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영향으로 한국사람·한국어·한국노래·드라마에 관심 많아
대학에 한국어과 증가하고, 외국어경진대회에도 3년전 채택

안남영의 赤道일기(10)
전 HCN충북방송 대표

내가 있는 반자르마신시(市)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은 5명. 모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교육 4명 말고 컴퓨터 분야 단원까지 시 교육청에서 컴퓨터 과정 외에 한국어를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부부가 있는데, 그들도 한글학당을 운영한다. 당초 파견 분야가 한국어가 아닌 단원들 가운데 해당 기관의 요청에 따라 이처럼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반자르마신에서 자동차로 한 15시간 떨어져 있는 사마린다시(市)에 파견된 단원도 본래 전공 분야가 관광이지만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5년 전 문 연 반자르마신 람붕망꾸랏 국립대의 한국학센터에서 코이카단원이 학생들에게 한국어 중급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어에 대한 높은 관심의 결과다. 엄밀히는 이른바 한류 영향 때문이다. 노래방 또는 인터넷사이트에는 가사를 알파벳으로 표기해 읽을 수 있도록 한 한국 노래가 수두룩하다-그걸 잘도 읽어 부른다. 그런데 한글 가사를 읽고 드라마 대사 한 마디라도 주워섬길 줄 안다면? 당연히 ‘엄지 척’―이곳에선 동의, 칭찬, 격려 등 아무 때나 엄지를 치켜든다―이다.

학교 복도를 걷다 보면 모르는 아이들도 내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할 때가 많다. 한번은 골목에서 마주친 50대 과자 행상이, 또 후문 앞 식당 주차 정리 일을 하는 중년의 남자가 우리나라 드라마 제목을 말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몇 가지 인사말을 해 보였다. 비록 몇 마디지만, 그들이 기억해 뒀다가 한국인에게 써 먹은 것을 보면 이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곳 람붕망꾸랏 국립대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라피카 씨는 “이모들도 종종 한국 인사말에 대해 묻는다”고 말했다.
 

람붕망꾸랏 대학의 한국학센터는 대학 측이 별도의 건물을 제공해 독립된 어학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어특강에 몰려 접수 중단까지

한국어 보급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세종학당에도 수강생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자카르타 세종학당의 박경재 강사는 “4년 전 200~300명 수준이던 수강생이 지금은 500명에 이르고, 대기자만도 500명”이라고 말한다. 자카르타 세종학당은 올해 독립된 재단 형태로 조직 및 기능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자카르타 교육 중 나의 회화 상대였던 안드라 씨는 “3~4년 전 재학 중일 때만 해도 우나스 대학교 한국어과 입학생이 45명이었는데 작년 60명, 올해 90명으로 각각 늘어났다”고 전했다. 또 자카르타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학원이 10군데에 이른다.

관광지 발리에도 한국어학원이 서너 개 정도 된다고 들었다. 월 수강료가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다는데 이는 젊은 직장인 월급의 30~50% 수준이다. 비싸다는 것은 수급불균형 때문이지만 한국어인기의 반증으로 봐도 된다. 발리의 한 면세점 직원은 내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비싸서 못 배운다”며 한국정부의 배려를 호소했다.

반둥시(市)의 경우 국립교육대(UPI)의 한국어학과는 지난 신학기 입학 경쟁률이 전체 100여 개 학과 중 4번째로 높을 정도. 명문 반둥공과대학에서도 지난 1월 코이카 봉사단원이 한국어 특강을 개설했는데 신청자가 크게 몰려 도중에 접수를 중단했다고 한다. 반둥에는 이밖에 2개 대학이 올해 한국어 교습 과정을 새로 개설할 계획이다.

깔리만딴 섬 뽄디아낙시(市)의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한국어 과정(코이카 단원 운영)도 몇 년 사이 20명에서 80명 수준으로 수강생이 늘었으며, 람붕망꾸랏 대학 부설 어학원 역시 2년 연속 수강생이 30% 이상 늘어, 이번 학기엔 300명에 가깝다.

주목되는 건 이 나라 정부 주관의 외국어경진대회에 한국어가 3년 전 처음 대회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이젠 불어,독어,일어,중국어 이상으로 인기를 구가한다는 사실. 첫해엔 7개 주에서 대표(주 교육청 추천)를 보냈는데, 작년에는 13개 주에서 출전했다. 그만큼 저변이 넓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어가 젊은이들의 진로를 정하는데 과연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결론을 말하자면 “글쎄”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편이지만 한국어의 취업 연관성까지 높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동부 자바 지역의 뽀노로그라는 도시의 직업훈련원에 개설된 한국어 과정은 작년에 수강생이 줄어 아예 폐쇄됐다.

이곳 반자르마신에 10여 년 전에는 한국 기업이 10개가 넘었지만 다 철수하고, 새로 1~2개가 진출을 모색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한국식당까지 있었지만 문 닫은 이유다. 말랑시(市)에서는 최근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한국어 열기가 약간 식은듯하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한국어에 대한 열기는 지역마다, 혹은 기관마다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어 관심도는 꾸준히 상승 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세종학당 박경재 강사는 “수강생들이 TV프로그램을 접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것 같다”며 “한국기업 취업보다는 유학 동기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의 동시통역사 박진려 HLC어학원장도 “거품이 약간 빠졌다”면서도 “유학이나 취업 등 실수요는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작년 5월 마카사르에서 열린 한국문화축제 중 내가 운영한 붓글씨 체험 코너에서 한글을 배운 학생들이 붓글씨로 한글 이름을 써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 유학 꿈꾸는 학생 점차 증가

한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이 많아진다는 건 고무적이다. 한-인니 우호증진에 첨병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문제는 유학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득계층이 한정돼 있다는 점.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고소득 관심층이 어차피 늘어가니, 장학제도나 이슬람 문화 존중 대책 등을 적절히 홍보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 유학하는 인도네시아 학생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알기로 청주에는 적어도 3명 이상이다. 이곳 람붕망꾸랏 대학 출신 한 여학생이 청주의 모 대학으로 유학 갔는데, 그가 교내에서 인도네시아 유학생 2명을 더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코이카 단원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 재원이다.

람붕망꾸랏 대학은 늘어나는 한국어학습 수요에 발맞춰 교양과목 채택을 검토 중인데, 장기적으로 한국어학과 개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청주의 모 대학과의 교류에 다리를 놓을 셈으로 내가 작년에 만났던 이 대학 사범대 와흐유 학장은 “한국어과를 신설하면 학생들이 많이 몰릴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학과 신설은 한국어 교수진을 적어도 4명 이상 확보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교수진 확보란 얘기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4곳에 불과하다. 부설 어학원에 한국어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이 있지만 10여 개 정도. 모두 코이카가 자원봉사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정식 학과 개설은 코이카의 단원 파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현지인 교수가 3명 이상 확보돼야 가능한데, 그게 아직은 난제다. 또 한국인 강사 초빙 문제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여기 국립대의 교수 초봉이 50만 원 남짓이고 보면 대책이 묘연하다.

요컨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는 떠오르는 제2외국어다. 대학마다 학과 개설에 관심은 있되 묘책이 막연한 상황이라 코이카가 ‘분발’을 요구받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코이카의 역할도 한계가 있으니, 답답하다. 장차 모든 고교에서 제2외국어로서 대접받을 날이 오면 좋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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