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받는데 관대한 만큼 남에게 해 끼치는 데도 무감각
화 많이 내는 한국인과 통 짜증내지 않는 현지인 ‘딴 판’

안남영의 赤道일기(15)
전 HCN충북방송 대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은 규정상 현지에서 자가용을 운행할 수 없다. 오토바이도 안 되고 오로지 자전거만 탈 수 있다. 사고 위험, 위화감 등 때문이겠다. 자전거 출퇴근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자전거 통학 시절을 반추하거나 운동도 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창피하게도 자전거 타다가 세 번이나 넘어졌다. 초보도 아닌데….

지난 6일 귀가하던 중 고꾸라져 아스팔트에 이마를 찧었다. 다행히 저속이어서 부상은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다. 갓길도 없는 복잡한 도로에 정차된 차를 갑자기 발견, 앞브레이크를 잡은 게 탈이었다. 때마침 왼손으로는 모자를 고쳐 쓰던 중이라 오른손만으로 균형을 못 잡은 탓이다. 모자가 벗겨지고, 전조등이 튕겨 나가고, 이마엔 피가….

“이런, 망신!” 언짢은 마음이 솟구쳤으나 이내 누그러졌다. 누군가 재빨리 달려와 나의 수습을 도와 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고가 나면 으레 도움의 손길이 왕성하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한 인도네시아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예다.
 

자전거 출퇴근이 오토바이들 때문에 그리 안전한 것만은 아닌듯하다.
내가 다니는 학교 정문. 비만 오면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물웅덩이가 생기지만 다들 참고 지낸다.

석 달 전엔 빗길에서 유턴한 뒤 가속하던 중에 직진해 오던 오토바이에 받혔다. 첫 번째로 넘어졌던 바로 그곳, 비를 덜 맞으려고 서둘렀던 상황도 같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옷을 털며 일어나려는데, 근처 포장마차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리저리 살피며 걱정해 줬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추돌했으니 망정이지 곧장 쳤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절뚝거릴 정도여서 자칫 독박 쓸까 봐 내심 불안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로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는 당사자끼리 악수하고 헤어질 것을 권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연상됐다. 아무튼 그때 “굳이 따져 뭣하랴” 같은, 통 큰 정신문화라도 본 양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현장을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한번은 한국문화축제를 도와주던 여학생 하나가 “급히 가야겠다”며 인사를 하는데,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다. 친구가 맹장수술을 앞두고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입원할 처지가 됐다는 전화를 받고 안쓰러워 울었단다.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는 정도가 ‘성녀급’이다.

공중도덕 준수는 ‘나 몰라라’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인들이 남에게 짜증내거나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교무실을 같이 쓰는 동료 교사 중 한 명은 가끔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출근한다. 가뜩이나 좁은 교무실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질 만도 하지만 누구도 눈총을 주는 일이 없다. 한결같이 아이를 귀여워할 뿐이다.

이런 넉넉한 인심은 이슬람교 가르침에 뿌리박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관대한 성정은 무던하고 느긋한 모습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원리처럼 보인다. ‘갈등대국(葛藤大國)’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부럽기만 하다. 좋게 보면 너그럽고 의연한 거겠지만, 한편으로 느긋함이 지나쳐 불감증 혹은 무감각을 드러내는 게 문제다.

공중도덕 준수, 돌출 문제 개선이란 관점에서는 ‘아니올시다’다. 커닝에 너그러운 풍토가 놀랍다. 약속을 어기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당할 때 무던하니 반대로 끼칠 때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식당 옆자리에서, 미니버스 앞자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운전 중 누군가 끼어들라치면 화부터 내는 게 한국이라면, 여기선 그거 갖고 짜증부리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한편 그 느긋함은 가끔 허세로 둔갑하고 자존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험 시간에 엄히 제지하지 않으면 버젓이 책을 보거나 커닝한다.

지난달 28일 자카르타 근교의 도자기 공장을 견학하고 돌아오던 길이다. 다른 동료단원 9명과 함께 탄 버스에서, 코이카 숙소가 있는 아파트로 접어드는 길을 지나쳐 가기에 동료들과 몇 마디 나눴는데, 자신을 무시하는 말로 오해했는지 알 수 없는 홀짝 운행제를 들먹이면서 신경질을 냈다.

표정으로 보면 화난 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건 내게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에 말이다. 2시간 정도 체증에 짜증날 만도 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화까지 낼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좌회전할 차선 진입을 놓치는 바람에 30분이나 먼 길을 돌아가는 중이면서도 외려 큰소리로 반박해댄 것이다. 내릴 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과 허세를 똑똑히 목격한 하루였다.

식당에서 “밥 떨어졌다”면 끝

능률과 실질, 옛날 국민교육헌장에 나왔던 말인데 여기서 자꾸 이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더 숭상해야 하겠지만 이곳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다들 남한테 따끔한 소리를 할 줄 모르니, 개선해야 할 게 빤히 보이는데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 정문에는 비만 오면 물웅덩이가 생기지만 대책 없는 걸 보면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한없이 너그러운 인심과 인내의 바다에서 자칫 권리의식이나 문제의식을 곧추 드러냈다간 왕따라도 당하는 걸까?

인도네시아에서는 물건 값을 일단 치르고 나면 환불은커녕 아예 안 바꿔주니 명심하라는 말을 교육 중에 들었다. 작년 이맘때 슈퍼마켓에서 우리 돈 천 원짜리 검은 색 구두약을 샀다가 갈색이라서 이튿날 바꾸러 갔다. 열어 본 것도 아닌데도 한사코 교환을 거부하다, 자꾸 따지니 외국인이라선지 영수증을 가져오면 바꿔준다고 했다. 소비자를 완전 ‘을’로 보는 행태다. 소비자불만은 소비자 스스로 접수하고 처리해야 할 판이다.

식당에서 고양이나 아이들이 식탁에 올라가는 일이 흔해도 제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놓고 20분이나 기다렸는데, 종업원이 “밥이 떨어졌다”며 20분 더 기다려달라고 해서 그냥 나온 적이 있다. 식재료가 떨어졌다면 미리 걸러서 주문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호기롭게 주문받아 놓고는 나중에 “하비스(떨어졌다)”를 습관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게 식당 문화다. 마찰을 원치 않는 의식구조가 만든 ‘미덕’이랄까?

시민의 권리는 어떤가? 작년에 경찰에 ‘거주신고’를 하러 오후1시쯤 갔더니 민원실이 닫혀 있었다. 더워 죽겠는데 밖에서 하릴없이 기다렸다. 30분쯤 뒤 직원이 문 열고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더니 안에는 에어컨까지 켜져 있었다. 민원인들이 금세 30여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직원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20분쯤 지나 참다못한 내가 업무를 재촉하려 일어섰더니 같이 갔던 현지인이 말렸다. 그게 이들의 문화였다.

언짢아도 따지지 않는 민원인과 소비자, 도도한 공무원이나 공급자. 생각건대 원망(怨望)이 없으니 염치도 없는 묘한 기제가 작동하는 듯하다. 그래서 마찰 없이 평화롭긴 한데 그 지속가능성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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