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식혀주고 울타리가 돼주는 비의 연주 감상하며 행복 느껴
폭우에도 홍수피해 한 번도 없어…물속에서 버티는 수상건축이 ‘답’

안남영의 赤道일기(12)
전 HCN충북방송 대표

춘분이 지나 우기가 꼬리를 내렸다. 매일 오던 비가 완연히 잦아들었고 볕도 더 강해진 느낌이다. 한국 같으면 ‘장마 끝’. 장마 하면, 우리 관념 속에 으레 ‘지긋지긋하던’이란 수식어와 함께 박혀 있지만, 예서 우기를 보내는 마음은 좀 서운하다. 앞으로 맞서 싸워야 할 더위 때문이다.

우기는 9~10월에 시작돼 6개월가량 계속된다. 매일 오후 3~4시에 1시간 정도 장대비가 쏟아진다. 열대 강우 ‘스콜’이다. 약속이나 한 듯 시간 맞춰 뿌려대는데, 자연의 순환계에 경외감이 든다. 어떤 날에는 아침과 대낮, 저녁까지 하루에 2~3차례 비가 쏟아지고 밤새 내리기도 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동안은 오로지 빗줄기에 시선을 묻고 무념무상에 빠져들곤 한다. 집 문밖의 비오는 풍경.
폭우 흔적으로는 길 웅덩이에 물이 군데군데 괴어 있는 게 고작인데 집 근처 골목에서 아이들이 물길을 내고 있다.

비의 재발견이랄까? 단비의 고마움 같은 상식은 제쳐 놓고, 국내에서 비는 피하고 싶은 심술꾼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비가 만나고 싶은 친구요, 위안이 될 줄 몰랐다. 또 비와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포개 놓고 보니 흥미롭기도 한 게, 참 개안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비가 고마운 것은 더위를 식혀 주기 때문이다. 비가 대지를 한바탕 적시고 나면 온도가 쑥 내려간다. 비는 보통 내리거나 뿌려지는 게 아니라 쏟아진다. 빗소리는 요란함을 넘어 때론 장엄하기까지 하다. 학교든 집이든 처마가 양철지붕이다 보니 마치 사방에서 폭음탄이 난발되는 것 같다. 거기다 천둥 번개까지 칠라치면 수업도 중단, 사색도 중단이다. 밤이라면 잠도 쫓아낸다. 마치 선생님이 얼빠진 아이들에게 “앞을 보라”며 교편으로 교탁을 막 두드리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신의 경고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손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라는 계시일지도 모르지만.

비 피해 없는 반자르마신

기자 시절 집중호우는 기삿거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비가 장관이고 합주여서 시심도 다 자아낸다. 물론 길에서 비를 맞는다면 낭패감이 온몸을 적신다. 퇴근길에 비를 만나 급히 자전거를 몰다가 두 번이나 넘어졌다. 한번은 미끄러진 오토바이의 추돌로 크게 다칠 뻔 했다. 그렇지만 실내에서 비의 연주를 감상하는 게 행복이라는 것을 여기 와서 발견했다.

억수 같은 비가 올 때면 이상하게도 안온함이 있다. 나와 세상 사이에 거대한 보호막이 쳐져 있는 포근한 휴식처 같은 착각 덕분이다. 빗줄기가 발과도 같아 울타리 혹은 커튼이 되어 주는 거다. 누구의 침입도 허락 안 되는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휴식을 허하고, 과오를 사면해 주는 듯한 자연의 은혜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비 덕분에 누리는 마음의 사치다.

한국에서는 보슬비만 와도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선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잘 안 쓴다. 그건 의연하지 못한 사람이나 쓰는 물건이란다. 또 비오는 날씨에도 오토바이 외출을 꺼리지 않는다. 웬만하면 그냥 맞지만 좀 심할 때나 우비를 걸친다. 옷이 젖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배짱도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우기에 연일 계속되는 폭우에도 이곳 반자르마신은 수재가 없다는 게 신통하다. 반자르마신은 도로, 상하수도, 청소, 방재 등 도시 인프라 면에서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대책 없는’ 도시 같다. 그래서 국내교육 당시 “침수된 도로에서는 (오염된 하수 범람으로) 피부병이 옮을 수 있으니 업혀서 건너라”라는 경고를 받은 터라, 큰비가 오면 과연 그런 상황을 겪을지가 궁금했다.
 

