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검도의 개척자이자 산파 역할을 한 고 이교신 선생의 묘소가 최근 발견되면서 그의 발자취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교신 선생은 일제강점기던 1921년 옥천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시모노세키 상공학교에 다니며 검도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상장을 받는 등 학창시절부터 탁월한 검도 실력을 발휘했다.

광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 선생은 1955년부터 충북 지도사범(치안국발령, 현 경찰청 사무관급)으로 청주경찰서 상무관에 정착, 충북 초대 지도사범으로 활동했다.

이 선생의 검도 실력은 대회 수상으로 입증된다.

마흔 살이던 1960년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각하 친람 제6회 전국무술 개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62년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1969년 49살의 나이로 출전한 `광복절 경축 제3회 전국검도개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같은 해 서울 YMCA 체육관에서 열린 제4회 국제사회인 검도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하는 등 나이를 뛰어넘어 수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 선생은 검도 발전을 위한 제자 양성에도 힘써왔다.

고규철 충북검도회장을 비롯해 오세억 전 부산소방본부장, 이상록 전 청석고 교장, 김춘경 전 용인대 교수 등 충북 검도계의 중심인 내로라하는 수많은 제자를 지도했다.

1970년대 들어서며 지도사범제도가 없어져 모친이 있는 옥천으로 낙향한 이 선생은 1972년 52세 나이에 안타깝게 숨을 거뒀다.

이후 소식이 끊긴 채 세월이 흐르며 잊힐뻔한 이 선생의 발자취는 충북검도회장 직무대행인 김국환 옥천경찰서 정보과장의 노력으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김 과장은 지난해 옥천서에 부임한 뒤 이 선생의 자취를 찾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소문에 나섰고 결국 옥천읍 구일리 소재 선영에 있는 이 선생의 묘소와 묘비를 확인했다.

충북검도회는 이 선생을 기리기 위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충북검도회 임원진을 비롯해 전국체전 출전 선수단, 옥천군 검도회 임원, 이 선생 가족 등과 함께 오는 14일 이 선생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다음 달 충북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종합우승을 기원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매년 이 선생에 대한 추모행사를 열어 충북 검도 발전을 위해 생을 바친 이 선생의 업적과 검도에 대한 열정을 되새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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