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중 화장실가고 돌아다니기 일쑤, 교실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
교직원 행사, 외부손님 방문, 학생 동원 등으로 수업결손도 심각

안남영의 赤道일기(9)
전 HCN충북방송 대표

“선생님, 집이 어디예요?”
“그건 비밀인데….”
학생들의 무람없는 질문에 내 대답은 늘 이러했다. 작년 이맘때 아이들 관심도가 좀 부담스러워 반농반진으로 던진 말이다. 이 문답은 활동 초기 나의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무 자르 듯한 나의 대답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 나라 말로 어디라고 잘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데다 함부로 집 위치를 가르쳐주지 말라고 교육받은 게 생각나서였다. 속마음은 “나중에 때가 되면 가르쳐 주마”였지만 일단은 경계하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후회가 없지 않다. 학생들과 자주 접하면서 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담을 쌓고 말았던 셈이다.

돌이켜 보면 현지 활동의 보람을 위축시키는 장벽이 여럿이다. 이처럼 스스로 만든 담과 언어장벽이 그 예다. 그 외에도 의욕과 의지를 곪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학교 현장’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교육받았지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전반의 의아스러운 장면들을 무시로 접하면서 때로 당혹감이 실망으로 변해갔다.
 

낡은 교실 칠판을 보다 못해 코이카 본부에 지원을 신청, 16개 교실에 백판을 설치해 주고 지우개 2상자를 전달했다. 사진은 코이카 마크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

학습환경 투자에 인색, 교장실은 화려

 

먼저 학습환경을 보자. 학교 안은 시도 때도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들로 늘 시끄럽다. 날일 자(日) 건물형태, 얇은 벽체, 열린 문 때문에 어느 한 곳에서 나는 소리라도 전체로 퍼지는데, 온종일 웅성거린다. 수업시간이지만 복도 ‘통행량’이 적지 않은 데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무슨 ‘신호교환’을 하는지 창가 아이들은 주의를 뺏기기 십상이다. 맨 유리에다 턱이 낮은 구조의 창문이라서 당연해 보인다. 교실문은 고장으로 닫히지 않는 것도 많지만 더워서(혹은 어두워서) 열어놓고 수업하는 게 보통이다.

도대체 수업에 몰입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교실의 전등이나 선풍기가 고장 나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어두워서, 더워서 아이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어두워도 전등을 안 켜는데 더워져서라니…. 정말 실망스러운 건 칠판(백판)과 지우개다. 칠판은 작거나 흔들거리거나, 혹은 낡은 나머지 글씨가 잘 지워지지 않아 불편하다. 3백 원쯤 하는 지우개조차 제대로 지급 안 돼 휴지나 걸레로 닦는 일도 있다.

쓰다 보면 잉크가 안 나오는 보드마커도 짜증거리다. 창으로 드는 햇빛 때문에 칠판이 보이지 않는 자리가 많은데 차광필름 또는 커튼 한 발이면 될 것을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 열악한 화장실, 고장 난 수도꼭지와 배수구 방치도 의문이고.

순전히 예산부족 문제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게 아닌 듯하다. 기본적 학습환경 투자에는 인색한 반면, 새로 고친 교장실과 교감실 내부 마감이나 소파 등 집기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그런가 하면 고비용 저성과가 눈에 보이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열 올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년 태국의 교환학생단 10여명이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3주, 3개월씩 묵고 돌아갔다. 호텔과 전통요리 분야 실습을 위해 파견됐다는데 여건이 미흡한 만큼 영어로 진행된 수업의 성과가 궁금할 따름이다.

수업시간표만 놓고 보면 아이들 인권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겠다. 평일 수업은 모두 10교시(주당 52교시)로, 아침 7시 반에 시작해 오후 3시10분에 끝난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 9시45분~10시, 12시15~30분 15분씩 2차례가 전부다. 용변과 점심은 알아서 아무 때나 해결한다. 학생자치회에서 점심시간 연장을 건의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공공기관, 은행 문 닫는 시간이 3시다 보니 방과시간도 이에 욱여 맞춘 듯한데, 빡빡한 수업일정에 내몰린 학생들이 딱하다. 휴식시간과 화장실 부족으로 수업 중 용변 외출을 청하는 게 어쩜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수업의 맥이 끊기기 일쑨데, 그 누적 차질이 얼마겠는가? 작년 증개축공사로 2부제가 시행됐는데, 오후반 마지막 수업(5시15분~6시15분)은 15분만 하고 귀가시켜야 했다. 누굴 위한 단축수업인지 모르지만 수업결손을 대수롭게 여기는 사람이 없다.
 

