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순 「길을 가다가」 전문

길을 가다
문득 서서
움찔해 진다.

곁에 와
머무는 것
온화한 봄빛일레.

점점이
찢긴 날개를
누군가 꿰매고 있다

생각을 추슬리듯
꽃은 피는

그 밑동지엔
시나브로 꽃은 지고
질펀히 깔리며
스미는 것

품안에 집어넣고
거닌다.

─ 한분순 「길을 가다가」 전문(시집 『소녀』에서)

그림=박경수

나비의 찢긴 날개를 꿰매고 있는 저 유연하고 내밀한 봄날. 놀라운 만상의 이치를 감추듯 드러내며 꽃이 가는 길. 안타까이 꽃이지면 연분홍 꽃잎 주워 품속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봄날. 스치듯 흘러가는것이 어찌 봄날뿐이겠습니까. 언제나 꽃처럼 길처럼 우리의 청춘도 지나간다는 것을, 시나브로 꽃이 지면 더욱 간절하게 다가서는 꽃의 전언이지요.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 해는 지는 빛이 아름답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 임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어여쁩니다’ 만해의 시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요.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고요. 소멸의아련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지요. 그런 아름다운 사연들을 사라지게하는 것은 문인의 허물이라 하던가요. 시인이 움찔해지도록 미적 충격으로 밀려오는 온화한 봄빛과 수많은 생각으로 피는 꽃들, 그러나 그 밑동에는 순간처럼 꽃비가 내리네요.

꽃잎이 어디 정처가 있어서 이 봄에만 머물겠습니까. 어느 봄날 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꽃잎과 한 마음이 겹쳐 떨립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꽃잎을 주워 시를 씁니다. 꽃 속에 시정을 물들이는 자,이 봄 참으로 목마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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