물웅덩이 위에 집을 짓기 위해 지반 강화 목적으로 울린 나무를 지반에 박는 모습. 완공된 왼쪽 집의 아랫부분에서 주택 구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홍수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우기에 3000㎜는 내릴 텐데, 더구나 강 하류 지역인 데다 평지라서 배수가 나빠 위험할 텐데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저런 정보를 종합하면 집집마다 밑에 깔고 있는 웅덩이―대부분의 집은 물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무기초를 박아 구조물을 얹는다―가 저류지 구실을 하는 데다, 평지다 보니 급류 발생이 없다. 따라서 하류라 해도 유량이 갑자기 몰릴 일이 없어 그런 것 같다. 물론 도로 옆 도랑이 부유쓰레기로 막혀 배수장애로 일어난 부분적 침수는 한두 번 보았다.

그러나 그 많은 비에도 끄떡없는 이 도시의 건축문화에 지혜가 엿보인다. 수맥 영향이 없는지 궁금하지만 수상건축 말이다. ‘울린’이라는 나무는 깔리만탄(보르네오) 섬에서만 나는데, 가혹한 물속에서도 100년 이상 썩지 않고 버틴다고 한다. 게다가 못도 잘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해서 목재로 많이 쓰이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로 파일을 박고 기초를 세워 집을 짓는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보통 낮 기온이 섭씨 33~35도다. 체감은 보통 40도 이상이다. 작열하는 태양에다 바람이 없을 때가 많아서다. 물론 우기에는 이보다 기온이 조금 내려가긴 해도 ‘반짝해’가 내리쬐면 낮 최고가 30도 이상이다. 많은 습지 탓인지 습도가 높다 보니 불쾌지수가 상당하다. 설거지한 그릇의 물기가 좀처럼 마르지 않거나 냉장고에서 꺼낸 그릇에 이슬이 순식간에 맺혀 흐를 정도다.
 

뙤약볕은 아침부터 내리쬔다. 이를 피해 조회가 그늘에서 열리지만 가끔 1시간씩 끄는 수도 있다.
한낮 뙤약볕 그림자가 선명한 가운데 오토바이 탑승자 대부분이 긴소매에 겉옷을 걸치고 있다.

무더위에도 긴소매 옷 입는 현지인들

이곳에 와서는 추위보다 더위가 견디기 나을 것이라는 나의 판단과 선택에 회의가일기 시작했다. 샤워를 해도 금세 땀이 난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선풍기 앞에서도 속옷이 달라붙는다. 잘 때 선풍기와 에어컨을 번갈아 켜고 끄기를 반복해야 해 숙면이 어렵다. 에어컨 바람을 시도 때도 없이 쐬다 보니 알레르기 비염이 한국에서보다 심했다. 그래서인가 피로가 쌓이고 체중이 10%가까이 빠졌다. 바지를 모두 줄여야 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더위 내성이다. 무더위에도 긴소매를 입고 점퍼 같은 덧옷을 챙겨 입는 게 보통이니 말이다. 옷 두께도 상당하다. 어떤 이는 가죽점퍼를 입고 다녀 내 눈을 경악시켰다. 이들이 한국에서 한겨울에 얇은 옷만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이처럼 놀라려나?

또 여자들은 질밥(머리에 두르는 천)까지 써야 해 체감 더위가 이만저만 아닐 텐데, 땀도 안 흘리니 인내가 가위 득도 수준이다. 이곳 전통의상 샀다가 집에 와 안감이 ‘쓸데없이’ 붙어 있는 걸 보고 기가 찬 적 있다. 바꾸려다 단단히 훈수만 들어야 했다. 두툼한 겉옷은 햇볕 차단용이다. 하지만 오토바이 탈 때 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필수장비라 한다. 안 그러면 ‘마숙 앙인’(masuk angin, 직역하면 ‘바람 들기’로 감기기운 같단다)에 걸려 몸이 축난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건, 오토바이를 안 타도 두꺼운 긴소매를 입는 걸 보면 마치 ‘내공’을 드러내려는 듯 옷 두께가 패션 코드의 하나로 읽힌다.

최근 몇 달 우기엔 고약한 더위라도 견딜 만했다. 어떤 날엔 새벽 서늘한 기운에 전기장판을 켠 일도 있다. 코이카에서 지급받을 땐 어이가 없었는데, 요긴할 줄이야…. 어쨌든 나의 열대기후 적응기는 뜻밖의 발견과 교훈으로 점철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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