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의 同床異夢

▲ 홍강희 충청리뷰 편집국장

개관사정(蓋棺事定).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 즉 사람은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오늘까지 별 볼일 없던 사람이 내일은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요즘에는 자고 나면 추락하고, 자고 나면 스타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 이 말이 더 실감난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점에서 생존해 있는 사람 동상을 세우거나 우상화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사람이 중간에 길을 잘 못 들어 갈짓자 걸음을 걸을 수 있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또는 더 참혹한 일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 진리를 지키지 못해 지금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충주시와 음성군이 추진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우상화사업을 보면 낯 뜨겁다. 음성군은 반 전 총장의 고향답게 반기문 생가 및 기념관, 반기문마라톤 대회, UN평화관 등 10여개의 반기문 관련 사업을 해왔다. 생가에는 포토존을 만들고 동상까지 세웠다. ‘반기문 평생아카데미’, ‘반기문 리더십 학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홍보물 제작’, ‘반기문 인성동요대회’, ‘유엔평화관 건립사업’, ‘반기문생가 초가 이엉잇기’ 등이 여기서 해온 사업들이다.

반 전 총장이 학교를 다닌 충주시에서도 이에 질세라 반기문의 착한집 ‘반선재’와 반 전 총장의 조형물 등을 설치했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반 전 총장의 본가를 복원함으로써 지역 자긍심을 높인 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충주시와 음성군은 지난 2007년 반 전 총장이 UN 사무총장에 취임하자 이렇게 ‘반기문’ 이름을 넣은 각종 사업들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모든 길은 반기문으로 통했다. 생존해 있는 사람의 동상건립을 비롯해 과도하게 우상화로 치닫는 기념사업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았으나 양 지자체는 서로 경쟁적으로 돈을 쏟아 부었다. 최근 반기문 우상화사업이 갈 길을 잃었고, 양 지자체는 고민이라고 한다.

이 고민은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서 나온 게 아니다. 출마를 했어도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기념사업이 기념이 아닌 과도한 우상화로 잘 못 추진됐기 때문이다. 충주시와 음성군에서는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동안 해오던 사업을 갑자기 중단할 수도, 계속할 수도 없게 됐다. 여기 들어간 사업비만 해도 10년 동안 몇 천억원 될 것이다. 이 많은 돈을 쓰고 흔적 지우기에 나선다면 이야말로 심각한 예산낭비가 된다. 때문에 양 지자체는 이래저래 진퇴양난에 놓였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충주시장과 음성군수가 책임져야 한다. 지난 2007년 이후 충주시에서는 김호복·우건도·이종배·조길형 시장, 음성군에서는 박수광·이필용 군수가 이 사업을 추진했다.

이들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아랑곳 없이 반 전 총장 띄우기에 앞장 서 ‘충주시=반기문’ ‘음성군=반기문’이라는 이상한 등식을 만들어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개관사정’이라는 세상의 엄연한 이치를 그르친 단체장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다. 반 전 총장을 자기동일시하며 치적쌓기에 열을 올린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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