신의 역할을 일부러 내세우지 않았지만, '조선혁명선언' 작성 과정과 주요 내용 등을 자신의 저서 '한 혁명자의 회억록'에 담았다.
1923년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은 아나키즘과 의열투쟁 이론인 민중혁명을 지향했다.
김원봉 단장이 단재 선생의 집필을 지원하게 한 것도 의열단 창단 이념이나 투쟁 강령에 류자명 선생이 누구보다 정통한 이유이기도 하다.
류자명 선생은 '회억록'에서 의열투쟁을 폭력혁명 투쟁으로 정의했다.
'조선혁명선언'은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이 낳은 가장 귀중한 문헌의 하나이면서 단재 선생이 아나키스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교수는 "'조선혁명선언'은 의열단의 위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했고 활동 노선과 투쟁 방법론을 명확히 설정해 향후 의열단의 지표와 정체성을 정립한 문서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자명 선생은 1919년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사를 재직하면서 학생 중심의 시위 계획을 준비하다 일경의 밀정에 발각되자 서울로 올라가 청년외교단 상하이로 망명해 의열단에서 항일투쟁을 벌였다.
정부에서 1968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