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식의 ‘톡톡 튀는 청주史’

청주 박광우 묘소淸州 朴光佑 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71호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수대1길 50-7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광우(1495∼1545)의 묘소이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선동역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오산리에 있던 것을 196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묘소에는 위패비位牌碑와 묘표, 면봉사적실기(1967), 사적비(1980), 장명등, 문인석, 동자석을 갖추었다. 묘표는 1687년(숙종 13) 송시열이 지은 비문을 새겨 새로이 세웠다. 박광우의 자는 국이國耳, 호는 필재蓽 잠소당潛昭堂, 본관은 상주이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청주 산덕리 태실淸州 山德里 胎室

충청북도 기념물 제86호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산덕리 411

태실은 석함과 뚜껑돌을 별도로 만든 원통형의 태항아리에 안치하고 봉분을 조성하였다. 석함은 지름 118㎝, 높이 76㎝로 그 안에는 지름 64㎝, 깊이 58㎝의 내실을 마련하였으며, 뚜껑돌은 지름 119㎝, 높이 63㎝의 반원형이다. 태실비에는 이 태실의 주인공과 건립시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비는 1588년(선조 21)에 태어난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1588~1628의 태실로 추정된다. 인성군 태실과 태실비는 1928년경에 도굴되어 유실되었던 것을 1994년 복원한 것이다.

 

청주 현풍곽씨 효자비 및 묘소淸州 玄風郭氏 孝子碑 및 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139호
청주시 상당구 탑동로 35

탑동의 현풍곽씨 효자비는 조선 후기 4대 5인(곽여찬, 곽진은 부부, 곽원호·상조)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곽여찬, 곽진은, 곽원호의 묘소는 인근 산 49-1번지로 탑동 5층석탑과 효자각으로부터 약 50m 거리에 있다. 곽여찬은 1817년(순조 17)에 효자로 명정되었다. 곽진은은 1828년(순조 28), 곽진은의 처 인천이씨는 1850년(철종 1)에 효부로 명정되었다. 곽원호는 1854년(철종 5), 곽상조는 1884년(고종 21)에 효자로 명정되었다. 현풍곽씨 묘소는 위로부터 곽여찬-곽진은-곽원호의 묘소 3기로 망주석과 상석 외에는 다른 석물은 없다.

 

청주 양수척 효자비淸州 楊水尺 孝子碑

충청북도 기념물 제145호
청주시 상당구 다리실로 60

이 비석은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효자비는 높이 112cm로 앞면에 ‘양수척효자비’라고 새겼다. 조선 초 운동동의 속칭 비선거리에 살았던 양수척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효자 경연慶延의 효행에 감복한 양수척 형제가 효행을 다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천민 신분인 양수척의 효행 사실을 전하고 있는 효자비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양수척 효자비는 천민마저도 감복할 만한 경연의 효행 사실을 드높이기 위해 청주 경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청주 모충사淸州 慕忠祠

문화재자료 제8호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마동2길 107-9

모충사는 1694년(숙종 20) 회인현 서면 동막리에 1401년(단종 1) 계유정란癸酉靖亂 때 2등 공신으로 책록된 봉석주奉石柱, 1418~1465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달리 강성사江城祠 또는 하음사河陰祠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의 사당은 1926년에 중건하고 1970년 보수한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온돌방으로 중앙에 분합문을 달고 앞과 좌우에 퇴를 두었다. 안쪽에 모충사우기慕忠祠宇記와 중수기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 중앙

앞쪽에 ‘모충사’란 현판을 달았고, 담장과 일각문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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