날씨가 더워 체육 수업을 아침 이른 시간에 몰아넣다 보니 세 학급 이상 동시 수업할 때도 많아 그런 날엔 더욱 시끄럽다.
정숙한 자습은 없다. 창문 구조상 복도의 소음과 인기척이 교실 수업을 그대로 방해하기 일쑤지만 반투명필름 부착 같은 대책이 안 보인다.

수업시간 지키지 않는 교사들

 

학교가 배움터가 아니라 교사들의 일터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교사들은 이런저런 회의를 구실 삼아 단체로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 일이 잦다. 물론 공금이겠다. 이를 조금만 아껴도 지우개나 마커 문제는 해결된 텐데. 작년 4월 교직원조합 정기총회는 “뭐가 중헌디?”라는 명대사를 연상케 했다.

교직원을 위한 행사라면 방과 후에 열어도 될 일을 굳이 오전 10시에 잡아 수업이 전폐됐다. 수업에 들어가려고 보니 대부분 아이들이 하교하는 중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자체 회의뿐만 아니라 교육청 고위 인사 등 외부손님 방문 때문에도 수업이 파행된다. 교사 상당수가 참석해야 하고 보통 발언들을 엄청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해당 교실은 ‘살판’나고 정숙은 불능 상태가 된다. 작년 11월25일 스승의 날. 8시쯤 시작된 기념식이 출장부페 점심까지 이어지면서 이날 수업이 모두 휴강됐다.

수업 결손은 이뿐 아니다. 교무실과 각종 실습실 등 당번인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동원돼 자릴 비운다. 여기에 스피커 방송, 학생 호출 등 무시로 수업 방해가 일어나지만 이에 대한 통제 매뉴얼이 없다. 비가 쏟아지면 양철지붕 폭음 때문에 강의를 멈추는데, 아이들에겐 이것도 어쩌면 달가운 쉼표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원칙 없는 수업 차질에 대해 교사들은 별 개념이 없는 것 같다. “교직원끼리의 조합 총회라면 방과 후에 열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코워커는 “글쎄”라며 개선 필요성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 눈치였다.

교사들 의식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수업이 없다고 늦게 출근하거나, 어린 자녀를 데리고 출근해도 눈치 보는 법이 없다. 앉아서 수업하는 일이 많고, 수업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아 다음 수업을 축내는 경우도 있다.
 

교장실에 새로 들여 놓은 고급 소파와 몇 달 째 고쳐지지 않아 오물이 말라붙은 급수시설이 대조를 이룬다.

 

애들 수업태도는 어떨까? 습관적으로 교과서를 안 가져오고 잡담과 이석을 꺼리지 않는 아이가 반마다 20%는 된다. “책을 집에 두고 왔다”는 말이 참 쉽게도 나온다. 결석이나 조퇴에 관대하다 보니 수업 중 이석을 권리로 여기는 건지, “쓰레기 버린다”며 나가려는 학생이 꼭 있다.

이에 난 시작 전 볼일을 보도록 5분을 주고는 수업 중 문밖출입을 불허했다. 그러나 주의산만을 과시하듯 수업 중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꾸러기들은 으레 종료 즈음 시계를 가리키며 따지듯 “이스티라핫(휴식)”을 외치거나 책가방을 싸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면 “늦게 시작한 만큼 늦게 끝낼 것”이라고 짐짓 어깃장을 놓기도 한다. 수업 중 기타 치거나 노래하는 아이, 눕는 아이까지 목도하면 장애물 넘기를 하는 기분이다. 과연 담장을 쌓고 있는 건 어느 쪽일까? ‘이유 있는 꼰대’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오늘도 역할과 한계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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