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의 同床異夢

홍강희 충청리뷰 편집국장

청주는 직지의 도시다. 직지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물이다. 청주시내를 천천히 걸어보면 직지 조형물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길 바닥에, 인도에, 가로등에. 이렇게 청주시민들의 마음속에는 늘 직지가 자리잡고 있다. 한자로 돼있는 직지 자체가 어려워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청주의 자랑 중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게 시민들의 정서다.

청주시는 지난해부터 직지축제를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로 격상해 추진하고 있다. 40억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고 규모도 대폭 확대됐다.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은 청주공예비엔날레와 더불어 청주시를 대표하는 축제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직지를 연구하고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를 창안한 문화민족임을 국내외에 알리는 곳이다. 지난 1985년 10월 청주시 운천동 현 박물관 부지에서 흥덕사지 존재를 확인한 뒤 1992년 3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들어섰다. 올해로 25년 됐다. 이 박물관의 수장인 박물관장으로는 15명이 거쳐갔다. 현 박홍래 관장이 16대이다. 일부 관장이 4~6년을 지냈고, 대체로 1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나 최근 4명의 관장은 6개월만에 자리를 떴다. 업무파악도 못한 채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박물관장 자리는 행정직과 학예직이 갈 수 있는 복수직렬로 돼있다. 현재까지는 계속 행정직이 차지해왔다. 박물관을 통틀어도 행정직이 대부분이고 학예연구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행정직 공무원들은 박물관에 근무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청주시 본청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문에 여기에 1년 이상 있으면 불안해서 어떻게든 떠나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행정직 공무원이 잠깐 거쳐가는 자리가 돼버렸다.

그 기관의 수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기관은 상당히 달라진다. 지난해 7월 1일 개관한 청주시립미술관 관장은 청주시 공무원이 하고 있다. 지역미술계는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부터 관장 자리를 개방형직위로 공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승훈 시장은 공무원이 초기에 행정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공무원을 임명했다. 다행히 이 시장은 올들어 “연말쯤 미술관 체계구축이 완료돼 올 하반기에 전국 공모를 거쳐 내년부터 개방형 관장 체제로 간다”고 밝혔다.

행정직 공무원이 관장이 되면 미술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미술관까지도 행정이론을 접목시킨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가 관장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행정분야만 공무원이 담당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그럼 고인쇄박물관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박물관도 그 분야 전문가가 관장을 하고 행정직은 행정분야만 맡도록 해야 한다. 이는 오래전 직지에 관한 토론회를 할 때 마다 나왔던 얘기다. 미술계가 관장 공모를 요구했다면 시민들 중 직지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박물관장 공모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역대 어느 시장도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행정직 공무원 눈치보느라 하지 못한다는 말들도 있다. 일 할만 하면 발령나고, 잠깐 거쳐가는 곳이라 생각해 손놓고 있는 관장들이 많은데 박물관이 발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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